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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하루, 기대는 마음”

by 대건

부적응의 연속


새로 들어온 동료가 또다시 벽에 부딪히고 있다. 이전 팀에서 이웃 동료와의 갈등으로 우리 팀으로 옮겨왔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다르지 않았다. 동료들이 자신의 사정을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서운함은 여전했고, 그는 매일같이 그 선택을 후회하는 기색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아내가 출산할 때 병원에 가야 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봐주지 않았고, 경조사가 있어도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준 사람이 없었다며 그는 이전 팀 사람들을 원망했다.


그는 같은 기대를 이곳에도 품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 역시 자신을 위해 누구도 움직이지 않자, 그는 다시 세상을 탓했다. 이번엔 차량이 문제였다. 배정된 차가 작아서 물건을 싣기 어렵다고 했고, 배송 지역은 지대가 높고 난코스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곳 역시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듯했다. 물론 그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용히 묵묵히 일을 해내는 모습은 분명 있었다. 다만 언제나 혼자였다. 혼자서 무거운 짐을 들고, 혼자서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우리 팀은 대부분 2인 1조로 움직인다. 배우자가 함께하거나, 성인이 된 자녀가 함께 뛰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아이가 있는 가장이고, 오후 6시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가야 했다. 하루 일정 전체가 물 흐르듯 맞물려야 겨우 하루가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배송이 비교적 수월한 아파트 구역 세 곳을 이웃에게 넘겼고, 자신은 남은 지역을 책임졌다. 문제는, 그 남은 지역이 택배차도 버거워하는 지형이라는 데 있었다.


인접한 동료가 커다란 박스를 보며 “1층이니까 괜찮겠네”라고 무심히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그 말이 지나간 후에도 한참을 씩씩댔다. "안그래도 크고 무거워서 차에 싣기 힘든데, 그게 할 말인가요." 그는 혼잣말처럼 내뱉었지만, 그 말은 결국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늘 비교했다. 남들은 괜찮은 구역을 배송하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힘든 곳을 맡았냐는 식이었다. 누가 조언을 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문제는 그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결과는 남 탓이었다.


이제 그는 곧 충원될 신입사원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누군가 자신 대신 그 난코스 지역을 맡아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그 구역은 애초에 차량 크기를 가릴 필요도 없이 누구에게나 버거운 곳이다. 신규 입사자가 과연 그곳에서 견딜 수 있을까. 첫날부터 그 지역을 소화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그가 기대하는 대로 일이 풀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더구나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누군가 택배를 하겠다고 들어오더라도, 막상 수익이 안 나오면 버텨내기 어렵다.


그는 게으르지 않다. 실수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보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다. 하지만 그가 기대하는 만큼의 배려는 아무에게도 없다. 택배는 결국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구성된 이 구조 속에서 혼자 버티는 일은 결국,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그러나 돌아보면 누구도 내 옆에 없다는 현실이 그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물량은 줄었다. 줄어든 만큼 구역은 넓어졌고, 당연히 노동 강도는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는 혼자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그는 지금 경계선 위에 서 있다. 마지막 희망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그러나 누가 와도, 택배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혼자 해내야만 한다는 그 본질 말이다.


그는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구역을 돌고 있다.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라는 마음 한켠엔, 끝내 버텨야 한다는 체념도 스며 있다.

택배는 결국,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하루하루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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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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