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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을 Aug 24. 2024

똑 단발 여고생의 겨울 도시락

철제도시락과 난로의 합작으로 만든 겨울 도시락

철제도시락과 김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초등학생인 아들이 개학을 했다. 점심을 안 먹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은 먹을 것을 찾는다. 


"엄마, 밥 줘. 원래 급식도 맛없었는데 반에서 먹는 새로운 급식 배급하는 곳 밥은 더 맛이 없어서 잘 못 먹었어."


"9월 중순은 되어야 급식실 새 단장이 끝난다던데? 맛없어도 먹어야지. 어떻게 굶고 수업을 듣니."


귀찮지만 밥을 잘 못 먹었다는 아들을 위해 황급히 때 늦은 점심을 차렸다. 느닷없는 점심을 차려 달라고 하는 바람에 반찬은 계란 프라이와 깡통햄을 구워주었다. 조미된 김을 한 봉투 뜯으니 급한 대로 아들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상이 차려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또 투덜 되었다.


"계란은 덜 익었고 깡통햄은 짠데."


신랑이나 친정 아빠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반찬 타박을 11살짜리에게 듣고 있자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깡통햄은 구경도 못하고 밀가루 잔뜩 들어간 소시지만 있어도 꿀 맛이었어. 계란은 일 인당 한 개씩밖에 못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반찬 투정하면 복 달이 난다."


"옛날엔 다 없었겠지. 요즘엔 다 있는데 왜 자꾸 엄마는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이랑 비교해."


"비교가 아니라 반찬 투정하고 편식하지 말라는 이야기야."


얼렁뚱땅 반 한 공기를 먹기에 계란 한 개와 깡통햄 몇 점을 먹고 일어나는 아이를 뒤로하고 남은 음식물 청소와 설거지를 하자니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났다.



   



1996년 나는 핀란드에서 3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귀국을 하였고 아빠의 회사 발령 때문에 아무 연고도 없던 춘천에서 살게 되었다. 무궁화호가 아직 다니던 시절 남 춘천역은 아파트 사이로 논과 밭이 보였다. 마치 타이머신을 타고 시골에 살러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첫 등교 날 반 아이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내게 호기심을 보였다. 심지어 핀란드에 아이가 오는 줄 알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머리도 귀밑 3센티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하며 교복을 입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나에겐 너무 낯설었다.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모습은 딴 세계였다.


겨울이 되니 교실 한가운데 난로가 설치되었고 난로의 불이 꺼지지 도록 난로를 담당하면 당번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난로가 설치되자 더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아침에 등교를 하는 아이들이 모두 도시락을 꺼내 난로 위에 차례로 쌓았다. 난로 위에 철제 도시락이 산 더미처럼 쌓여서 난로 뒤에 앉는 아이는 도시락을 피해 칠판을 봐야 할 정도였다. 급식제도가 없었던 그때는 모두 도시락을 집에서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연히 보온 도시락에 도시락을 싸갔는데 아이들은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철제 도시락을 난로에 올려놓았다.


"야. 이게 다 뭐야?"


내가 한 친구에게 묻자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김치밥"


몇 분이 채 되기도 전에 나는 그 철제 도시락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누릿 누릿 익어가는 김치 냄새가 솔솔 났다. 


'김치를 반찬으로 싸가던 시절은 지났는데. 단체로 애들이 김치를 싸왔다고?' 


오전 수업시간 내내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냄새만큼은 식욕을 부르는 냄새였다.  2교시 생물 시간에 선생님은 수업을 하다가 중단을 도시락 당번을 찾으셨다. 난로 당번은 알겠는데 도시락 당번은 뭐지 하고 의문을 품으려고 하는 사이 도시락 담당의 꺽다리 선아가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난로로 향한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도시락을 섞을 기회를 준다는 것이 신박했다. 밑에 있던 도시락은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던 도시락들이 밑으로 내려갔다. 점심때까지 몇 차례의 도시락이 위아래로 순환을 했다. 드디어 점심시간 아이들이 자신의 도시락을 찾아가는라 바빴다. 모두 철제 도시락이었기에 똑같은 도시락도 많았다. 뚜껑과 옆면에는 자신의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놓고 자신의 도시락을 식별하곤 했다. 여기저기서 도시락 뚜껑이 열리자 나는 김치찌개 식당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젓가락도 필요 없이 숟가락이나 포기 숟가락 하나로 달그락 달그락 소리는 한 동안 계속되었다.


옆에 짝꿍이 보온 도시락에서 밥을 먹는 내게 김치밥 한 입을 권했다. 그제야 도시락을 가까이에서 보니 맨 위에 계란프라이가 있었고 하얀 밥 밑으로는 김치가 쫑쫑 썰어 깔려 있었다. 처음 보는 비주얼과 상황에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나는 짝꿍의 김치밥 한 입을 먹고 깜짝 놀랐다. 고소한 참기름에 들들 볶은 것 같은 김치와 계란 그리고 밥이 섞여서 내는 맛은 생각보다 환상적이었다. 맛을 보고 놀란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야?"


"맛있지? 너도 이제 이렇게 싸와봐. 일단 철제 도시락을 사야 해. 그래야 열에도 녹지 않아. 철제 도시락 맨 밑에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넉넉히 넣고 김치를 잘게 잘라서 넣어서 펴줘. 그리고 그 위에 밥을 얻으면 거의 완성이야. 마지막에 계란을 프라이 해서 올리면 끝이지. 간단하지?"


나는 당장 그날 저녁 시간에 춘천 시내에 있는 시장에 그릇집에서 철제 도시락을 샀다. 포트 숟가락도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무슨 60년대도 아니고 철제 도시락에 김치를 싸가냐고 의아해하셨다. 한참 클 때는 잘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그 김치밥을 먹어보기 전까지는. 엄마에게도 오히려 간편했다. 도시락 반찬을 여러 개 하느라고 아침 식간을 공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김치밥을 싸들고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있었던 시기라 하루에 두 개씩 철제 김치밥을 싸 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추억 한 그릇, 그리움 두 스푼 - 김치밥 ] Illustration By 꽃노을





한 가지 음식을 매일 먹으면 맛에 실증이 날 법도 한데 신기하게 김치밥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국어 선생님이셨던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점심시간이 되자 반으로 들어오셨다. 똑 단발 여고생 사이로  수염이 덥수룩한 담임선생님은 열심히 도시락을 찾고 계셨다. 알고 보니 담임 선생님도 사모님께 부탁을 해서 김치밥을 싸달라고 해서 우리들 도시락 사이에 끼워 놓으셨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도 수업하다가 우리들의 도시락 냄새를 맡으면 정말 먹어보고 싶으셨다고 하시며 선생님 도시락을 찾아서 선생님 책상으로 가져가셨다. 너도 나도 철제도시락과 난로가 합작으로 만들어낸 맛에 푹 빠져 있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변형된 레시피가 생겨났다. 어물이나 햄을 잘라서 섞어 오는 친구들이 생겨 났다. 조금 더 짭조름하고 맵게 먹고 싶은 친구는 고추장을 한 스푼씩 넣어왔다. 같은 난로와 철제 도시락인데 서로 다른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 난로가 설치된 날의 다음날은 무조건 김치밥 도시락을 싸갔던 그 시절의 그리워 집에서 '김치밥'을 만들어 먹어보았다. 그러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천천히 뭉근하게 익히지 않아서 인지 그런 맛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다 가서 난로를 철거하게 되면 우린 아쉬워했다. 그 추억의 김치밥은 다시 겨울이 와야 맛볼 수 있었다. 뭘 먹어도 맛있고 깔깔돼 댄 똑 단발시절 우리가 함께 했던 분위기와 남새 그리고 그 맛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맛있게 기억되고 있다. 다시는 현실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맛임에 틀림없다. 


춘여고 친구들아, 기억나니? 우리 김치밥? 도시락 당번은 정말 멋진 세프였어. 첼제 도시락과 난로와 동업자 같았던 도시락 당번을 하던 우리들 모습이 그립다. 그리고 그 김치밥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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