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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친구와 요가를 한다는 것은?

걸어봐! 내 감각을 표현해 봐! 둘이어서 더 기쁨도 두 배!

by 도현

사랑하는 친구와 요가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다.

나를 위해서 광주에서부터 먼 걸음을 달려온 나의 친구. 그녀의 이름은 유선.

이번 한 회차는 유선이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닐까 싶다. 나의 초중고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모든 삶을 공유하고 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좋은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슬픔이 있다면 같이 울어 주는 친구이다. 내 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함에 나 그래도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몸소 느낀다.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시작하겠다.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유선이 광주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291km 거리만큼 그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고 각자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이이다. 문득 혼자 있다가도 ‘아! 광주 가고 싶다. 그녀가 보고프면’ 저절로 전화번호를 누르게 된다. 내가 연락처를 외우는 유일한 친구인 그녀의 존재. 존중과 배려가 있기에 우리는 친구의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다.


10월. 내가 소속되어 있는 통합의학 브랜드 차원에서 클래스를 오픈했다.


걷기 명상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오롯이사유 하는 시간, 내가 느낀 생각들을 색으로 표현하며 차를 마시는 일정이었다.


그녀에게 시간이 된다면 서울에 올라와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이런 웰니스 클래스도 해볼래? 가볍게 제안했었다. 유선이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터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난 행복감에 소리를 질렀고 서울로 오는 날짜를 달력에 메모하며 손꼽아 기다렸다. 지방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차, 버스로 먼 지역을 가는 것이 얼마나 체력적으로 소모가 큰 지. 광주와 서울은 멀어 나조차도 부모님을 뵈러 일정조율을 하느라 골치 아픈 적도. 이동 자체는 엄청난 결심이 필요한 행위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 그녀에게 고맙고 고마웠다. 나를 위해 먼 거리를 달려와주는 그 애틋한 마음.


그녀가 서울을 도착했고 우리는 그동안 미뤄둔 담소를 나누었다. 그녀는 이런 클래스를 처음 경험하고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너무나 기대가 된다면서 들뜬 몸짓을 보여주었다. 사실 요가 및 명상은 나에 대해서 알아가고 표현하기에 다소 누군가는 낯설고 정적이다 느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또한 그녀에게 내가 하는 일들을 처음으로 직접 보여주는 거라 부끄러우면서 설레기도 했다. 클래스에 도착해서는 송정동 1유로 프로젝트와 차원의 공간을 소개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차원 대표님과도 인사를 나누며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데웠다. 오늘은 온전히 나와 그녀를 위한 일요일 오전이다.

구름 한 점도 없이 파란 하늘과 솔솔 부는 바람에 우리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까르르 꺄르르 서로를 보고 웃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사진으로 봐도 느껴지지 않는가.


깨끗한 바람이 불어온다.

가슴이 뻥 뚫리기 시작한다.

자전거 타는 소리, 숲의 소리,

새가 지적이는 소리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우리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른아른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너네들도 우리처럼 행복해서 춤을 추는 거지?


서울의 도심 속 숨겨져 있는 송정뚝방길에서

나는 왜 애틋한 고향이 생각나는지.

그녀와 함께 있어서 그런가 보다.


사실, 나는 종종 걷기 명상을 혼자 해보았다. “걷기,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한 거예요.”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것들, 그 속에 진짜 삶의 감각이 숨어 있다. 걷는 동안 우리는 깨어있음을 배운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셈이다.

하루 중 몇 분이라도, 스스로를 위해 걷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특별한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걸음 속에서 나를 느끼는 일이다. 그렇게 걷는 사이,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고,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진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곧 나를 만나는 길이다.


송정뚝방길에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있어 릴릴 선생님의 안내로 그곳에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걷기 명상에 관한 설명을 잠시 해주었고 그녀는 똘똘한 눈빛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보니 유선이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먼저, 코로 들어오는 공기를 의식하라 했다. 숨의 통로를 따라 몸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고, 발에 닿는 땅의 촉감을 느끼라 했다. 황토의 온도, 거칠지만 생생한 감각,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가을의 볕. 그 모든 것이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작고도 당연한 감각들이, 그날은 다르게 다가왔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숨이 들고나갈 때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 삶은 대개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나 다가올 일에 대한 불안으로 채워지지만, 걷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현재에 머물 수 있었다. 발아래에서 전해지는 흙의 감촉은 나를 땅과 연결했고, 잠시나마 모든 고민과 긴장을 내려놓게 해 주었다.


처음엔 혼자서 황톳길을 맨발로 천천히 한 바퀴 걸었다. 무엇이 있는지,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둘러보았다. 평소엔 그냥 바라보던 나무도 오늘은 다르게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가 나이테와 결을 들여다보고, 뿌리의 방향을 살피며 손끝으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자연 한가운데 깊숙이 몸을 담그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둣빛 새싹이 얼굴을 내밀고, 노란 민들레가 웃고 있었다. 들리지 않던 사람들의 조용한 대화와 숲이 들려주는 고요한 멜로디도 조용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숨은 점차 깊어지고, 밖을 향해 있던 시선은 내면을 향해 들어간다. 걷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현재에 머물 수 있었다. 발아래에서 전해지는 흙의 감촉은 나를 땅과 연결했고, 잠시나마 모든 고민과 긴장을 내려놓게 해 주었다.


혼자서 숲을 누빈 뒤엔 ‘함께’ 하는 명상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눈을 감으면 다른 이가 어깨와 손을 내어준다. 시야가 가려지면, 그 자리를 다른 감각이 채운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눈을 감은 사람은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디고, 혹시 막다른 길이나 발을 다칠 수 있는 지점이 다가오면, 곁에 있는 이가 살짝 방향을 바꾸어준다.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따스한 배려가 전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지지자가 되어 송정 제방길을 걸었다. 눈을 감은 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실눈을 뜨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지만 그녀의 어깨와 손을 꼭 잡고, 내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내가 내딛는 걸음마다, 옆에 누군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그 사람이 그녀였기에, 그 짧은 1분이 유난히 평화로웠다.

걷기 명상을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차원으로 돌아왔다. 이어진 시간은 방금 전의 감정들을 색으로 표현해 보는 작업이었다. 마치 고등학교 미술 시간 같달까. 정말 오랜만에 물감을 짜고, 팔레트와 붓을 준비하니 손끝이 낯설었다. 나는 주저 없이 큰 붓을 들었다. 흰 패브릭 위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과 면을 만들었다. 어떤 구상도 없이, 그저 붓과 함께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녀도 나와 같았다.


친구 아니랄까 봐.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 결과물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결과가 어찌 되든 괜찮다고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졌다. 빈 공간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어떤 색이면 좋을까?” 서로의 감정을 색으로 묻고 답하는 일이 그토록 부드럽고 신이 난 줄 몰랐다.


물감이 손에 묻고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조차도 “멋진 예술 행위의 흔적”이라며 웃어넘겼다. 각자의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짧은 감상을 나누는 순간은 평온 속에 머무른 듯하다.


서툴고 낯선 도구를 손에 쥐고, 나를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간만의 경험이었는지. 아무 목적도, 평가도 없는 창작은 어쩌면 치유와 가장 가까운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는 그 조용한 감정의 언어를 통해 면밀히 가까워졌고, 서로의 내면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이 시간을 통해 새로운 감정과 마주했기를. 그리고 언젠가, 오늘의 이 장면을 따뜻한 기억으로 떠올릴 수 있기를.


그녀도, 나도. 잊지 못할 10월 19일이다.

저번에 읽었다던 광인 책에서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

"사람들은 저의 밖만 보지만 그래서 저는 제 안을 봐야 해요.
그리고 거기에서 눈을 뗄 수 없죠"

앞으로 인생 중에 그런 사람들보다 더한 사람들한테 상처받을 상황이 생기면 꼭 너의 안을 더 들여다봐줘. 그리고 나는 너의 안과 밖을 다 지지하니까 모든 모습들을 다 사랑해 줄게.

-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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