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인테리어를 하자니 한 달 동안의 거주공간과 같이 보관이사라는 걸 알아봐야 했다. 공사기간 입주하기로 한 9평 원룸은 가구와 가전이 빌트인 된 곳이어서 겨우 '살이'를 할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로 25평 집에 그득 찬 물건은 버려지든 혹은 어디든 갈 곳이 있어야 했다. 오다가다 공유창고같은 곳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사를 하며 보관비를 받고 이삿짐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찾아보며 처음 알았다.
기차다. 머리들 좋은데!
찾아보니 좋은 맞춤서비스는 널리고 널렸으나, 문제는 늘 비용이었다. 1차 이사> 이삿짐 창고보관> 인테리어 후 2차 이사의 순서로 이뤄지는 것이어서 2번의 이사비용과 한 달 기간의 보관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전이고 가구고 죄다 버리고 만화책과 옷만 보관하기로 했는데도 견적 비용은 200만 원을 훌쩍 넘어버리고 말았다.
전문가 포스를 뽐내던마흔 후반쯤의 이삿짐센터 여자분은 우리 집을 쭉 훑더니 처음에 260만 원 정도의 견적을 내미셨다.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이놈의 견적을 어찌 뜯어봐야 할지 감이 안 섰던 나는 그저 비싸요를 외칠 뿐이었다. 예산이 200만 원이라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두꺼운 금 팔지를 흔들며 견적을 요리조리 고치고는 말씀하셨다.
사모님이 주방그릇 직접 포장하실 수 있으세요? 이사는 남자 둘 여자하나가 팀이에요. 세분이 오시면 260이 기본이에요. 그런데 주방에 포장할 게 없으니 사모님이 직접 하시고 남자 두 분만 오시는 걸로 해요. 2차 이사 들어올 때는 가구가 없으니 사다리차를 없이 엘리베이터로 하는 걸로 해서 210만 원에 하시죠.
하도 똑 부러지게 말씀하시기에 질문하나를 못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직접 이삿짐 서비스를 예약한 남편도 내가 느낀 전문가의 포스를 느꼈는지 내가 그녀의 얘기를 했더니 단번에 동조하더니 일을 똑 부러지게 한다고 사람이 믿음직스럽단다.
그녀는 계약금과 중도금이체 후 현금영수증도 요청할 때마다 따박따박 보내주어 까다로운 남편의 신임을 얻어갔다. 현금영수증을 세 번 네 번에 걸쳐 요청해도 해주지 않은 인테리어 업체와 비교되어 더더 똑 부러진 사람이 되어갔다.
첫 이삿날. 이삿짐 센터에서 두 남자분만 오셨다. 두 분 중 한 분은 계속 우리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며 본인이 얼마나 잘하는 지를 어필 하셨다. 짝꿍에게 계속 지시를 하고, 본인 마음에 안 들면 타박을 하며 본인이 이사업무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냈다. 짐을 옮기느라 바쁜데도 본인이 아니면 이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자꾸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이사가 잘됐음 하는 마음에, 또 현장의 분위기가 본인말처럼 그분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여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분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분은 본인이라면 다시 이사를 올 때 지금 있는 세팅 그대로 정확하게 이삿짐을 옮겨주는데, 2차 이사는 주말이어서 본인은 올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2차 때도 가능하면 와달라는 말씀을 드렸다.
4주가 다 지나가고 2차 이삿날이 다 되었다. 똑 부러진 이삿짐센터 여자직원분은 2차 잔금 확인 문자를 보내왔다. 어! 금액이 이상하다. 55,000원이 차이가 난다. 내내 그녀를 칭찬했던 남편은 이상하다고 자기가 한 계산을 의심하며 다시 두들겨본다. 애초에 견적을 받은 나도 들들 볶는다. 다시 확인해 봐. 우리가 맞아. 몇 번의 확인 후에 금액이 잘못됐다 문자를 보낸다. 그녀의 긴 침묵 후에 문자가 왔다. 그러네요. 수정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뭐야. 말투만 똑 부러진 거야?
2차 이삿날도 그랬다. 일 잘하기를 자처한 분은 다행히 이 날에도 나타나셨으나, 본인의 어필과는 달리 책을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아무 데나 마구 꽂으셨고, 덕분에 2주도 지난 지금도 짐들은 정리 중에 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아이 책상의 조명 등의 콘센트를 찾는 과정이었는데, 그분이 엉뚱한 콘센트를 꽂고는 안 되는 이유가 조명이 고장났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대충 상황을 덮고 가려했기 때문이었다. 책상콘센트는 조용히 짐을 나르시던 그분의 짝꿍이 찾아서 선 정리까지 해주시고 마무리가 되었다.
이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타인에 대한 무심함이었다. 사무실에서 참하게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보다 밖에서 야무지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스스로 포장을 잘하는 직원이 더 평가가 좋은 걸 보며 이놈의 더러운 세상을 외쳤더랬다. 그렇지만 나도 포장에 쉬이 속는다는 걸,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번에 또 알아버렸다. 똑 부러진 그녀나, 주도적인 남자직원 분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덤덤히 제 할 일을 해낸 이들도 기왕지사 열심히 한 일, 빛날 기회가 있었으면 싶다. 가끔 '나 열심히 했어요!', 그 힘들지만 필요한 한마디를 뱉어냈음 싶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져버리는, 뻔뻔한 한마디 뱉기가 묵묵히 일하는 것보다 힘든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나라도 알아봐 줘야겠다. 나도.. 내가 알아봐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