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점점 버거워졌고, 사람은 번번이 그만뒀다. 다시 채용하고, 다시 떠나보내고. 이 반복이 이제는 하나의 고정 패턴처럼 느껴졌다. 내가 속한 팀의 현실은 그렇게 조용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미 여러 명이 나갔고,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꺼져가는 불씨 하나를 지키려는 마음으로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안을 마련했고, 실질적인 해결책은 인력 보충뿐이었다. 힘든 구역도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사람, 그런 누군가를 더 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티오(TO) 승인까지는 어렵게 났고, 이제 남은 건 채용뿐이었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경기 상황도 나쁘지 않았고, 지원자는 예상보다 많았다. 무려 여섯 명. 그중에서 젊고 패기 넘치는 인물을 선발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힘들더라도 꺾이지 않는 사람, 앞으로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실장이 직접 통화한 결과, 지원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물량이 너무 적다는 것. 채용을 유도하려면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돼야 했는데, 애초에 너무 낮은 조건이었다. 결국 잘못된 구조 속에서 사람을 모집한 셈이었다.
그 실패가 반복되자, 나 역시 지쳐가기 시작했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진 지원 업무는 내 일상을 잠식했고, 나와 인접한 동료는 매일 문제 지역을 커버하느라 진이 빠져 있었다. 우리 둘만 계속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듯한 기분. 그런데도 문제 지역 담당자는 이 상황에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모습이 없었다.
매번 누군가가 지원만 하면 그 순간을 넘기는 데 집중할 뿐, 스스로 변화하거나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팀장에게 사람을 뽑기 위해, 이쪽저쪽 전화를 돌리고 계획을 짜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내가 추천한 지원자에 대해, 팀원들 사이에서 농락하는 듯한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그를 ‘빡빡이’라고 부르며 키득거리는 소리가 회의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왔다. 처음엔 그게 누구 이야기인지 몰랐다. 그냥 흘려들었다. 하지만 그중 한 형님이 조용히 다가와 대놓고 말했다.
“그 친구, 채용 안 되기로 했대. 분위기 안 좋아.”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장난처럼 웃고 떠들던 말들이, 모두 내가 직접 추천한 사람을 향한 조롱이었다는 사실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모욕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존중해야 할 그 공간에서, 내 진심과 노력은 단지 우스갯소리로 전락해 있었다.
숨을 고르고, 조용히 되물었다.
“왜 채용이 안 된다고 하시던가요?”
“그 친구, 전에 있던 데서 불만이 많았다고 하더라고. 그런 사람하고 같이 일하긴 좀 그렇지.”
“불만이 없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그 사람, 택배만 6년 한 사람이에요. 이전 팀은 파벌이 심하고 신입들한테 입회비 명목으로 돈까지 뜯어내는 곳이었습니다. 구역도 다 안 좋은 데로 돌렸고요.”
그 말을 듣던 형님이 놀란 듯 되물었다.
“입회비? 그게 진짜야?”
그 짧은 대화가 끝나자,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추천한 그 사람은 파벌 싸움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그리고 팀장도 그 이야기를 미리 들은 상태였고, 나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그런 소문에 휘둘리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
그를 향한 나의 그 말이, 지금 이 상황에선 거짓말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 순간, 팀장이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팀장님.”
“응?”
“제가 추천한 사람이 이렇게 비웃음거리로 전락된다면, 차라리 데려오지 않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누가 비웃었다는 거야?”
“‘빡빡이’라고 아까 회의 자리에서 언급된 사람, 제가 추천한 분 아닌가요? 채용 안 한다는 얘기까지 다 돌고 있던데요.”
팀장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건... 그냥 사람 뽑을 때 우리끼리 장난처럼 이야기한 거야. 그런 뜻은 아니야.”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어디서 온 사람인지, 채용 여부까지 다들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저는 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어째서 제가 추천한 사람이 놀림감이 되어야 하죠?”
내 말투는 차분했지만, 목소리 깊숙한 곳에서 분노가 올라오고 있었다.
팀장은 내 반응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그건 오해야.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다른 사람들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
하지만 그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왜 그 사람이 채용되지 않았는지, 왜 굳이 그를 ‘빡빡이’라며 낄낄거리는지.
그는 예전 팀에서 파벌 싸움에 휘말렸고, 그 싸움의 중심에 있던 인물을 끝내 밀어냈다.
그리고 그 밀어낸 자, 그 사람이 이곳까지도 은연중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곳의 실세라는 사람, 겉으론 말없이 중립을 지키는 척하면서도, 이미 그 입김 아래 있었다는 걸.
그 사실이 내게는 더 큰 분노로 다가왔다.
실력이 아니라 소문과 관계로 사람을 평가하는 구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안면과 줄서기가 우선되는 분위기.
물론 그들이 하는 말이 아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불만이 많았던 것도, 예전 직장에서 다소 강하게 행동했다는 것도 나름의 맥락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팀의 상황은,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일이 밀리고, 무리하게 구역을 커버하느라 내가 도와주는 인접 동료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신입 동료는 상황 파악도 안 된 채, 매번 10시, 12시, 심지어 새벽까지 배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뒷말만 나도는 모습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묵직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사람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팀장님이 잘 아실 겁니다.
전 그냥, 이 문제를 제대로 풀고 싶었을 뿐입니다. 계산보다 마음을 택했던 이유도 결국, 이 팀이 무너지는 걸 막고 싶어서였고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그 사람 4개월 동안 지켜봤지만, 그렇게 비웃음당할 사람 아닙니다.
제가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진심으로 일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말을 이어가던 중,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 걸 느꼈다.
‘어라, 지금 내가 울려고 하는 건가?’
순간, 속으로 되뇌었다.
‘정말 내가 이 일에 이렇게까지 심취해 있었던 걸까?’
스스로도 낯설 정도였다.
이건 그냥 팀을 위한 일이었고,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실무에 가까웠는데
내 감정은 그 경계를 훌쩍 넘어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추스르며,
마치 항변이라도 하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때 팀장이 내 말을 끊었다.
“근데... 니 일이 아니잖아. 왜 이렇게까지 신경 써?”
나는 말을 멈췄다.
그는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덧붙였다.
“어차피 팀원은 나랑 같이 일해야 되는 사람이고,
넌 곧 다른 팀으로 갈 사람인데—왜 이렇게 열 내는 건데?”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분명 이 일은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었다.
곧 자리를 옮길 예정인 나에게는, 굳이 책임질 필요 없는 문제였다.
‘그래. 맞는 말이다.’
속으로 그렇게 수긍하면서도,
가슴속 어딘가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근데... 왜 나는 이걸 놓지 못하는 걸까.’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내 눈동자는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을, 이미 주위 팀원들이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팀장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다시 택배 배송을 하러 나섰다.
하지만 몸은 움직였어도, 정신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고객의 문 앞에 서 있어도, 손에 든 송장 번호를 보고도,
방금 전 그 대화들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던 중,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까는 내가 좀 화를 냈던 것 같아서… 괜찮냐?”
의외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생각보다 깊이 들어와 버렸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매달렸을까.’
택배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면서도, 자꾸만 그 생각이 맴돌았다.
곧 다른 팀으로 옮겨야 할 사람. 그게 내 현재의 위치인데
나는 이미 이 팀 안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것 같았다.
책임감이었는지, 미련이었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버린 건지…
어쩌면, 이 팀을 정말로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