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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련 Oct 25. 2022

분홍 가락지

분홍은 시작하는 여린 것들에게나 어울리는 순수성이 있다.


                                                                    

  헐거운 살갗이 가락지 무게가 버거운지 이리저리 떠밀려 다닌다. 마른 장작 같은 엄마의 손가락에 반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빙글빙글 돈다. “걸리적거리지 않아요? 빼고 있지 그래.”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않는다. 돌아가실 때까지 가락지는 묵묵히 엄마 곁을 지켰다.   

 엄마의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부쩍 엄마가 그립다. 핑크 뮬리처럼 부드럽게 몸을 감싸고도는 아련한 엄마 냄새. 종종걸음 치는 엄마를 좇고 있는 어린 시절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엄마가 남기고 간 반지라도 봐야겠다. 주인은 가고 없는데 분홍 가락지는 눈치 없이 영롱하다.

 막내인 내게 엄마는 특별했다. 일곱 남매가 쭈르르 있었지만 엄마는 늘 내 차지였다. 그런데도 불안하여 엄마와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누군가를 겨냥해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밤에도 파수꾼을 자청했다. 잠든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봐 주저앉는 눈꺼풀과 씨름을 했다. “어디 안 간다.”는 엄마의 거짓말을 듣고서야 겨우 꿈나라에 들곤 했다. 어린 내게 엄마는 크나큰 우주였다. 보이는 것이 전부 엄마였으며 보듬어주는 우주 안에서 기죽지 않고 우쭐거렸다. 

 엄마바보인 나를 동네 어른들은 자주 놀려댔다.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도 하고 진짜 엄마가 잠시 맡기고 돈 벌러 갔다고도 했다. 어떤 이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로 시작하며 맘껏 살을 붙였다. 엄마가 차갑게 대할 때는 슬몃 의심이 들기도 했다. ‘혹 사실일지도.’ 그럴수록 난 엄마 곁을 맴돌았다. 치맛자락을 놓지 못하고 꿈나라에 들면 꿈에서도 엄마를 찾아 헤매곤 했다.  

 엄마는 표현이 서툴렀다. 우주를 품었어도 그저 바라보고 서 있기만 했다. 가없는 사랑은 제 혼자 뒤척일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만 비벼댔다. 어쩌다 나오는 말은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자식들은 말할 줄 모르는 엄마가 불편해 뒷전에 두었다. 행동이 말보다 훨씬 따뜻한 줄 알면서도 촌스러운 엄마를 애써 외면했다. 

 엄마는 자식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일곱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난발처럼 촉수를 뻗친 마음이 다가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마다 내 마음도 베인 듯 아팠다. 웃을 때조차 속으로 흐르는 눈물이 하도 많아 내게로도 흘러들었다. 엄마바보라서 그토록 아프게 당신의 마음이 보였던 걸까. 

 빠듯한 시골 살림에 돈을 만들 수 있는 건 당신의 성실한 노동뿐이었다. 밭은 엄마의 시름과 보람이 뒤섞인 난전이었다. 진종일 밭과 함께 했다. 풀을 뽑고 흙을 돋우며 곡식을 얼렸다. 모진 날씨에 한 알이라도 놓칠까봐 눈을 떼지 못했다. 하늘을 치받고 우뚝 서는 그것들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엄마는 풀과 씨름하면서 자식들의 학비와 용돈을 벌었다. 그러나 통 큰 오빠에게는 서푼에 불과하여 자주 부족한 액수를 시위하였다. 생명과도 같은 돈을 쭉쭉 찢어 하늘에 흩날리며 엄마의 수고를 조롱하였다. 나풀거리는 조각을 주워 담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진절머리 나는 엄마의 자리를 반납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다음 날 또 엄마는 말간 얼굴로 밭에 나가 김을 맸다. 연줄 걸리듯 내걸린 등록금을 만들려면 어제의 일은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가슴에 품고는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벼랑이었을 터, 무릎의 배반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것에 의지해 벼랑 끝을 버텼다.  

 자식들로부터 놓여날 즈음, 의지가지인 무릎에 이상신호가 왔다. 자식들 걱정에 잠을 설치곤 하였는데 무릎의 통증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 들었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셨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몇 년을 근근이 버티다가 결국 병원으로 장기 입원을 했다. 이제 겨우 자식들 책임에서 놓여났는데 팽개쳐둔 몸이 아프다 아우성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병원신세를 졌다. 말기에는 가락지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옹두리 같은 마디 사이로 가락지가 빙글빙글 돈다. 아래로 푹 내려앉으면 돌려세우느라 눈을 떼지 못한다. 하늘 향해 꼿꼿이 세워놓고 알사탕 같은 보석에 눈 맞춤을 한다. 흐밋한 눈빛이 보석 안에 붙박인다. 새벽 동이 틀 때처럼 엄마의 눈빛이 선연해지더니 유감한 눈빛이 내게로 향한다. “큰언니? 그곳은 아픔이 없잖아.” 말라가는 자신의 육체보다 먼저 간 큰 딸 때문에 더 아파하는 엄마를 시름없이 위로하곤 했다. 

 언니는 암과 싸우다가 14년을 버티고 먼저 떠났다. 어려운 시절이라 배움도 짧았다. 건조한 남편을 만나 서로가 어긋난 채로 외롭게 살았다. 가난을 견디느라 허기지는 줄도 모르고 수직의 꿈만 꾸었다. 엄마는 언니를 떠올리며 고단한 자신을 자주 만나는 듯했다. 호수에 내려앉은 물안개처럼 조용히 스며들던 언니는 엄마를 쏙 빼닮았었다. 허리 한번 시원스레 펴보지 못하고 서둘러 접어버린 생이 자신의 운명을 닮아서인 거 같아 유독 언니를 못 잊어했다.  

 생각이 깊은 언니는 어느 날 엄마 손가락에 이 알반지를 끼워주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분홍 보석에는 세 개의 흰색 선이 가로질러 있다. 미처 보지 못한 선이다. 중앙을 축으로 하여 시원스레 뻗어 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선명한 선이 어느 지점을 지나며 점차 옅어지더니 가뭇없이 사라진다. 블랙홀 같다. 엄마는 자주 그곳에서 언니를 만나는 가보다. 

 “니 언니는 얼매나 힘들었겠나.” 다리 통증에 밤잠을 설친 날에는 더 오래 언니를 떠올렸다. 자식을 앞세운 아픔을 어찌 헤아리랴만 엄마는 가락지를 놓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을 닮아 불행했던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듯 했다. 

 분홍 반지가 거슬린 건 엄마의 고단한 생이 더 두드러져 보인 탓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언니는 화려한 장신구를 좋아했다. 귀걸이나 목걸이에 따라 맞춤한 것처럼 예쁜 얼굴이 더 빛났다. 분홍은 아련한 기분을 준다. 시작하는 여린 것들에게나 어울리는 순수성이 있다. 분홍의 존재 자체가 신산한 현실을 잊게 하는 마력을 지녔음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분홍반지로 엄마도 같은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큰 딸의 깊은 속내가 이제야 읽힌다.   

 엄마도 떠나고 새 주인을 찾아 가락지가 내게로 왔다. 모처럼 가락지를 사이에 두고 세 모녀가 두런거린다. 엄마도 언니도 손을 내민다. 옹두리도 없고 쭉쭉 뻗은 손가락에 알반지가 얹힌다. 진분홍 알반지가 주인을 찾은 듯 편안하다. 내 얼굴에도 분홍 꽃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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