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먹는, 고상한 수영인
띡띡띡띡. 띠디디디.
앗, 또 틀렸다. 현관 비번이 뭐였더라?
꼬르르르륵.
빨리 기억을 해보자.
띡. 띡. 띠디디딕. 띠딕.
휴유. 다행이다. 아직 치매는 아니네. 오늘의 실수는 기억력의 잘못인가, 아니면 공복 수영 후 아사직전, 식욕 폭발의 부작용인가.
한 달 만에 수영장에 갔다.
발목 부상, 허리 삐긋에 갱년기 증상까지. 골골골 골짜기 한가운데에서 우울고개를 지나 어디선가 빛이 느껴질 즈음,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수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르신들의 환대가 쏟아졌다.
"아니, 어디갔다 왔어?"
"이사 간 줄 알았어?"
"어디 아팠어?"
기분 좋게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출근하시는 분들은 각자의 일터로, 전업인 분들은 아직 수영장 출근 전이다. 말 그대도 1인 1레인이 가능한 황제수영 타이밍. 반투명 천장을 통해 적당히 들어오는 햇살, 출렁출렁 나를 향해 인사하는 물결.
손과 발을 저어 물의 감촉을 느껴본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물을 느끼고, 잡고, 젓고, 헤쳐나가는 것.
절대, 무리하면 안된다.
한 달동안 금수(禁水)하느라 우울고개를 다녀왔는데, 또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예전처럼 32분을 쉬지 않고 30바퀴를 도는 뺑뺑이는 이제 자체 금지다. 한 바퀴 돌고, 종아리 풀어주고. 한 바퀴 돌고 발목 스트레칭하고.
뺑뺑이 욕구를 애써 참으로 딱12바퀴만 돌고, 수중 걷기를 하다 나왔다. 예전의 3분의 1도 안 되는 운동량이다. 그런데 왜일까. 배는 예전보다 훨씬 더 고프다.
공복수영에 대한 보상심리인가? 수영하고 나오면 미친 듯 배가 고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영은 빡세다.
물 속은 공기보다 훨씬 무거운 저항을 품고 있어서, 팔다리뿐만 아니라 전신이 쉼 없이 움직이다. 호흡조차 땅 위와는 다르다. 거기에 차가운 수온이 체온을 빼앗으면, 몸은 본능적으로 생존 모드로 전환한다. 식욕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한 가지가 더있다. 땅 위에서 운동할 때는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지만, 물속에서는 갈증을 느끼기 어렵고 수분을 보충하기도 쉽지 않다. 탈수 상태를 뇌가 식욕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즉, 수영 후 몸은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요구하는 몸으로 바뀐다. 12바퀴밖에 안 돌았어도, 몸은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알고 나니, 수영 후 폭식에 느꼈던 한심함과 자괴감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닌, 살기 위해 먹는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영을 하고 나면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게 되는 것이 아닌가. 수영 후 폭식은, 처음부터 살기 위한 행위였다.
장보는 기쁨, 요리하는 과정, 먹는 즐거움을 그린 에세이 《먹는 기쁨에 대하여》에서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살기 위해 먹는 그런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얼마나 삶의 효율이 높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영원히 고상한 사람 같은 것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했다.
_p.347, <먹는 기쁨에 대하여>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살짝 다르게 읽힌다. 수영인은, 의도치 않게, 살기 위해 먹는 고상한 존재가 된다. 몸이 그렇게 만들고, 본능이 그렇게 이끈다.
살기 위해 먹는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맛있게 먹는 기쁨을 죄책감 없이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수영을 권한다.
한 달만의 수영. 몸에서 나는 수영장 소독약 냄새가 오늘따라 향수처럼 느껴진다. 수영복을 건조대에 널며 찰랑거리던 물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일 수영 후에 먹을 것들을 벌써부터 생각한다.
오늘은 무엇을 먹어서 또 스스로를 기쁘게 할 것인지.
_p.349, <먹는 기쁨에 대하여>
수영인은 오늘도 살기 위해 헤엄치고, 살기 위해 먹는다. 이보다 더 고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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