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아 보살피다
버라이어티 한 내 삶, 한남동에 공간을 사용하다니.
아르바이트와 개인 레슨, 그리고 요가 강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문득 ‘편안하게 레슨을 할 수 있는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개인 레슨을 할 때는 공간의 제약이 많다. 대여는 기본 2시간부터 시작이고, 요가매트 구비 여부나 시설 상태, 거리 등 여러 조건이 걸려 있었다. 무엇보다 매번 차담 세트와 싱잉볼을 들고 다니는 일이 너무 번거로웠다. 짐을 옮기다 보면, 수업을 하기 전부터 이미 진이 빠져버리곤 했다.
‘서울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내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공간은 정말 없을까?’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곳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도현, 그냥 포기하자.’
그렇게 체념하던 찰나, 마지막으로 당근마켓의 ‘동네생활’ 게시판을 열었다.
무심코 ‘공간대여’를 검색했는데, 마침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멀지 않은 한남동이 눈에 띄었다. 6호선 라인으로 다섯 정거장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곧, 어떤 확신처럼 변했다. 나는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게시물이 무려 8개월, 아니 거의 9개월 전에 올라온 글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아직 남아있을 리가…’
그런데 놀랍게도 몇십 분 만에 답장이 왔다. 대표님은 “한번 구경 오세요. 직접 보면 느낌이 다르실 거예요. 계약은 굳이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따뜻하게 답해주셨다. 대표님은 린넨과 패브릭을 활용해 리빙 제품을 디자인하는 레OO룸(Room)의 한나 대표님이었다. 임신 중 요가를 해본 적이 있고, 자신의 거실을 개인 레슨 장소로 활용한 경험도 있다고 하셨다. 그곳은 지하와 1층으로 이루어진 작은 사무실 겸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마케팅, 음악, DJ, 패션, 쇼핑몰 등 각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서로의 작업이 조용히 공존하면서도, 공간엔 묘한 에너지가 흘렀다. 나는 개인 책상은 필요 없었기에, 한나님은 “거실 공용공간을 활용해 보시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해 주셨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조용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그 공간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아늑한 한남동 주택 안, 부드러운 햇살이 드는 창가, 그리고 차를 우려내는 나의 모습. ‘미련 남은 남자친구’처럼, 그 공간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짐을 두고 편히 오갈 수 있고, 부엌에서 차를 준비하며 차담을 나눌 수도 있다. 1:1 레슨 위주의 나에게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적당함이 유독 끌렸다.
아, 분위기가 뭐랄까. 목조 모듈러식 구조에 북유럽 인테리어를 더한 듯한 온도였다.
나무의 결과 천의 질감이 만드는 부드러운 여백. 그곳에서는 어떤 대화도, 어떤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 같았다. ‘잘할 수 있을까? 잠깐의 불안이 스쳤지만, 이내 스스로에게 말했다.
“일단 시작하자.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빈틈은 나중에 메우면 돼.”
후회하더라도 괜찮다고, 이 시간 자체가 나에겐 귀중한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한나님과 계약을 협의했다.
그느르다, 첫 호흡 — The Beginning of Warmth
여기는 거실. 공용공간에 커튼을 치면 두 공간으로 나뉜다.
큰 테이블에서는 사람들과 차를 나누고, 커튼 너머 안쪽 공간에서는 조용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원할 때 자유롭게 시간을 정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이렇게 설레는 일인지 몰랐다. 햇살이 들어오는 오후, 한적한 한남동 골목, 은은한 인센스 향. 그 모든 요소가 내게 “이제 정말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요가를 안내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실감했다. 요가인으로서 한층 성숙해진 책임감과 무게가 느껴졌고, 그만큼 내 안에서도 단단한 의식이 자리 잡았다. 공간을 소개하고, 골목길에 작은 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싶었다.
한나님은 “좋아요, 꼭 해요!”라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발리 여행 중 표지판 디자인을 구상했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제작된 표지판을 마주했다.
우드톤의 바탕에, 내 몸의 타투 문양과 닮은 선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 표지판은 마치 나를 대신해 그곳을 지키는 친구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요가 출근길마다 그 표지판과 인사했다. 그느르다 요가는 내 26살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눈 내리는 겨울,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는 6개월 동안 그 공간은 나의 결정과 의지로 차근차근 완성되어 갔다.
24.03.28 일기
몇 개월, 아니 몇 년을 바라보며 적는다. “그느름, 그느르다"가 누군가를 돌보아 보살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고요와 사색에 잠겨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가 될 수도, 나를 빛나고 가꾸어주는 것들을 보여주는 곳으로 천천히 만들어야겠다.
그느름=나름 표현하는 형용사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올바르게.
나는 자주 막연한 바람을 노트에 적는다. 입 밖으로 꺼내고, 다시 한 줄 덧붙인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완성된 그느르다의 요가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종착지를 향해 걷고 있다.
사실, 종착지가 꼭 있어야 할까?
나는 미완성의 결말을 더 좋아한다.
그 여백이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하니까.
26살에 만든 그느르다 요가는 그 시절의 나로 온전히 채워졌다. 이곳에서는 프라이빗 개인레슨, 싱잉볼 테라피, 임산부 요가, 차담, 작은 요가 모임까지 틈틈이 이어졌다. 공간은 그렇게 천천히 온기를 품어갔다. 잠시나마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러 온 이들이 내면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감사하게도, 어느 날은 수업 사진에 텀이 생겨 문득 ‘나랑 차 한 잔 마시러 올 사람?’이라는 글을 스레드(SNS 플랫폼)에 남겼다. 마침 지나가던 한 분이 들어와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의 똘망한 눈빛과 싱그러운 에너지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Toddler Yoga Class – Every bunny is a yoga bunny
‘토들러 요가 같이 한 번 해보지 않을래요?’
한나 대표님의 제안으로 처음 토들러 요가 클래스를 열게 되었다. 대표님께서 알고 계신 영어 선생님도 참여해 영어 동화와 요가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성인 수업과 달리, 아이들과의 요가는 동작보다 ‘집중 시간’과 ‘놀이의 흐름’이 더 중요했다. 어떤 요소를 중심에 두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 나를 움직였다. 또한, 아이와 부모가 동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했기에 전혀 다른 준비가 필요했다.
수업의 주제는 “Every bunny is a yoga bunny.”
에리카 선생님이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작은 토끼였다. 숲 속을 달리고, 나비를 쫓고,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잠드는 이야기. 그 동화의 흐름에 맞춰 아이들과 동작을 이어갔다. 그 장면을 따라 아이들은 토끼처럼 점프하고, 바람을 흉내 내며 팔을 흔들었다. 부모님들도 아이 옆에서 몸을 움직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어, 리듬, 몸짓이 섞인 밝은 공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에는 모두 아기 자세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Goodnight, little yoga bunnies.” 그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많은 관심이 이어져 두 타임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아이들의 호흡에 맞추어 노래와 율동을 섞었고, 작은 리듬 변화에도 반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도 아이들의 집중이 이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요가’라는 단어가 굳이 어렵게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짧은 순간에 시선이 바뀌고, 리듬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요가의 시간’이 꼭 고요할 필요는 없다는 걸 느꼈다. 움직임과 멈춤, 그 사이에 있는 평온함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정리를 마친 뒤, 한나 선생님과 에리카 선생님과 함께 간단한 시간을 가졌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과 과자 몇 가지가 올려졌다. 서로 수업의 뒷이야기나 아이들의 반응을 이야기하며 가볍게 웃었다. 오랜 준비 끝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던 시간이었다. 처음 시도한 토들러 요가는 내게 하나의 실험이자 배움이었다. 요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호흡을 관찰하는 일’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은 손과 발로 따라오던 아이들의 리듬은, 그 자체로 완전한 요가였다.
NOT THE END
요가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수업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회원님과 소통하는 모든 일을 스스로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각자의 단계에서 요가 수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순간들은 내게 큰 행복이었다. 그느르다는 단순한 공간을 넘어, 내게 네잎클로버의 한 조각이었고, 요가 도현으로서 나를 더욱 빛나게 해 준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웰니스 크루 활동, 주얼리 엠버서더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를 세상에 알릴 기회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모든 순간이, 내 삶과 수련의 연장선 위에서 조용히 이어졌다.
현재, 그느르다 요가는 잠시 재정비 중이다. 수련에서도 아사나를 할 때, 신체의 각 부위에 힘을 주고 빼는 순간이 있듯이, 삶에서도 집중하며 열정을 쏟아야 하는 때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 나는 나만의 취향으로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진심과 사랑을 담아 인사할 수 있는 곳으로.
언젠가 다시 문을 열 그때, 이곳에 쌓인 모든 따스한 기억이 살며시 피어나 공간을 가득 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