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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28. 2022

광태야 광태야


 내가 맡은 학급은 3학년 8명과 5학년 9명이 복식 수업을 하는 학급이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 전 학년 학급 수가 5 학급일 때 한 학급은 복식 학급이 된다. 교실 반쪽에는 3학년, 반쪽에는 5학년 학생이 앉아 공부를 한다. 3학년 수업을 하고 자습 과제를 내어 준 후에 5학년 수업을 한다. 5학년 수업을 한 후에 자습 과제를 내어 주고 3학년 수업을 한다. 이렇게 한 교실 두 학년 수업을 하다 보면 뷔페 음식을 먹은 것처럼 열심히 수업을 하긴 했는데 무언가 애매할 때가 있다. 


 5학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3학년 학생 한 두 명이 대답을 한다. 3학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5학년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답을 한다. 3학년 학생은 5학년 선행학습을 하고 5학년 학생은 3학년 복습을 하는 셈이다. 좀 똑똑한 3학년 학생은 어쩌다 5학년 문제의 정답을 맞히고, 또래보다 학습에 뒤떨어진 5학년 학생은 3학년 문제의 정답을 맞히고는 우쭐해하기도 한다. 교실 중간에 칸막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 별도리가 없다.      

2학기가 되어 5학년 남학생이 부산에서 전학을 왔다. 부모님은 우선 광태를 할머니 집에 맡기고 나중에 올라온다고 했다. 외할머니 집은 학교 담장 너머에 있었고 외삼촌과 외숙모, 할머니 이렇게 넷이서 살게 되었다. 광태는 도시에 있을 때 특수 학급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시골에는 특수학급이 없으니 일반 학급에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광태는 또래들이나 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늘 혼자서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을 하는 자유인이다.      


 수업 중 광태가 슬그머니 복도로 나가서는 느닷없이 큰 북이 둥둥 울린다. 광태가 진열장 안에 있던 큰 북을 울린 것이다. 옆 반 선생님이 깜짝 놀라 쫓아온다. 수학 문제를 풀던 친구들도, 국어책을 읽던 3학년 동생들도 깜짝 놀란다. 심심하면 복도에 나가 작은북을 동동 칠 때도 있고 탬버린을 찰찰찰 흔들기도 한다. 광태는 악기를 참 좋아한다. 이런 고로 음악 시간에 합주는 꿈도 못 꾼다. 합주할 때 자기가 연주해야 할 때는 끼어들고 빠져야 할 때 빠져 줘야 하는데 자유인 광태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니 제대로 된 합주가 될 리 없다. 

        

 미술 시간에 친구들의 그림이 완성되어 갈 때쯤 광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가 좋아하는 파란색 크레파스를 오른손에 들고 교실 사방팔방을 누비고 다니며 친구들의 그림에 낙서를 한다.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성질 고약한 정수가 나서서 소리를 꽥 지르자 병태가 움찔한다. 그러나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웃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여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남자 친구들 머리를 콕콕 쥐어박기도 한다. 광태는 나에게 반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혼을 내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과자 파티를 한다고 과자를 접시에 담아 놓으면 광태는 접시마다 침을 뱉고 다닌다. 내가 심하게 화를 내면 광태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잠깐 반성하는 듯하다가 1분도 안 되어 원상태로 돌아간다.      


 광태가 잘하는 것도 있다. 광태는 받아쓰기를 하면 100점을 맞을 때가 많고 칠판 글씨도 기가 막히게 바르고 예쁘게 쓴다. 이건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친구들은 광태를 피해 다닌다. 광태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도 잽싸게 달아난다. 광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곳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쪽으로 걸어간다.  


 광태가 오고 나서부터 3복식 수업이 된 셈이다. 공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쉬는 시간에도 나는 쉴 수가 없다. 광태가 움직이는 반경이 넓어지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화장실, 운동장, 복도, 심지어는 다른 학년 교실에까지 광태의 파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광태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겨울방학이 되었다.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 당직이라서 학교에 출근하였다. 눈이 더 내리려는지 하늘에 구름이 낮게 깔리고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이따금 학교 뒷산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얼음장 같은 바람이 운동장 가에 있는 히말라야시다 나무를 사정없이 뒤흔든다. 저녁 무렵 운동장에 광태가 나타났다. 옆에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지팡이를 짚은 광태 할머니가 서 있다.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드는가 싶더니 이내 싫증이 났는지 눈을 한 움큼 집어 할머니에게 던진다. 할머니의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었는지 갑자기 할머니 지팡이를 빼앗는다. 할머니가 휘청하며 가까스로 옆 벤치에 다가가 앉는다. 하얀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광태가 할머니 지팡이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눈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퇴근하는 길에 광태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햇빛이 없어서인지 광태의 그림은 선명한 채로 남아 있었다. 눈 위에는 열여덟 명의 친구들이 웃고 있었다. 아 그중에 한 사람은 좀 더 크고 치마를 입은 것으로 보아 나를 그린 것이 틀림없다. 내일은 광태와 같이 눈사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광태네 집 보일러실에서 석유 냄새가 살짝 섞인 하얀 연기가 담장을 넘어 운동장 쪽으로 풀풀 날려온다. 광태가 이 추운 겨울도 따뜻하고 건강하게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교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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