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붙게 해주세요'를 읽고 남은 생각 모음
귀신 붙게 해주세요
이로아 지음
미래인 펴냄
제목에 속았다. 시놉에 속았다.
<귀신 붙게 해주세요>는 그냥 그런 오컬트 문학이 아니었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억압적인 구조와 아이들이 겪는 격한 감정의 흐름을 입체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미용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돈이 필요한 윤나에게 헐렁한 교칙을 바로잡고 학교를 치유하기 위해 등장한 신임 교장은 구원의 천사였다. 신임 교장이 오고 나서 아이들 두발 단속이 심해지자 교내에서 아이들 머리 염색을 해주며 학원비를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용사가 되고 싶어 하는 윤나의 바람은 귓등으로 흘리며 일단 공부해서 대학가라는 엄마는 아주아주 전형적인 인물이고, 윤나의 절친 재이는 윤나가 이 학교로 진학하게 된 가장 이유였는데 막상 학교에 입학하고 다른 반으로 배치되고 나서 윤나보다는 현서와 더 가까워진다.
열심히 염색을 발라주고 다닌 덕에 학원비는 다 모았는데 갑자기 자율학습이 부활했다. 말이 자율이지 강제 야자다. 전 과목 1등급을 받으면 책임지고 야자에서 제외해 주겠다는 담임 선생님 말씀에 고민 끝에 윤나가 찾아낸 방법은 학교에서 죽은 전교 1등 귀신을 불러내는 것. 문제집 대신 강령술 책을 연구하고 방법을 찾아내어 계곡의 폭포수 대신 샤워기 밑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을 오르는 대신 운동화에 모래를 넣고 학교 뒷산을 달리는 윤나가 과연 강령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주로 윤나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제법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눈앞에 장면 장면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쏟아내는 감정도 너무 격하지는 않게 공감 가는 정도로 담아내고 있달까. 등장하는 어른들은 딱 그 자리에 있으면 어울릴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그리고 20년 전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 다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난 아이들의 반란이 성공하길 응원하며 읽었다.
책을 일으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1990년대까지는 청소년 퀴어 문학을 접하기가 어려웠다.
만화방에서 보는 BL, GL 작품이 대다수였고, 성 정체성을 겪는 청소년 시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구조적 차별이나 내면의 혼란을 다루기보다는 이성애적 시각을 동성으로 끌어가 그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퀴어 문학을 표방하는 작품을 쉽게 접하기 어려웠고 학교 도서관 등에는 들어오지 않는 '금서'에 가까웠다.
영상으로 제작된 작품들은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평까지 좋았던 건 '여고괴담' 시리즈였다. 여고라는 폐쇄된 공간의 억압적인 구조와 그 안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말 잘 묘사했던 작품들이다. 그중에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여고괴담 2 메멘토 모리인데 오랫동안 퀴어 팬덤에서 컬트작으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4편의 목소리 역시 명시적인 동성애 뿐만 아니라 암시적인 욕망까지 담아내던 수작으로 꼽고 싶다.
인상 깊은 또 다른 작품은 젠더 정체성을 주제로 한 2006년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였다. '가드 올리고'를 입버릇처럼 올리는 아버지에게 얻어터지면서 '남성성'을 강요받으며 사는 오동구는 '진짜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이다. 여자가 되기 위한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과 웃통을 벗고 부디껴야하는 씨름이어서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서사를 담은 퀴어 문학이나 영상 작품이 조금씩 나오고 있었지만 관음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작품이 많았던 시기라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이다.
몇 년 전에는 왓챠에 올라온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시멘틱 에러'가 꽤 유명했고, 최근에는 명시적 동성 로맨스는 아니지만 여성 간 비규범적 관계성을 공유하는 '워맨스' 작품 '은중과 상연'이 두드러졌다. '은중과 상연'은 여성적 여성 서사 트렌드를 반영한 작품으로 젠더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 문학의 확장된 테마로 연결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성 동성애에 집중하던 것에서 다양한 젠더와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 인물들이 중심에 서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적극적으로 해당 담론을 담는 경향과 더불어 '퀴어 코딩'으로 읽히는 은유적 작품들을 두루 볼 수 있게 된 것은 2020년대에 들어서서 인 것 같다.
남성 인물들을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만 배치하고 여성 인물들의 서사가 주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타노스'와의 결전 장면에서 여성 히어로들이 연이어 등장하던 장면에서 '아, 드디어!'를 외치며 눈물지었다. 함께 본 이들은 모두 그 장면이 불편했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히어로물에서 남성 히어로의 연대 장면은 멋있다고들 하면서 그렇게 대놓고 여성 히어로들이 뭉치는 장면을 연출한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기존의 남성 중심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인 건지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작년에 읽은 청소년 작품들의 두드러진 특징도 자라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는 거였다. 세상 인구의 반이 여자인데, 세상 이야기의 반은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여자 이야기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내 아이들이 읽고 보는 작품들은 그렇게 변하고 있어서 반갑고 고맙고 그렇다.
세상도 변하고 아이들의 시각도 변하고 있다. 김유정의 '동백꽃'에서 만나는 점순이와 나의 감정을 표현에 서툰 두 아이가 나누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서툰 첫사랑의 흔들림으로, 감자로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닭싸움으로 앙갚음하고 코피가 날 듯 알싸한 동백꽃 향으로 갈무리하던 것이 옛 감상이었다. 그렇게 읽고 배운 작품을 큰 아이가 기분 나쁘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니 왜? 하며 충격적이었는데, 당시에 돌아오는 답이 더 충격적이었다. 성별을 바꾸어 그렸어도 그렇게 아름답게 보았겠느냐고, 지주의 아들이 소작농의 딸에게 그런 식으로 폭력을 행사했어도 아름다운 첫사랑 이야기로 읽혔겠냐는 말에 그게 왜 그렇게 읽히냐가 아니라 아, 그게 그렇게 읽힐 수 있는 거였구나 하는 충격이었다.
활자에 담긴 내용을 보고 느끼는 감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걸 넘어선 인식 역시 시대와 공간에 따라서, 경험한 바와 교육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충격이기도 했다.
퀴어 문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을 모두 함께 공유하며 같은 인식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담아내고 있는 다양한 빛깔을 함께 보며 나눌 수 있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출판사로부터 출간 전 가제본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주관적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