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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용 Jun 23. 2024

섬마을 살인사건

무능

 한때, 하늘에는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신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바를 마친 후 틈틈이 작은 섬마을을 방문하곤 했다. 이 마을은 원래 쇠락해 가던 곳이었지만, 신의 기지로 번성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도 신의 축복 아래 평화로운 삶을 누리며, 서로를 가족처럼 아끼고 도우며 살았다. 그 결과 마을의 들판은 언제나 풍요로웠고, 계절마다 다양한 색으로 물들었다. 또한 마을에는 항상 사람들의 이야기꽃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곳은 낙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신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본래 맡았던 일에 차질이 생겨 더 이상 섬마을을 돌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신은 마을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다른 신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냉담했다. “원래 무너져가던 마을이니까 단순히 외면하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은 이미 마을과 깊은 유대감을 쌓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으로서 금기를 깨고 자신의 능력 일부를, 마을을 잘 이끌어 온 태오에게 부여하기로 했다. 과거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고 함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도 신의 뜻에 동의하였고, 태오가 대표로 마을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 믿었다.     


 신의 기대대로 마을 사람들은 무탈하게 지냈다. 태오도 능력을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고, 마을을 위해 헌신하며 신뢰를 쌓았다. 그의 지도력 아래, 마을은 더욱 번영했고 신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잘 운영되었다. 마치 신처럼.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태오는 마을 번영에 점점 더 많은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의 커진 기대감과 능력을 부여받은 책임감으로 인해. 그래서 그는 발전을 위해 이젠 외부와의 고립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태오는 곧장 마을 사람들을 광장에 불러 모아 연설했다.

 ”여러분 물론 지금도 저희 마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후세를 위해 더 나은 마을을 남기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외부와의 고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오의 발언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대다수는 외부와의 연결이 과거의 고통을 되풀이할까 두려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격렬하게 의견을 나눴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갈등만 깊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오에 대한 신뢰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도 멀리했고, 일부 자신을 도와줬던 사람들마저 떠나고 말았다. 그는 점점 고립되었다. 마을의 중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태오는 이제 외면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입지를 회복하려고 밤낮으로 애써도, 예전의 신뢰를 되찾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점점 불안과 고독만이 쌓여갔다.     


 어느 날, 태오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불만이 있으면 없애면 되는 것 아닌가? 나에게는 그걸 가능하게 할 힘도 있으니까.’

 모두가 잠든 새벽, 태오는 극히 소수의 불만 세력만 제거해 여론을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일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살인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목격자는 피투성이가 된 태오와 축 쓰러져 있는 어르신을 보자마자 바로 비명을 질렀다. 태오는 급히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마을은 때아닌 비명에 깨어나며,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결국 태오는 또 다른 살인을 저질렀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인근을 샅샅이 뒤졌고, 결국 싸늘한 주검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태오를 참극의 주범임으로 생각했다. 이제 그는 마을의 대표가 아닌,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태오 자신도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는 결국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죽여 마을 전체의 파멸을 선택했다.     


 세월이 흐른 뒤, 신은 오랜만에 인간계를 다시 방문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녹음이 가득했던 푸른 들판은 황무지로 변했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으로 활기가 가득했던 마을은 음산한 침묵과 널브러진 시체들이 대신했다. 

 그때 신 앞에 유일하게 태오만 모습을 드러냈다. 신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태오에게 물었다.

 “자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태오는 나지막이 말했다. 

 “전언대로 살아남으라 하셔서.”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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