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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28. 2022

진호의 빨간 사과


 산골짜기 외딴집에 살고 있는 진호네는 다문화 가정이다. 아버지는 농사짓는 일을 하지만 건강이 안 좋아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고 주로 어머니가 남의 집 일을 다니며 생계를 꾸려간다. 봄부터 가을까지 과수원에서 적화 작업과 적과 작업, 과일 따기 등의 일을 한다. 겨울이 되면 양파 농가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딸기 농가에서 하우스 일을 하는 등 진호 어머니는 사계절을 쉬는 법이 없다.      


 진호 어머니는 외국 사람이다. 열심히 한국말도 배우고 가족을 잘 챙겨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 진호와 진수의 옷차림은 다른 아이들보다 깨끗하다. 체험학습을 가는 날에도 소풍 가방에는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먹을거리가 들어 있다. 늘 바쁘고 고된 생활 속에서도 진호와 진수를 챙기는 일에는 한 치의 소홀함이 없다.      


 오윌의 산들바람이 운동장 가에 있는 느티나무의 연녹색 이파리들을 흔든다. 운동장 위로 잿빛 비둘기들이 낮게 날아 학교 옆 청계 숲 소나무 위에 가볍게 내려앉는다. 아침부터 운동장이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학부모 동행 등산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다. 책가방 대신 소풍 가방을 멘 아이들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간식들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진호야 오늘도 너희 어머니 안 오셔?”

 영웅이가 진호의 표정을 살피며 묻는다. 진호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든다. 학교설명회, 공개 수업일, 운동회, 학부모와 함께하는 체험학습 등 여러 행사에 진호 어머니가 참석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진호는 늘 내 주위를 맴도는 아이다. 나는 그런 진호에게 ‘보리가루(보디가드)'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나도 진호가 옆에 있으면 왠지 안심이 되고 편안하다. 어린이날 기념 운동회 때 어머니랑 짝이 되어 달리기 하는 경기에서 나는 진호 어머니 대역을 했다. 학부모 동행 체험학습 때도 늘 내 옆에 와서 슬그머니 내 손을 잡는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보다 선생님과 더 가깝다.'라고 생각하는 듯 어깨와 목에 힘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나에게서 위로받고자 하는 것 같다.       


 진호는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 소통관 역할을 한다. 아이들 손에 안내장이 들어가기 전에 내 책상 위에 놓인 안내장의 내용을 대단한 정보를 입수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알려 준다. 친구들 간에 오고 가는 비밀 같은 것이나 시시껄렁한 정보들을 대단한 뉴스인 양 나에게 알려 준다. 어찌 보면 스파이 역할 같은 것이다.       


 어느 날 읽은 진호의 일기장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친구들이 부럽다. 학교 안 가는 날에도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는 학교 옆에 사는 친구들이 부럽다. 동생과 맨날 둘이서만 노는 것이 이제는 재미가 없다. 우리도 아무 때나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는 가게 옆에 살았으면 좋겠다. 짜장면집 옆에 사는 친구들은 얼마나 좋을까? 가족 여행 갔다 왔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럽다. 그래도 내 제일 큰 소원은 우리 어머니가 학교에 좀 왔으면 좋겠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불 때마다 운동장 가의 느티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갈색 이파리들이 불량배들처럼 학교 운동장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몰려다닌다. 노란 학교 버스 두 대가 양쪽 골짜기에서 스물세 명의 아이들을 싣고 와서 운동장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명랑한 웃음소리에 학교는 다시 온기가 돌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햇살이 교실 유리창에 살포시 기대어 있다. 교실에 들어가니 사과 향이 물씬 풍긴다. 내 책상 위에는 부피가 제법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가 놓여 있다. 동글동글 야무지게 생긴 새빨간 사과들이 잔뜩 들어 있다. 산골짜기의 서늘한 바람과 싱싱한 햇살, 농부의 정성과 진호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사과 맛은 더할 나위 없이 기막히리라.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사과 밭에서 일하고 얻어온 사과예요. 친구들과 선생님 먹으라고 주셨어요.”

 “그래? 너무 고맙다. 진호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시고 얻어온 사과라 더 맛있겠는걸. 진호야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해 드려라.”

 진수가 의기양양하게 앞에 나와서 친구들에게 사과를 한 개씩 나누어 준다. 아이들이 환호하며 좋아한다. 빨간 사과의 즙이 여기저기서 툭툭 튄다.     


 “왔어요. 오늘 학교에 왔어요.”

 학예발표회가 열리는 날이다. 보통 때 행사가 있는 날의 진호의 얼굴이 아니다. 덩실덩실 춤추는 것처럼 양팔을 흔들고 두 발을 통통거리며 복도 쪽을 향해 소리친다. 

 “진호야 오다니, 누가 왔다고 그래?”

 “누구긴 누구예요. 우리 어머니가 학교에 왔다니까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교실 뒷문 쪽에 진호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 발에 깁스를 하고 양쪽에 목발을 짚고 그림처럼 서 있는 진호 어머니가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하며 겸연쩍게 웃는다. 사과 밭에서 일을 하다가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겨울방학 종업식날이다. 통지표를 나누어 준다. 아이들이 심각한 얼굴로 통지표를 꼼꼼하게 읽어 본다. 진호는 대충 읽어보고 가방에 집어넣는다.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어머니가 성적에 대하여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성적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가방을 제일 먼저 싼 진호가 다른 아이들이 나갈 때까지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진호야 너는 집에 안 가니?”

 “선생님, 이거......”

 사과 두 개가 들린 양손을 내 앞에 쑥 내민다. ‘빨갛다 못해 새빨간 사과’ 두 개를. 내가 5년 임기가 다 되어 3월이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진호가 이런 사실을 어머니나 친구들에게 들었던 것 같다. 


 나는 3월에 인근 학교로 옮겨 왔고 그 후에 교육청 회의 때 만난 진호 담임으로부터 진호네 가족이 면 소재지로 이사를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사과향보다 더 달콤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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