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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여행 (3)

나의 첫 Bali, Ubud - 12/22

by 도현

24. 12. 22

발리에서의 아침, 예기치 않은 사건


오늘 우리는 다른 호텔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그곳 주변에는 알케미 요가원이 있고, 우붓 시내와 살짝 떨어져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근처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이나 기념품을 사러 갔다. 우리는 10시쯤 체크아웃을 하고 그랩을 불러 더하바 호텔로 이동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발리는 트래픽 잼이 심한 데다, 이동 경로의 언덕과 강가 쪽에서 큰 나무가 무너져 교통이 완전히 막힌 것이다. 걸어서 10분 거리도 차로는 똑같이 10분, 아니 오히려 더 걸리는 경우가 흔했다. 캐리어가 있어 꼭 그랩택시를 이용해야 했던 우리에게 상황은 막막했다. 다행히도 호텔 직원과 기사님은 친절하게 여러 경로를 제안해 주었고, 여러 대안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언덕을 올라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거리로 나오자, 오토바이와 차, 사람들로 온통 붐볐다. 순간, 길 한복판에 나앉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막함이 밀려왔지만, 오늘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 방법만이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통제된 길은 계속 막혀서 되돌아가는 차도 많았고, 대부분 오토바이나 걸어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캐리어가 있어 오토바이에 실을 수도 없었고, 가파른 언덕과 사람들 사이에서는 안전이 더 위협될 것 같았다.


“혜수쌤, 우리 그냥 캐리어 끌고 걸어올라 가요.”

마지막 수단이었다. 매연과 발리의 뜨거운 온도 속에서 힘들었지만, ‘어차피 걸을 거, 행복하게 걷자. 발리에서 이런 경험도 해보는 거 아니겠어?’라며 결심했다. 앞장서서 길을 트고 오토바이 사이를 헤치며 걸었다. 중간중간 헛웃음을 치면서 ‘이게 맞나?’ 싶었지만, 내려가는 길이 보이자 우리 눈앞에 선물처럼 빈 택시가 나타났다. 기사님께 “Can we take this taxi?” 물었고, “YES”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뻔했다. 그 후 택시로 5분 만에 더하바 호텔에 도착했고, 숨을 고르며 땀을 닦고 혜수쌤과 손잡고 서로 “오늘 정말 수고했다, 대단한 경험이었다”라며 웃었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기…)


더하바 호텔에서의 휴식

호텔에 도착하자 친절한 직원분들이 방 앞까지 안내해 주셨다. 이곳은 한국인이 많지 않고, 새로 지어진 지 얼마 안 돼 조용하고 깨끗했다. 웰컴 티를 내어주셨고, 우리는 벌컥 목을 축였다. 짐을 풀고 수영장에 들어가 시원하게 놀고,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으며 달콤한 여유를 즐겼다. 일사불란했던 아침을 지나 잠시 솔솔 잠이 오면서 잊고 있던 여유를 다시 되새겼다. 밤이 되면 이곳의 수영장은 더욱 아름답다. 은은한 조명 아래 큰 조형물에서 물이 떨어져 폭포처럼 흐르고, 잔잔한 수면 위로 불빛이 일렁인다. 그 물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린다.

부리또로 찾은 안정감

숙소 근처로 나와 급히 허기진 배를 달랬다. 아침 7시 조식 이후 오후 5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우리는 부리또가 먹고 싶어 멕시칸 음식점에 갔다. 타코와 부리또 등 여러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잠시 안정감을 찾았다. 우붓 시내와 달리 조용한 분위기였고, 거리는 한산했다. 한국으로 치면 연희, 문래동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무엇을 하려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과자를 샀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틀 뒤면 크리스마스이기도 해서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선택했다. ‘올모스트 크리스마스 Almost Christmas’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한 지붕 아래 모인 대가족의 이야기를 은은한 코미디로 풀어낸 영화. 한국에서 가져온 신라면, 열라면, 짜파게티 컵라면을 맥주와 함께 즐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호텔 안에서 이렇게 보내는 시간도 발리에서의 추억이 되었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요하고 행복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좋아하는 명상 음악인 Same song-Orbe의 곡을 들으며 호텔 책상 위에서 놓인 메모지에 하루의 흔적을 조용히 눌러 담았다.


밤의 끝자락에서

나를 이끌 힘을 내 안에서 비롯된다.
그 믿음은 타인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깨달음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렇게 마음을 다독일 때, 꼬인 실마리들이 서서히 풀려간다는 것. 남은 발리의 여행.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루들 보내기에도 충분하지 않으니 온전히 몰입하자고.
불을 끄고, 눈시울에 촉촉이 맺히고, 미소를 머금을 채 꿈나라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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