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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사람을 지우고, 조직은 기회를 막는다

by 대건

실패였다. 내 자리를 기다리던 후임자에게 결국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했다. 그는 채용되지 못했다.


이유는 그의 과거 경력에 얽힌 좋지 않은 소문 때문이었다. 분명 경력자였고, 실무 역량에서도 큰 결격은 없었다. 하지만 예전 근무지에서 흘러나온 부정적인 이야기 한 줄이 모든 걸 바꿨다. 진위조차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노조 간부의 한마디에 결정은 내려지고 말았다.


들려온 말은 이랬다. “매일같이 불만을 쏟아낸다.” 4년 동안 지역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직접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불만을 표현한 적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반항이나 태만이 아니라, 누구나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고. 업무에는 항상 책임을 다했고, 단 한 번의 사고나 고객 클레임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설명은 더 씁쓸했다. 그는 이미 노조 간부에게 낙인이 찍혀 있었다.


예전에는 충성을 다했다. 친구의 채용을 위해 룸살롱 접대까지 감수했고, 대리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끝내 줄타기에 실패했고, 그 대가는 냉혹했다. 관계는 단절됐고, 낙인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는 그 그림자가 또다시 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 회사로 돌아오는 일도, 그로써 막을 내렸다.


소문은 무섭다. 그 한마디가 퍼지는 순간, 실무자들의 표정은 굳고 고민은 깊어진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채용해야 할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 순간부터, 기회는 이미 멀어져간다.


이야기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처럼 작용한다.
사실보다 분위기, 팩트보다 인상. 소문은 사람의 과거보다 더 강하게,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나는 이 모든 정황을 팀장에게 미리 전해두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그건 그쪽에서 있었던 일이니 우리랑은 상관없다”며 담담하게 반응했다. 문제 삼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핵심 노조 간부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지자, 팀장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의 무던한 반응은 사라지고, 그는 난색을 표하며 슬그머니 한 발 물러섰다. 그 변화는 조직 내 힘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다.


물론 후임자에게도 아쉬움은 있었다. 복귀 가능성을 너무 쉽게 말하고 다닌 것이다. 결국 그 이야기는 다시 노조 간부의 귀에 들어갔고, 그 순간부터 상황은 꼬이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무도 몰랐다면, 채용은 순조롭게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채용 불발 사실을 전했다. 그는 오히려 “잘됐다”고 말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을 버는 일도 아닌데, 소문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이들과는 차라리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말엔 씁쓸함도, 단념도 담겨 있었다. 기대는 접었지만, 자존심까지는 버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 역시 생각했다. 과거의 행적이나 소문보다는, 직접 함께 일해보며 진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고. 하지만 그는 끝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의 말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조직이라면, 다시 들어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 또한 조직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


딱히 사고를 친 것도,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단지 불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배제한다면, 그 조직은 무엇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일까?


누구나 불평이나 험담을 꺼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불만을 말한다는 게 정말 문제였을까?


그 말들을 조직을 위한 개선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만은 아직 기대가 있다는 뜻이다.


그의 말이 거슬렸다면, 함께 논의하고 방향을 조율했으면 되는 일이다.
모든 이의 불만을 다 수용할 순 없겠지만, 4년 동안 같은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라면, 그가 지적한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살펴봤어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예전에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왜 내 배송 구역엔 아파트 단지가 하나도 없는 겁니까?”


그건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조직의 불균형, 구조적인 무관심이 빚은 오래된 악습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4년을 버텨낸 그는,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을 끝내 외면한 조직이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뒤, 우리 팀에 남은 티오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조 간부의 말대로라면, 내 후임자는 불만이 많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으며, 팀에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안다. 그렇게 단정 짓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편견이라는 것을.

한편으로, 구역을 새롭게 정리한다고는 하지만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입만 열면 말을 바꾸고, 이랬다 저랬다 기준 없는 그들의 방식이 먼저 떠올랐다.
이번에도 결국 흐지부지 끝나버릴 거라는 불신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일까. 차라리, 그가 오지 않은 게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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