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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여행 (4)

나의 첫 Bali, Ubud - 12/23

by 도현
요가의 성지, 발리의 아침

일어나자마자 요가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대했던 ‘알케미 요가센터(Alchemy Yoga Center)’다.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요기들이 발리 수련 시 꼭 들르는, 말 그대로 요가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대자연이 주는 힘이 그대로 스며 있는 공간. 알케미요가원의 건축물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유려한 곡선의 외관, 녹색과 나무색이 어우러진 따뜻한 질감, 마치 동화 속 요정들이 모여 사는 집 같았다. 건물 하나만 봐도 이곳이 단순한 ‘요가 스튜디오’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 ‘하나의 철학’ 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발리의 요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하타나 빈야사, 아쉬탕가 같은 익숙한 수련뿐 아니라, 아크로 요가나 소매틱 요가, 인요가, 싱잉볼 명상 등 다양한 형태가 펼쳐진다. 주말 저녁에는 음악과 춤, 명상이 어우러진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밤하늘 아래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키르탄 나잇(Kirtan Night)’에서는, 만트라를 부르며 묘한 연결감과 치유의 기운이 흐른다. 요가를 넘어 음악과 예술, 공동체가 한데 섞이며 연대를 나누는 것이 활성화 됐다.



발리의 요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하타나 빈야사, 아쉬탕가 같은 익숙한 수련뿐 아니라, 아크로 요가나 소매틱 요가, 인요가, 싱잉볼 명상 등 다양한 형태가 펼쳐진다. 주말 저녁에는 음악과 춤, 명상이 어우러진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밤하늘 아래서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키르탄 나잇(Kirtan Night)’에서는, 만트라를 부르며 묘한 연결감과 치유의 기운이 흐른다. 요가를 넘어 음악과 예술, 공동체가 한데 섞이며 연대를 나누는 것이 활성화 됐다.


요가원 한쪽에는 자체 제작한 요가 의류, 가방, 타월 등이 진열됐다. 특히 눈에 띈 건 요가 액세서리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대의 상징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와 귀걸이라 심플하면서도 보기 힘든 디자인이라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다. 또한 아로마 오일, 롤링 향수, 바디 스프레이, 로션, 코코넛 오일 등 향 제품들도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코코넛 생산이 풍부한 나라라 그런지, 대부분의 제품에 코코넛이 들어 있었다. 코코넛은 피부 보습에 좋다고 하지만, 내겐 그보다 ‘몸을 감싸주는 따뜻한 기억’에 가까웠다.


발리에서 마사지를 받았던 경험 이후로 나는 바디오일에 유독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아로마 워크숍에서 배운 향의 에너지를 떠올리며, 부족한 차크라의 균형을 맞추는데 도움을 주는 오일과 스프레이를 하나씩 시향 해봤다. 어떤 향은 마음이 진정되고, 어떤 향은 조용히 기분을 끌어올려줬다. 일부는 한국에 돌아가 수업에 사용할 용도로, 일부는 가까운 이들에게 건넬 선물로 고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아파리그라하(Aparigraha)-불탐.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말고,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요가의 가르침.

*아파리그라하는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 필요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고,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 두려움과 집착을 없애고, 만족감을 가지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모두 천연 소재로 수작업된 제품이라 그런지 가격대가 꽤 있었다. 솔직히 모든 걸 사고 싶었지만, 지갑 사정이 넉넉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언젠가 여유롭게 돈을 벌면 이곳을 통째로 들여놓고 싶을 정도였으니. 그 순간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요가원 한복판에서 욕심과 절제를 오가는 내 모습이, 참 인간적이었다. 결국 나는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서 요가원을 나섰지만, 묘하게 가벼웠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감각.


간호사로서의 삶이 늘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면,

요가강사로서의 길은 내 안의 과욕과 불안을 덜어내는 일이다.

발리의 햇살 아래, 나는 두 길의 교차점에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Power Vinyasa Flow-Good morning


우리가 수련한 클래스는 Power Vinyasa Flow였다. 넓은 강당 같은 내부로, 시원한 발리의 바람과 햇살이 함께 들어와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모닝요가를 잘해보자는 다짐으로 맨 앞줄에 매트를 폈다. 뒤를 돌아보니 30~40명 이상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괜히 앞줄에 앉았나?’ 싶었지만, 곧 ‘그래, 오늘은 나의 요가 면모를 보여주겠어’ 하고 혼잣말했다. (장난입니다.)


외국에서는 플로우나 아쉬탕가 수련이 특히 많은 듯하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보다 근육량이 높아서인지 플로우 수련에서도 차투랑가나 스탠딩 자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동양인은 골반의 구조와 유연성이 상대적으로 좋아 후굴 자세에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경향일 뿐, 개개인마다 신체적 특성은 모두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몸의 리듬과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도 수련의 한 부분이다.


나는 아직 차투랑가 단다를 반복하다 보면 수련 후반에 팔과 어깨의 힘이 빠져서 중간중간 쉬어줘야 한다. 힘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에너지를 조절하는 게 내 과제다. 대부분 초보자와 숙련자의 차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이런 순간의 태도를 말하고 싶다. 자신의 몸과 컨디션을 알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아무도 나의 몸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깊게 접근하면 되고, 멈춰야 할 때는 과감히 빠져나오는 것. 그게 진짜 숙련자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을 마친 뒤 준수쌤이 바이크를 타고 나타났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플랜트 비스트로(Plant Bistro)로 향했다. 이곳은 비건 음식으로 유명하고 준수쌤의 추천이 담긴 음식점이었다. 하늘은 높고 파랗고, 자연이 주는 기운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음식은 신선하고 가벼워서 많이 먹어도 속이 편했다. 여러 명이 함께 와서 다양한 메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카페처럼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가 찾은 별미는 젤라토였다. 출국 전날, 그 맛이 잊히지 않아 다시 찾아갔을 정도니. 그리고 찻잎을 직접 내린 오가닉 그린티(organic green tea)도 훌륭했다. 씁쓸함 없이 맑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Intuitive Yoga- It's okay. okay. okay.

점심을 마친 후, 우리는 Intuitive Yoga 수업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알케미와 달리 조금 더 로컬한 분위기의 수련원이었다. 계단을 따라 언덕을 오르는 길에 이미 땀이 흘렀고, 길 끝에 서서히 간판이 보였다. 숲이 펼쳐지며 작은 연못에는 연꽃과 물고기들이 떠 있었다. 오늘은 인요가 수련을 신청했기에 몸의 음적 요소를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락하기로 했다. 수련장은 오두막의 위층에 있었다. 고지대라 창밖으로 맑은 하늘이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어린 시절 시골에 놀러 온 듯 마음이 들뜨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날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감정이 선명하게 올라온다. 볼스터에 몸을 기댄 채 가슴을 여는 자세로 머물며, 선생님의 말이 귀에 닿았다.

“괜찮아요. 충분해요. 우리는 지금 자유롭고 평온합니다.”


그 한마디가 깊숙이 들어왔다. 내가 굳이 무엇으로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미 충분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오히려 가득 찬 것을 덜어내는 일이 더 필요했다.


We have enough. calm peace freedom. breathe in, breathe out.


타국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저 ‘나’로 존재하는 시간.

직업도, 나이도, 외모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완벽주의적이라 매사 독하다는 말을 부정하며 살아왔지만,

그 이면엔 스스로를 과하게 단정 짓는 나의 시선이 있었다.

그날은 달랐다. 그날만큼은 모든 정의와 평가가 사라졌다.

하늘을 보며 누워있는데, 그냥 행복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 조용했다.

담요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내 어깨를 감싸는 듯했고, 그 온도는 포근했다.

나는 포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 순간의 공기가 나를 품는 것 같았다.

그 시절의 내가 그 장소에서 평온을 느낀 귀한 시간을 앞으로

짬뿌한 릿지 워크 Go. tracking!

저녁 무렵, 혜수쌤이 말했다.

“근처에 바로 트래킹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곧 노을 질 시간이야. 어때?”

그렇게 우리는 짬뿌한 릿지 워크(Campuhan Ridge Walk)로 향했다.

‘트래킹’이라 하니 등산화를 신어야 하나 싶었지만, 대부분 샌들이나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길은 평탄했지만, 생각보다 오르막이 많았다. 중간쯤에서 숨이 차 잠시 쉬었고, 지친 외국인 여행자와 눈을 마주치며 “괜찮아요?” 하고 웃었다. 노을이 지며 하늘이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번졌다. 탁 트인 풍경에 가슴이 시원하게 열렸다. 그동안의 땀과 걸음이 모두 그 한 장면으로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장면을 눈에 담으려 했다.


그날 밤,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다. 잔에 와인을 채우며 서로의 ‘영원과 안녕’을 건배했다.

혜수쌤은 부산으로, 준수쌤은 또 다른 도시로, 나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밤이 깊어가며 사람들의 대화, 음악, 크리스마스의 조명과 장식이 어우러졌다. 유리창 너머로 반짝이는 불빛들이 흩어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4년 12월 23일 밤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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