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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여행(2)

나의 첫 Bali, Ubud - 12/21

by 도현

24. 12. 21

아침의 공기, 조금은 느긋하게


발리에 왔으면 요가를 해야지.

아침 햇살에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느새 이곳의 리듬에 몸이 익어버린 걸까. 발리의 하루들이 내 일상처럼 물들어간다. 여유롭게 즐기는 조식과 레몬그라스 티의 조합은 완벽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마시는 차 한 잔만으로도 하루의 속도가 한결 느슨해진다. 방으로 돌아와 요가복을 챙겨 입는다. 오늘은 ‘레디언틀리 요가(Radiantly Yoga)’에서 아쉬탕가와 인요가를 연달아 수련할 예정이다. 외국에서의 첫 요가 수업이라 약간 긴장되지만, 뭐 어때. 초심자의 마음으로, 옆 사람들을 슬쩍슬쩍 보면서 따라가면 된다.

길 위의 발견: BOOKSHOP

요가원으로 향하는 길에도 작은 즐거움들이 숨어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끈 건 작은 북샵이었다. 소품점과 서점이 섞인 듯한 공간이다. 인도네시아어 책, 차크라 카드, 요가 문양의 노트와 다이어리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눈이 번쩍였다. 나는 이런 문양을 유난히 좋아한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각자의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아사나 & 차크라’ 책과 코끼리 문양이 새겨진 다이어리를 샀다. 내년에는 꼭 이 다이어리를 꾸준히 써보리라 다짐하면서. (매번 3일 만에 끝나는 게 문제지만...)


발리의 첫 요가원, 첫 수련 (제가 방문한 요가원들은 모두 전통적인 요가 ‘수행’을 하는 곳입니다.)

레디언틀리 요가원에 도착하자 입구부터 요가 향이 은은히 퍼졌다. 리셉션 바로 옆에는 유기농·비건·건강식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식당 라운지가 있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미리 도착한 혜수쌤과 준수쌤과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눈동자에 설렘이 가득함을 확인했다.


오늘 수련은 두 타임.

리셉션에 가서 금액을 지불하고 원데이 수업에 내 이름을 기입했다.

Ashtanga inspired / YIN yoga — EOM DO HYEON.


미리 예약한 아쉬탕가와 인요가 두 타임의 수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탕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수련으로, 격렬하게 몸을 쓰며 땀을 배출하는 양요가다. 그 뒤를 받쳐줄 인요가는 음적인 에너지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요가 데이’였다. 계단을 올라 수련 공간으로 들어섰을 때, 잠시 말이 없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웅장했고, 요가원이 주는 기운이 몸으로 다가왔다. 크기뿐만 아니라 구조도 개방적이라 답답함이 전혀 없었다. 벽과 창문에 갇히지 않고 숲과 나무, 정글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아, 내가 발리까지 와서 요가를 수련하러 왔구나’라는 실감이 피부로 전해졌다.


아쉬탕가, 땀과 집중 사이

아쉬탕가 ADE 선생님을 만났다. 에디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며, 요가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아쉬탕가와 아직 친숙하지 않았고, 인텐시브 수련을 소화할 체력도 충분치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고수들이 많아 살짝 긴장이 되었다.


수련 전, 가볍게 몸을 풀고 명상으로 시작했다. 발리의 열기와 습도 덕분에 몸이 금세 풀렸지만, 손과 발에 흐르는 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해 요소는 모기였다. 몸과 매트에 모기 퇴치제를 잔뜩 뿌렸다. 처음엔 냄새가 강했고 수련 중 모기가 내 코에 앉아 중심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아쉬탕가는 한순간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타올로 땀을 닦아도 또 흐르고, 균형을 잡아도 모기가 코에 앉고 계속 내 몸을 물어 드리시티도 깨지며 가려움을 참아가면서 수련을 했다, 한 동작 한 동작이 나와의 싸움이었다. 중간에 힘이 잔뜩 빠져 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옆에서 함께 수련하는 도반들이 있어 중간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붙잡았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함께,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요가를 사랑한다’는 감각 하나로 모두가 연결된 시간이었다. 수련이 끝난 뒤 다 함께 찍은 사진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자주 꺼내본다. 그날의 공기와 땀 냄새, 집중의 정적까지 선명하게 떠오른다.

The weather and scenery of Ubud


인요가, 음의 에너지를 채운다.

아쉬탕가 이후, 우리는 바로 3층으로 올라가 선생님을 만났다. 볼스터와 담요를 챙겨 매트에 눕고, 발리의 시원한 저녁 공기와 밤하늘, 조명을 바라보며 수업을 시작했다. 인요가 동안 저녁 하늘은 실시간으로 변했고, 몸의 힘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반은 깨어있는 상태, 반은 잠든 듯한 상태로 천천히 흐르는 호흡과 움직임을 따라갔다. 선생님의 멘트가 공간에 잔잔히 울리며, 하루 종일 달려온 몸과 마음을 조용히 정돈해 주었다.


발리의 저녁, 황홀한 만찬과 달콤한 마무리


요가 데이를 마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발리의 길거리를 걸었다. 어디를 갈지는 정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구글 지도를 켜서 근처 음식점들을 탐색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Kusi였다. 라틴과 해산물을 중심으로 건강한 메뉴를 갖춘 식당, 칵테일과 와인까지 준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기다!” 우리가 동시에 외쳤다.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폈다. veggies side, sea food, beef & pork 다양하게 시키고 각자 원하는 주류까지 주문했다. 첫 번째로 기억에 남은 메뉴는 Shrimp Empanadas였다. 한입 베어 물자 속에서 새우와 부드러운 치즈가 따뜻하게 흘러나왔다. 단순한 간식 같지만,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는 오늘 하루의 피로와 땀을 씻어주는 듯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메뉴는 Octopus 요리!

바삭하게 튀겨진 감자와 돼지껍질 콘 위에 담긴 문어는 비주얼부터 압도적이었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 문어살과 조화로운 소스, 아이올리와 아보카도 무스의 조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맛의 층위가 계속 이어져, 한 입씩 음미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세 번째는 Duck 요리. 오리가슴살이 이렇게 부드럽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옆에는 단호박 퓌레, 야채, 소스가 곁들여져 있었고, 한입씩 즐길 때마다 입 안에 행복이 번져 살짝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서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수쌤은 최근 근황과 발리 여행, 요가 수련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도반 선생님들의 경험담과 생각을 듣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내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재미, 요가철학과 인생의 교훈이 함께 녹아 있어, 마치 배움과 즐거움이 동시에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와인과 칵테일을 한 잔씩 더 곁들이며, 우리는 남아있는 수련의 여운과 에너지를 천천히 음미했다.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이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루면서, 오늘 하루의 성취와 여유를 마무리해주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 달콤한 발리의 밤

저녁 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러 코코넛 가게에 들렀다. 발리 여행 필수 코스라 들었던 Tukies. 우붓 지역에서 유명한 코코넛 아이스크림 가게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였다.

가게 안에는 코코넛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코코넛 칩과 그래놀라 같은 다양한 상품이 나열되어 있었다. 보통 컵 안에 담긴 클래식 메뉴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는 코코넛볼에 아이스크림 두 스쿱으로 가득 담았다. 잘 먹는 세 명은 아이스크림과 주스, 브라우니까지 곁들여 폭풍 흡입했다. 처음엔 솔직히 ‘코코넛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겠어?’ 싶었지만, 한 입 먹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적당히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퍼지며, 씹을 때마다 견과류의 바삭함이 포인트가 되어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숟가락으로 삭삭 긁어먹으며, 매 순간이 만족스러웠다. 이 맛은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숙소 근처라 나는 다음 날도 또 찾아갔다.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시에, 옆에서 직접 코코넛을 자르는 장면까지 지켜보았다. 발리의 마지막 밤까지, 달콤함과 즐거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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