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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삶, 내가 꿈꾸는 지도자

餘白 여백

by 도현

지나온 삶의 과정들이 앞으로의 빛날 여정의 밑거름이 될 테니. 2023-2025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좋은 사람들과 계속 연이 닿아 건강한 음식을 접하고, 귀하디 귀한 차를 마시고. 그저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아도 편했던 자리들. 새로운 시야, 올바른 가치관까지 형성할 수 있었던.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던 것은 내 곁을 항상 지키고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이다.


그간의 잊고 있던 감정들과 생각들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다. 아빠가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 “도현”으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사람 요새 더욱 이름의 뜻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비움

진정으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때에 찾아온다.

정말 모든 것을. 마치 옷을 벗겨 놓은 채의 상태처럼,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풀어졌을 때 나는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면의 나는 무엇인가?’


나를 진심으로 들여다볼 때는 여유나 시간, 공간이 충분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비워졌을 때’이다.

그때의 몸과 정신은 순하고 깨끗하다.

무언가에 방해받지 않고, 둘러싸이지 않으며, 치장되지 않은 상태.

추궁, 비관, 확신 같은 감정에서 멀어졌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실체를 알아차린다.

비워낸다는 것은 단순히 비어 있음이 아니라, 본질이 드러나는 일이다.

잡음이 사라질 때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처럼,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맨 얼굴임을.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餘白 여백.

나는 여백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일을 처리하고, 혼자 야무지게 살고, 혼자서도 잘 해내가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조금 내려두려 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버거워도 참았다. 다음날, 다음 주의 체력을 끌어다가 쓰며 최소한의 휴식만으로 다시 충전했다. 전부 소진해 며칠간 침대 위에서 약을 먹고 골골된 적도 참 많다. 가끔 내 모습이 불쌍하고 처량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제 너무 무겁게 살지 않으려고 한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여백이 많고 틈이 보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의 도화지에는 흰색, 여백 없이 다양한 색으로 채우고 칠했던 것 같다. 과하게 덧대다 보면 도화지는 울어버리기 마련이지. 종이가 울다 못해 찢어질 수도 있다.


욕심을 덜어냈다. 덜어내고 그저 나는 황량한 초원 위에 서있다. 정적이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나의 도화지는 지금 어떤 색 한 점도 없이 깨끗한 흰색이다.

낙서도 가능하고, 물감도 그리고. 그저 그냥 도화지 자체로 두어도 괜찮다.


여백. 잔잔함.


누군가 찾아오고 스며들 수 있게. 누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조금 내어주고 싶다. 사실 나는 혼자 못하는 게 투성이다. 어리광 피우는 것도 좋아하고 챙김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일궈내다 보니 맞는 것도 모르겠고 충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비우려고 한다. 사람들과 함께, 베풀고 나눔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풍요로움. 여유.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할까? 기다리고 , 침착함을 유지한 상태를 연습할 것이다. 연습하다 보면 언젠간 내 삶의 패턴으로 자리 잡아 자연스레 몸에 베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나의 자아는 어떤 형태로 일궈져 있는가. 스스로의 삶에 주체가 되지 않은 채 하루들을 살다 보면 텅 빈 허무함이 밀려온다. 나의 주체를 두고 빈 껍데기인 나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실상은 제자리걸음이었을 뿐. 요가는 나 자신을 되찾게 해 주었고, 진짜의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 손내밀게 만들어주었다. 요가는 내 삶을 구했다. 요가강사, 간호사라는 직업적 특성과 결합하다 보니 요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내 수업을 단지 아사나로 한정 짓고 싶지 않다. 멋진 아사나가 수업에, 수련에 전부는 아니다. 회원 분들께 나의 내면에 깃들 흔적들, 알아차림, 치유와 회복 등이 그저 수업에 녹아내릴 수 있게.


날마다 개인 수련을 하는데도 아직 나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때도 종종 나타난다. 완성보다는 계속 미완성으로 꾸준히 죽을 때까지 요가하고 싶다. 고통,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을 때, 요가는 다시 나를 일으키는 힘이 돼주었다. 사랑, 행복, 기쁨에 빠지면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요가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내 삶을 굳건하게, 균형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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