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듣기만 해도 모두가 아는 유명한 CM송의 가사.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아? 표현을 해야 알지. 특히나 사랑 표현이라면 더더욱!
“사랑해”라는 세 글자를 입 밖으로 꺼내야 상대방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거다. 나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언어로 표현되는 사랑을 좋아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2022년 4월 22일. 그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장면은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히 남아있다. 아침에는 대전으로 출장 가는 나를 엄마가 웃는 얼굴로 배웅해 주었다. 오후엔 대전에 도착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기깔나는 보쌈 정식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인턴이 끝난 후 처음으로 PM을 맡았던 프로젝트였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식하게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옆에 있는 좋은 동료들 덕분에 프로젝트를 잘 이어갈 수 있었고, 그날은 한 달간의 프로젝트가 무사히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서울역에 돌아와 동료들과 자축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까지 신나게 먹고 마신 탓에 버스도 끊겨 택시를 잡아야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잡히지 않자 친오빠에게 SOS를 쳤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려 나를 데리러 온 오빠의 차에 탔다.
이제 자면서 편하게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데, 오빠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엄마가 조금 다쳤어.”
아침까지도 멀쩡했는데 어디를 다쳤다는 거지?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예상과는 다른 말이 이어졌다. 엄마가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식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오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짓말처럼 미친 듯이 눈물이 났다. 옷으로 몇 번이고 닦아도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다친 줄도 모르고 동료들이랑 신나게 놀던 내가 너무 미웠다. 어쩐지 밤 10시만 되면 오늘은 언제 집에 오냐는 엄마의 문자가 오지 않았다. 그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한 치의 의심도 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았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래도 감사한 사실은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뇌출혈은 5단계가 있는데 3단계부터는 수술을 해야 한다. 엄마는 다행히 2단계로 출혈이 아주 심하지는 않아 수술을 하지 않고 중환자실에 있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은 면회가 금지였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야 면회가 가능한데, 의식이 되돌아와야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그건 엄마의 얼굴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출구 없는 터널에 갇힌 것처럼 막막하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졌다. 예고 없이 마주한 비극에 가족들은 매일 밤 소리 없는 울음을 내뱉었다. 소리를 내면 엄마가 쓰러졌다는 사실이 진짜가 될 것 같아서 약속이라도 한 듯 숨죽여 울었다.
매일매일 울면서 엄마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던 어느 날,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엄마는 무조건 괜찮아질 거다. 반드시 그럴 거다. 나의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신 것인지, 몇 주 후 엄마는 진짜 의식을 찾았고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름과 가을을 지나 병원에 있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쓰러진 날을 기점으로 우리 가족은 두 번째 삶을 맞이했다. 무뚝뚝한 아빠와 가족보다 자기 삶이 더 중요하던 오빠가 180도 달라졌다. 아빠의 모든 일상은 엄마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오빠는 둘도 없는 효자가 되었다. 아빠는 그날 이후 엄마를 절대 혼자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요리를 못하던 아빠는 엄마가 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우리 집 요리사가 되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옆에서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사랑해”라는 말이 없어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랑이었다. 아빠의 지극한 사랑에 엄마는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해 갔다.
‘띵’ 몇 달 전부터 나의 핸드폰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알림이 뜬다. “우리딸, 영양제는 챙겨 먹었어?” 엄마가 보낸 메시지 덕분이다. 정신없이 지내다 영양제는 고사하고 식사까지 깜빡한 날이라도 나의 답장은 항상 같다. “그럼~ 잘 챙겨 먹었지!” 딸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이 삶의 낙이던 엄마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침마다 내 손에 영양제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엄마의 마비된 왼쪽 팔을 하루도 빠짐없이 주무르는 아빠의 손길에서. 일을 조정하고라도 엄마의 병원 스케줄을 일 순위로 두는 오빠의 결정에서. 딸이 영양제를 잘 챙겨 먹었는지 걱정하는 엄마의 문자에서. 사랑한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확실하고도 뚜렷한 사랑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