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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장 Dec 05. 2023

기를 쓰지 않는다,
일이 가르쳐준 배움들

결과는 내 마음데로 할수 없다.. 

건축설계를 20년 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태도다.

반대로 말하면 과정엔 할수 있는 힘을 써야 한다.. 라는 이야기가 될것이고.


어찌되었든 인정해주는 의뢰인이 있어야 시작되는 건축일에서, 

일의 처음과 끝, 과정중에서 가만히 복기해보면 사실 온전히 내 마음데로 

되었던건 별로 없다는 게 늘 재밌고 신기하다.      

 

소설가 김연수가 어느 글에서 이야기했듯 건축 역시

배추농사나 감귤농사와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 한다.


농부의 일상이란 매일 뭔가 돌본다는게 

중요하고 돌볼 대상이 있다는게 농부의 보람이다. 

만약 사람들이 어느날부터 배추나 감귤을 먹지 않게 되면 

씨 뿌릴 일도 없고 돌볼 필요도 없으니 농부의 일은 의미가 없다.


하루하루 살아내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일생이 되듯...

농부의 배추 농사든 건축가의 일이든 매일 뭔가를 돌볼수 있고 

그것이 많은 고비를 거치며 보살핌 속에 마침내 하나의 결과로 

완성되는 과정에 의미가 있을텐데, 가끔 그런 과정을 생각하다보면 

괜히 혼자 뭉클해지기도 한다. 아마 농부도 마찬가지 아닐까..


저녁식탁에 올라온 배추 맛이 어떨지 그걸 먹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건 농부가 어찌할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중간에 비바람도 만나고 병충해도 지나갔겠지만..할수 있는 일을 다 했다면, 

농부는 그저 맛있는 배추이길 바란다. 그 뿐이다.    


결과는 신경쓰지 않는다, 라는 의미가 아닌

결과를 내 마음데로 하려 하지 않는다, 라는 의미.


좋아하는 작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에 이런 말이 나온다.

' 큰 방향을 정하면 사소한 것들은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둔다 '


이 구절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이해하려고 한다. 

큰 방향만 중요하고 자잘한 건 신경안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할수 없는 건 흐름에 맡겨야한다, 는 의미로.

 

소노아야코는 이어서 말한다.

인간이 결정할수 있는 문제는 고작 저녁 찬거리 정도라고.

찬거리라 해도 막상 마트에 들러 쇼핑을 시작하면 예정 목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계획에서 벗어나 원래 여길 왜 온건지... 잊는게 인간이라고.


마트 쇼핑이 이런데 큰 돈이 들어가는 일들은? 

내 인생의 운명은? 중요한 인연을 만나는 일은?...

사람이 살면서 온전히 내 마음데로, 내 생각에 갇힌채 

결정해서 결과를 좋게 낼수 있는 일은 몇개나 될까.


물론 사람 따라서는 이건 내가 내 마음데로 결정한거야 

라던지, 나는 언제든 주도적으로 인생을 결정하며 살고 있다, 

라고 생각하고 결과가 어떻든 굳굳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건축을 하면서 얻은 배운 것들은 결국 사람들, 

세상, 나를 대하는 여러 태도에 대한 생각들이었던것 같다. 


과정엔 솔직하게 임하고 

결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누구나 실수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실수 없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실수가 있을때 

복구하려는 의지가 있는지..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담담히 놓아두되 대상에 진지한 애정을 갖는것.

 

마음에 안드는 자잘한 흐름이 있어도 큰 방향이 아니라면

굳이 바꾸려 하지 않고 흐름에 나를 맡기고 사는 편이 결과도 좋고 

지치지도 않고 모두 즐거울수 있다는 걸 건축을 하면서, 

지금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일 하나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이번엔 

또 뭘 배우게 될지 기대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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