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울 때 나는
청빛 저녁에 고요히 침묵하는 우물의 마음을 생각한다.
우물의 마음에는 하얀 야생마가 살고 있다. 눈빛이 영롱한
그 하얀 야생마는 나의 영혼을 닮은 듯도 하다.
나의 영혼은 석양이 지는 해변가의 꿈을 꾸고 있다.
가난하고 세련된 루바슈카 복장의 시인이 남긴 쓸쓸한 발자국이
시름의 낙인처럼 새겨 있는 모래사장을 배고픈 걸음으로 걷는다
또 나는, 내게 다정하고 무심한 사람의 초봄 같은 눈웃음을 생각한다.
무르익은 봄이 아닌 조금 어리숙한 초봄
그러나 초봄은 멀리 있고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게 다정하고 무심한 사람과 볼을 아릿하게 물들인 채 차를 마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묻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석양이 짙던 날에 불쑥 나가버렸어. 그렇게 답한다.
나는 은은하게 웃고 그 사람도 조용하게 아픈 미소를 짓는다.
영원히 이 찻집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 내 앞에 놓인 작은 홍차잔은 식지를 않는다.
하얀 야생마가 된다면 저는 허기지게 내달리지 않을 거고요
당신과 슬픈 당신과 유유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걸으려고요
내가 말하니 돌아오는 산뜻한 웃음에 겨울의 허파가 녹는다
우리 모두는 어둠이 막 찾아온 저녁 무렵의 몽상이 얼마나 독인지를 알고 있다
위로되지 않는 눈꺼풀의 무게가 여전히 나를 누르는 이곳
나는 청빛 저녁에 고요히 침묵하는 우물의 마음을 생각한다
희망은 온화한 겨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