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Bali, Ubud - 12/19, 20
12월 19~25일의 4박 6일 발리 여행. 크리스마스를 무려 비행기에서 보냈다.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가? 세상에 이런 날이 있을까, 생각하며 웃음이 났다. 내겐 이 주어진 날들이 당연하지 않았기에 너무나 값졌다. 그래서 더욱 소중했고, 마음 가득 설렘으로 채워졌다. 생각을 비우고, 숨을 비우고. 비웠던 공간에 새롭고, 새 활력으로 채웠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자유롭고, 평온하며,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겠다고. Ohm shanti, shanti, shanti.
발리, 그 불현듯 시작
솔직히 말해, 나는 발리를 꼭 가고 싶어 안달이 났던 사람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가겠지” 정도로 마음속에만 묻어둔 여행지였다. 요가인들에게 발리는 익숙한 이름. 요가와 자연, 음식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곳.
yoga, nature , food , life...
많은 사람들이 리트릿을 위해 찾는 곳. 나에게는 언젠가의 막연한 장소였다. 그런데 10월의 어느 날, 도반 혜수쌤과 오랜만에 오전 수련을 마친 뒤 자연스레 점심을 함께했다.
혜수: “도현, 나 12월에 발리에 머무를 건데 시간 되면 와. 같이 호텔에서 자고, 수영하고, 요가도 하고.”
그녀의 한마디가 순간, 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듯 들썩이게 만들었다. 10초 고민 끝에,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 가자. 도현, 발리 가!”
최근 발리 항공편이 신규 취항 할인 프로모션을 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겹쳤다. 12월 19일부터 24일까지 일정 조정 가능하다. 크리스마스에는 서울에서 수업이 있으므로, 오전 도착이면 충분했다. 밤 비행기라 서울로 돌아와 바로 수업을 하는 건 조금 힘들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1월부터는 간호사로 돌아가며 해외여행은 한동안 꿈도 꿀 수 없으니까.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아떨어졌다. 마치 세상이 "넌 지금 발리를 가야 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도반 준수쌤도 함께하기로 했다. 혜수쌤과 준수쌤은 발리를 여러 차례 경험했고, 비건 맛집과 디저트, 로컬 요가원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 마음은 더 두근거렸다. 요가를 사랑하는 이들. 우리는 발리에서 만난다. 12월을 기다리며 나는 바로 항공권을 결제하며 발리를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출발 준비와 긴장감
출발 하루 전, 한국은 이미 눈이 내리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발리는 우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가벼운 외투와 우산, 상비약, 환전 지폐, 그리고 꼭 필요하다고 들은 샤워기 필터까지 챙겼다. 일본 외에는 해외 경험이 거의 없던 터라, 입국 심사와 비자, 각종 서류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동시에 추위를 벗어나 따뜻한 곳에서 몸을 데운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비행과 도착
드디어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7시간 반의 비행 동안 나는 내년 일정과 계획을 정리하며, 발리에서의 시간을 마음속으로 그렸다. “덴파사르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라는 기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다. 휴대폰에 쏟아지는 국제 메시지, 낯선 공기의 냄새, 후끈한 온도와 습도. 새삼스럽게 ‘정말 멀리 왔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밤 11시, 우붓(숙소)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 후다닥 입국심사를 마치고 미리 예약한 그랩을 탔다. 기사님과 아내 그리고 따님께서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길에 걱정도 됐지만, 기사님과 가족과의 짧은 대화로 긴장도 풀리고 밖으로 스치는 조형물들과 불빛들을 보며 인도네시아의 밤을 눈으로 담았다.
첫 숙소, 그리고 경이로움
드디어 도착한 첫 숙소, 카자네 무아. 문을 여는 순간 “와, 이게 진짜 발리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도시 호텔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물소리, 나뭇잎, 향기로운 꽃들이 나를 맞이했다. 마치 정글 속에 숨은 작은 세계 같았다. 숙소는 호텔 객실이 아니라 작은 펜션처럼 독립된 빌라였다. 마치 자연 속에 집 하나를 선물 받은 듯했다. 두 눈이 커진 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놀람과 경이로움이 쏟아졌다. 자다 깬 혜수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침대에 눕자 노곤한 피로가 몰려왔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 지금 발리에 있다니’ 그렇게 발리의 첫날밤은 조용히 깊어갔다.
햇살과 수영장, 그리고 작은 행복
이튿날 아침,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를 깨웠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하며, “자연 속에 산다”는 말이 무엇인지 단숨에 설명해 주었다. 꽃, 나무와 새소리가 어우러졌다. 그리고 우리만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배가 고파 조식을 먹으러 갔다. 호텔 조식은 따뜻한 티, 달콤한 빵, 요청 시 바로 만들어주는 에그베네딕트와 스크램블까지. 작은 행복이 가득했다. 발리의 음식이 나와 잘 맞았는지, 그날 이후로 레몬그라스 티와 발리 커피를 매일 즐기게 됐다. 혜수쌤과 “발리에선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자”는 약속을 나누며 웃었다.
계획 따윈 하지 말자. 발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우리는 수영장으로 향했다. 혜수쌤은 물에 잘 떠서 우아하게 수영했지만, 나는 물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 튜브에 몸을 맡긴 채 물장구를 치며 물 위를 천천히 떠다녔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미소가 번졌다. 햇빛이 온전히 내 몸에 닿는 순간, 마음과 정신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 순간의 행복. 작은 것들이 나를 위로해 준다. 사람마다 행복해하는 것들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이 행복이 맞음을 확신한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들은 거대한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들임을. 눈부신 햇살과 교감하는 짧은 순간, 오롯이 나에게 빛이 쏟아질 때 나는 '살아있구나'를 느낀다. 첨벙, 첨벙. 물속에서 나와 타월로 몸을 닦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비치 의자에 몸을 눕혔다. 따뜻한 바람과 햇살에 스르르 눈이 감기며 짧은 낮잠을 청했다. 아직도 발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채로, 꿈결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도현! 우리 마사지받으러 갈래?”
혜수쌤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사지.. 발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게다가 내 생애 첫 마사지를 발리에서 받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마사지, 발리의 향
구글 지도를 켜서 근처에 왓츠앱으로 Do you have any availability for this afternoon? I want a 90 minute massage for 2 people. 다행히 돌아오는 답변은 Yes we still have space.
발리에서의 첫 마사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마사지를 받으면서 그동안의 묵힌 피로와 뭉친 근육들이 살살 달래지듯 풀어졌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고, 마지막 따뜻한 수건으로 몸의 오일들을 닦아내주실 때 내 몸도 발리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부가 보드라워지고, 내 몸에서 은은하게 발리의 향이 나고 있었다.
발리의 자연과 꽃, 저녁
발리에서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열렸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꽃들과 나무들, 화려하면서도 귀여운 소형 꽃들, 상점과 집 앞마다 놓인 차낭사리(야자와 꽃으로 만든 신에게 바치는 공물)가 눈길을 끌었다. 한 송이, 향 하나에도 삶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는 특히 캄보자 꽃에 매료되었다. 둥글고 단아한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삶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라는 듯한 메시지 같았다. 부겐베리아, 히비스커스, 헬리코니아, 아마빌리스가 어우러진 정원과, 저녁으로 물드는 보랏빛 하늘까지. 발리의 자연은 그 자체로 호흡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공간이었다.
첫 저녁, 로컬 나시고랭 가게. 혜수쌤의 설명대로 라면 볶음밥 맛과 비슷했고, 배고픔과 설렘으로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웠다. 허기를 채운 뒤 걸어본 발리의 밤거리는 낮과 전혀 달랐다. 인센스 향이 여기저기 피어올라 발걸음을 붙잡았다. 은은한 바닐라가 섞인 그 향은 달콤하면서도 따뜻했다. “이 향을 한국에서도 꼭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향초와 인센스를 사 들고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고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정리했다. 내일은 요가로 시작하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도반 준수쌤이 합류한다. 발리의 첫 이틀, 낯설지만 친밀했고, 낯설기에 더욱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