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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계산보다 마음을 택했다

by 대건

배송이 멈췄던 현충일 하루, 그 여파는 차주 화요일 아침 그대로 되돌아왔다. 물량은 평소보다 확연히 많았고, 체감으론 두 배쯤 되는 것 같았다. 아니다, 한창 적을 때는 120개도 나갔으니, 세 배쯤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물량은 폭증했고, 우리 팀 신입은 그 탓에 과도한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도움을 요청했다.


그 도움은 자연스럽게 인접 지역인 나와 또 한 분의 형님이 맡게 되었다. 택배는 여름이 다가오면 비수기에 접어들고, 물량은 줄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량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두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움직인 이유는 물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육아로 인해 오후 6시까지 배송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빠듯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물량을 그 시간 안에 혼자 감당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나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덤덤한 척 해줬다. 망설이면서 도와준다고 하면, 오히려 상대는 더 미안해질 수도 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도움을 요청받았을 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상대를 존중하라고.


그리고 결국 그날 배송은 오후 9시까지 이어졌다. 몸은 지쳤지만, 인접한 동료를 도왔다는 생각과 수입을 조금이라도 보탰다는 안도감이 뒤섞인 채 하루를 마무리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다. 같이 일하는 형이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 매번 이렇게 도와주다간 우리도 힘들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내심 나도 비슷한 감정이 있었던 터라, 괜히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온 지도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고, 여태까지 인접한 형님과 내가 꾸준히 그의 구역을 도와주고 있었으니, 이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신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었다. 육아 때문에 수량을 줄였다는 그의 말이 처음엔 다소 막연했지만,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 안에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분명 버거웠을 것이다. 그의 사정은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모른 척하기엔 너무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그가 안타까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번에도 남을 도우며 나 자신을 희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따라붙었다. ‘내일은 그냥 못한다고 말해볼까? 그러면 아이들 병원은 누가 데려가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단순한 호의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점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갔다. 머릿속에선 현실과 감정이 뒤엉켜,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동료는 그에 대해 달리 말했다. 그는 원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굳이 그렇게까지 도와줄 필요 없다고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주냐, 너만 손해 본다. 이용당하고 있는 거야." 그런 말들과 함께, 우리처럼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며 은근한 질책도 들려왔다. 그 말들 속엔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조했다. 내가 너무 착해서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혼자 북받쳐서 돕고 있는 건 아닌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겪는 고충도 어쩌면 힘든 척하는 연기일 수도 있고, 그저 집에 빨리 가고 싶어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어느새 탐정처럼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가 정말 피곤해 보이는지, 말에 어색한 구석은 없는지, 내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유심히 살폈다. 다음 날 다시 마주한 그는 확실히 지쳐 있었고, 산모인 아내를 대신해 쌍둥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그날은 저녁 12시까지 일을 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지어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표정은 거짓을 담기엔 너무 피곤했고, 이야기 속엔 억지스러운 꾸밈이 없었다. 와이프가 곧 만삭이라 출산을 앞두고 겸배지원을 받기 위해 팀을 옮겼다는 말도 사실처럼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진 않겠지, 그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어느 정도 판단이 선 뒤, 나는 계속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전날 그에 대해 험담하며 불신을 드러냈던 동료에게도 솔직히 말했다. 나는 그냥 도와주기로 했다고, 너도 힘들면 굳이 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그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말하자, 동료도 잠시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곧 표정이 바뀌었고, 자기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내가 먼저 중심을 잡자, 그도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다. 때론 판단보다 태도가 먼저 분위기를 바꾼다는 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그 동료의 우려처럼, 어쩌면 그는 나와 인접 동료 형님들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원 업무라는 게 꼭 손해만 보는 건 아니다. 그의 아파트 구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고, 그 구역을 맡으면 수익도 생긴다. 물론 내 일만 하면 되는 게 가장 깔끔하겠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라면 어느 정도는 돕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도움은 훗날 되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에 가까웠다. 내 가치관은 늘 그랬다. 힘든 사람을 옆에 두고 죄책감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돕는 편이 나았다. 무언가를 해줘야만 편해지는 성격이라면, 나는 내 방식대로 그날의 균형을 맞춘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계산보다 마음이 먼저인 날도, 분명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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