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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여행 (5)

나의 첫 Bali, Ubud - 12/24.25

by 도현
발리, 마지막 날

발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크리스마스이브. 이날만큼은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늦은 아침, 천천히 일어나 숙소 근처 거리를 걸었다. 며칠 동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골목들을 다시 돌아보니, 작은 카페와 소품 가게, 그리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현지 사람들까지 모든 풍경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점심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사이볼과 파스타를 먹었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카페였는데, 문을 여는 순간부터 고요한 여유가 느껴졌다. 가족 단위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고, 주방 안에서는 현지 직원들이 리듬감 있게 접시를 옮기며 웃음을 나눴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곳의 느긋한 시간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 주문한 아사이볼이 나왔다. 새콤한 베리 향과 알록달록한 과일 색, 바삭한 토핑이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숟가락을 뜨자마자 과일의 산뜻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한국에선 비싸서 자주 먹기 어려운 메뉴라 그런지,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아사이볼은 든든한 식사이자, 이 여행의 기억을 닮은 한 그릇이었다. 가볍지만 오래 남는, 그런 맛.

손끝으로 전해진 위로

오후엔 마지막 일정으로 마사지를 받았다. 예약도 없이 들렀지만, 마사지사는 아가를 대하듯 부드럽게 나를 맞이했다. 먼저 발을 닦으며 물 온도를 확인하던 손길, “Are you okay?”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터치는 엄마의 손처럼 따스하고 세심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누군가에게 온전히 맡겨지는 기분이었다.

마법의 날이라 몸이 무거웠지만, 그 손끝이 조심스레 뭉친 부분들을 풀어주며 하나하나 위로하듯 어루만져 주었다. 눈을 감은 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평온함이 스며들었다.

이별의 노을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니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함께 여행하던 혜수쌤과 준수쌤은 며칠 더 머물기로 해서 나는 먼저 공항으로 향했다. 짧은 포옹과 “또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그랩을 타고 발리의 저녁 도로를 지나간다. 창밖으로 붉게 번지는 노을이 흘러갔다. 진하디 진한 하늘빛 아래,

이 도시의 불빛들과 음악이 서로 엉켜 흐른다. 여운이 남는 건, 아마도 완벽히 끝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리움이 있어야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돌아오는 길 위에서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비행기가 이륙했다.
기장님의 “Merry Christmas”라는 인사에 객실 안이 조용히 미소로 물들었다.

자정이 지나면서 비행기 창밖엔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아침에 한국에 도착하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발리의 따뜻한 바람은 사라지고, 하얀 숨결만이 공중에 머물렀다. 겨울 공기 속으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햇살은 멀리 남기고
차가운 공기가 나를 감싼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의 입구.
나는 다시 걷는다, 내 삶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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