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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멈춘 날, 배송은 멈추지 않았다

by 대건

국가정보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았다. 시스템이 멈추자 우리 회사도 곧바로 혼란에 빠졌다. PDA는 먹통이 되었고 고객 정보는 조회조차 불가능했다. 배송 알림 문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예정대로 배송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우리는 송장에 적힌 주소만 의지해 배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소가 정확하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엉터리 도로명 주소나 잘못 적힌 주소가 붙은 물건이 적지 않았다. 평소라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면 됐지만 이번에는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상하지 않는 물건이라면 하루쯤 미뤄도 괜찮지만, 아이스박스나 신선 식품은 그날 안에 처리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물건이었다.


그렇다고 배송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결국은 해야 했다. 지금은 그냥 들고 가서 주소대로 두고 오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평소라면 PDA로 배송 결과와 사진을 전송하지만 이번엔 무선 전송이 불가능했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개인 휴대폰뿐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휴대폰으로라도 사진을 남겨라’라는 지시조차 내리지 못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폭증한 물량 앞에서 사진까지 찍으라면 현장의 반발이 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전산장비가 마비된 상황에서 일을 밀어붙이기도 벅찬데 사진까지 찍으라 하면 반발이 쏟아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습관처럼 개인 휴대폰으로 사진을 남겨왔다. 그 덕분에 이번 상황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저 늘 하던 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2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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