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달린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깐 핸드폰을 본다. 중요한 메시지는 없다. 그저 늘 습관처럼 올라온 내용이다. 설거지를 한다. 씻을 그릇이라야 냄비,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이다. 밖은 춥다. 오늘 비가 조금 내리더니 더 추워졌다. 운동복 바지와 가을 후드잠바를 입는다. 그 위에 잠바 하나를 더 입는다. 음식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아들이 사 준 러닝화를 신는다. 발걸음이 가뿐하다.
집건물 주차장을 지나 음식쓰레기 버리는 곳까지 걸어서 1분 거리다. 그곳을 지키는 아저씨 한 분이 가끔 주변을 왔다 갔다 하신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지 확인하신다. 오늘은 안 보인다. 제주도에는 분리수거함이 있는 곳마다, 어느 한 분이 그곳을 지키신다.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걷는다. 바로 바다가 보인다. 도두항 주변을 걷다가 뛰기도 한다. 달리는 인도 옆 담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바다가 있다. 밤바다 파도 소리가 바다임을 알려 준다. 수평선, 일정 간격을 두고 줄지어 반짝이는 불빛, 갈치잡이 배라고 한다. 바다 위 가로등일까! 일곱 색깔 무지개, 인도와 바다 사이에 낮은 담에 칠해진 색이다. 밤이면 조명을 받아 알록달록 더 뽐낸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달리고, 달리다가 걷는다. 10여분이 지나고 나니, 몸에서 후끈후끈 열기가 난다. 추위를 이겼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달린다. 단체 여행객이 많이 보인다. 일주일 내내 매일같이, 이곳을 즐기러 온 사람을 본다. 단체 관광객, 연인, 가족, 학생 수학여행,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쳐 달린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그들이 행복한 모습이어서 나도 행복하다. 늦은 밤인데도, 내가 달리고 걸을 수 있는 건, 그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들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힘을 더해 주는 사람들에 속한다.
나는 하루를 활기차게 살아간다.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교실 안, 나에게 안겨 오는 아이들, 팔 벌려 안아준다. 내가 행복해지는 비결이다. 다독이고, 가르치고, 들어주고, 받아 준다. 함께 웃고, 같이 달리고, 실수한 것을 사과한다. 내가 나를 성숙시켜 가는 방법이다. 퇴근 후, 홀로 집에 앉아 마음을 정리한다. 잔잔한 파도처럼 마음속 기쁨이 피어난다. 나와 나, 나를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나에게 정성껏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