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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련 Oct 29. 2022

말 말 말

장어구이 한 점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가 다시 접시에 풀썩 주저앉기를 반



 평생 쓸 수 있는 말의 양이 정해져 있는가. 못 다 하고 가면 억울해 죽을 양으로 뒤늦게 그녀의 입은 바빠졌다. 굳게 다문 놀부의 곳간 같았던 그녀. 들려오는 소문에 일일이 대꾸했다면 지레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참고 또 참아 오늘에 이른 입은 부화가 더딘 병아리처럼 인생 막바지에 새로운 세상을 사는 듯 소란해졌다. 

 고향집을 수리하여 축하연을 가졌다. 옆집 언니도 초대하여 함께 즐기기로 했다. 그녀와의 수다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릴 적 언니의 입은 꼭 필요한 말 외엔 굳게 닫혀있었다. 그런데 만개한 봄날처럼 가벼워졌다. 장어구이를 먹으면서도 말은 끊이지 않았다. 음식을 밀어 넣기도 아까운 시간이라 여기는지 얘기하느라 젓가락질이 자꾸만 느려졌다. 장어구이 한 점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가 다시 접시에 풀썩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신기하여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오빠가 선물을 주고 갔어. 적잖은 연금이 나오거든.” 시작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말은 다음 말을 차고 나아가지 못했다. “그날도 혼자 끙끙거리면서 상을 차렸제.” 언니의 표정은 이내 캄캄한 밤길을 거니는 듯 어두워진다. 지독한 모멸감에 세상으로 난 창은 모조리 거둬들였던 지난날로 단숨에 되돌아가는 듯했다. 게임은 끝났는데 여전히 오징어 게임에 열중인 아이가 금을 밟으면 큰 일 날 것처럼 외롭게 서있는 듯했다. 해맑게 웃다가도 이내 흙빛으로 변하면서 회한의 세월로 넘나드는 굴절된 눈동자가 안타깝다. 언니는 원망과 조롱, 한숨이 뒤섞인 지난 세월을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언니에게 종갓집 안주인이라는 권위는 허울뿐이었다. 서방은 새색시를 얻어 도회로 나가고 안방은 늘 혼자 차지였다. 한 해에 열 번이 넘도록 알지도 못하는 남편 조상의 제사상을 차리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덕분에 아직도 내 기억 속 언니의 모습은 어느 한적한 호수의 물결처럼 평온하다. 자기 새끼와 같은 촌수를 가진 서방의 피붙이가 태어날 때마다 지독한 모멸감에 사로잡혔을 텐데 그 모진 세월 어찌 견뎠을까. 셋이나 되는 아이를 대동하고 안방을 급습해 오던 남편의 여자를 바라보며 숯검댕이가 되었을 언니의 속을 결혼을 하고 난 후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하회탈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하던, 어릴 적 내가 본 그녀는 누구인가. 서방은 다른 여자 품에 안겨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취해있는 동안 그녀는 동네 바느질감은 죄다 끌어안고 살았다. 남편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애꿎은 미싱만 돌리고 돌렸겠다. 잡념의 조각들이 요란한 소리에 묻혀 흩어지기를 바라며 힘껏 페달을 밟았을 것이다. 언니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하루 밤낮을 꼬박 앉아 소매며 바지통을 잇고 이었다. 세월 따라 곧았던 허리는 화살처럼 휘어지고 바느질감에 눌려 목이며 머리는 낮게 내려앉았다. 

 마음이라도 보전하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이었을까. 일감이 몸을 상하는 동안 마음만은 지켜야겠다는 다부진 결기로 자르고 훌치고 꿰맸을 것이다. 마음을 따로 떼어놓는 법을 일찍이 터득하여 다행인가. 느끼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꾸렸을 테니까. 

  대처로 나가 살면서 그런 언니를 잊고 살았다. 한 참 만에 찾아간 고향에는 새로운 사람들로 북적였다. 옆집 오빠도 낯선 사람 중 하나였다. 다 늙어 찾아온 허수아비 남편을 맞아들이면서도 그녀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무슨 염치로 다시 안방을 차지하려 들었는지, 그런 남편에게 언니는 당연한 듯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나 앉았다. 무위한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는 현장을 목격하니 자꾸만 구역질이 났다. 맥없이 고개 숙인 진실의 민낯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의지해 살아갈 기둥 하나가 뿌리째 뽑힌 거 같아 나도 모르게 불끈거렸다. 

  몇 년 전에 기어이 오빠가 먼 길을 떠나고 그녀 홀로 남았다. 없는 듯 살았어도  혼자인 적은 없었는데 온전한 자아를 그제 서야 만났다. 그녀는 변하기 시작했다. 굳게 닫혔던 입에도 생기가 돌았다. 말의 향연이 시작된 것이다. 가슴에 쌓아두었던 말이 순서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다. 길거리에서도 지나는 사람을 돌려세웠다. 어쩌다 한 번이면 족하거늘 누군들 자기 일처럼 울어줄 사람이 있는가. 가슴 켜켜이 쌓였던 말 조각들이 세상 밖으로 불려 나와 하릴없이 풀풀거렸다. 상대의 무념한 낯빛을 보고도 못 본 척 주절주절 자기 말만 늘어놓았다. 오욕의 세월을 말과 함께 비우기라도 하려는 듯 매번 그렇게 치열하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그랬다. 남편 없이 홀로 제사상을 차리는 뒷모습만 보아도 언니의 심정이 짐작되어 보는 이가 더 아팠다. 무언의 몸짓이 말보다 더한 설득력으로 나를 자극했다. 오빠를 향해 소리 없는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화를 삭이지 못한 것도 언니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 안았기 때문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말의 진가가 흐려짐을 느낀다. 기막힌 세월을 어찌 말속에 담을까. 분노의 현장이, 모멸의 세월이 말속에 묻혀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말은 무력하다. 언니는 갇힌 우리에서 박차고 나와 포효하듯 그녀의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범람한 말은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가버린다. 끝이 뻔한 시나리오에 선뜻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언니의 진실도 거듭되니 넋두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하루빨리 그녀의 분노가 순해지기를 바란다. 살아낸 세월을 대상화할 수 있을 만큼 거리를 두게 되면 그녀의 말도 본래의 힘을 되찾지 않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말과 줄다리기를 한다.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말의 힘이 살아날지니 무엇보다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법을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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