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과 헤엄의 차이

꾸준함의 저력

by 연목


6살 무렵부터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3학년 1학기까지 금오도라는 섬에 살았다. 그때만 해도 여수에서 족히 두 시간은 배를 타고 가야 해 여수가 지금의 서울만큼이나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골 그것도 섬에서 먹는 것과 노는 것은 뻔했다. 특히 겨울에는 신나게 갱번이나 산을 쏘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바닷가에서 보말이나 거북손, 홍합을 따다가 납작한 돌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으면 간식으로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이듬해 밭에 종자로 쓰기 위해 한가득 뒤주에 모아 둔 고구마를 엄마 몰래 가지고 나와 구워 먹기도 했다. 그리고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헤엄치며 고둥이며 전복이며 따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금오도에 가서 그때 뛰어놀던 바닷가 갯바위를 보면 그때 생각이 또렷하다.

20210528_191909.jpg 금오도의 노을


금오도 소유마을 선창가에는 물목섬이 있다. 그 물목섬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1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형제섬이 있다. 마을에 잠깐 들른 여객선은 종선이 뱃머리를 돌릴 사이도 없이 물목섬과 형제섬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어린 시절 헤엄 좀 치는 동네 형들은 형제섬까지 맨손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면 동네 또래 사이에서 ‘쟤는 헤엄 좀 치는 애’라며 모두들 수영실력을 인정해 주곤 했다. 보기에는 가까운 거리처럼 보여도 섬과 섬 사이를 지나는 조류 탓에 물살이 엄청나다. 저학년인 나는 그런 형들을 따라 바닷가에 뒹구는 스티로폼을 주어 혹여 놓칠까 봐 양손으로 꽉 부여잡고 함께 형제섬까지 헤엄쳐 갔다 오곤 했다.


그때가 벌써 35년이 넘게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수영이란 걸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수영장을 다닌다는 아내를 따라 두 달 정도 초급반에 다니면서 수영을 배웠다. 그것도 잠시 코로나가 오는 바람에 2년 넘게 개점휴업상태였다가 다시 매일 아침 수영장을 다닌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영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허리 통증을 없애는 것이다. 오래 걷거나 앉아 있으면 허리부터 어깨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골반 통증이 심해 심한 날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허리운동에는 수영처럼 좋은 운동이 없다’는 말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가 지금은 오히려 주말에도 ‘자유수영’ 가자며 피곤한 아내를 채근하기까지 한다.

처음 수영장에 들어서서, 소위 말해 ‘헤엄 좀 쳤다’는 사람들의 자신감은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일단, 수영장에서는 고개 내밀고 수영하는 사람이 없다. 그걸 보는 순간, 헤엄 좀 쳤다는 사람들은 괜히 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귀퉁이에서 몸만 담그고 있으면서 눈만 깜박이며 분주히 레인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바쁘다. 그래도 수강신청을 한 사람은 강사 선생님이 시키는 거라도 있으니 열심히 따라 해 본다. 그런데 그것도 생각대로 안된다. ‘헤엄 좀 쳐봤다’는 사람은 이미 자세가 엉망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낫다. 그러다 한 일주일 지나면 허구한 날 발차기와 호흡만 시키니 이마저도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수영장에 와서 소싯적 잘 나가던 일명 ‘개헤엄’을 칠 용기도 없다. 그때 고민이 시작된다.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그랬다. 그런데 딱 한 달 반이 지나자 25m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기간만 참으면 그 뒤부터는 쭈욱 간다. 오지 말래도 가게 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두 달간 수영장에 다니며 나는 수영과 헤엄의 차이는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수영은 강사에게 배우지만 헤엄은 동네 형에게 배우거나 알아서 배운다.

둘째, 수영은 머리를 숙이고 하지만 헤엄은 머리를 들고 한다.

셋째, 수영은 숨을 입으로 들여 마시고 코로 내뱉지만 헤엄은 코나 입 어떻게든 상관없다. 알아서 쉬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영과 헤엄의 가장 큰 차이는 호흡에 있다. 호흡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수영이냐 헤엄이냐로 구분할 수 있겠다.

다행인 것은 요즘 유튜브 선생님이 엄청나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지 국가대표급 강사에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다. 강사들마다 가르치는 것이 다르니 자기에게 맞는 수영을 하려거든 꼭 현장에서 배우길 추천한다. 경험상 수영만큼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코로나가 좀 잦아들고 수영장을 다시 찾은 지 어느덧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단 하나의 목표였던 통증 줄이기는 아직까지는 대성공이다. 허리와 몸의 통증이 많이 사라졌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고맙게도 꾸준히 하다 보니 마음의 근육도 함께 단단해졌다. 꾸준함의 저력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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