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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Oct 10. 2022

쓸쓸한 모정


 3학년 길중이와 어머니가 벚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선 가로수길  인도 위를 천천히 걸어갑니다. 손을  잡고 말없이 걸어가는  사람의 머리 위로 꽃잎이 흩날립니다. 15분을 걸어서 학교에 도착하고 어머니는 길중이가 교실로 들어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일터로 향합니다. 길중이와 어머니의 아침 이별 장면입니다.      


 길중이가 2학년이던 지난해 겨울, 공사판에 다니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식구는 어머니와  둘이 되었습니다. 길중이 어머니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 남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합니다. 표정은 한결같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옷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쉽게 알아볼  있습니다. 빨간색 손가방을 들고 다니며 길중이를 만날 때마다 가방을 열어 먹을 것이나 용돈을 챙겨줍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가까운 데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일을 합니다. 식당 뒷문 수돗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달그락거리며 열심히 그릇을 닦는 일이 길중이 어머니가 하는 일입니다. 길중이가 마치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교문 앞으로 가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길중이는 말이 별로 없는 아이입니다. 걸음도 느리고 옷차림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없고 친구들이 다가가 말을 거는 일도 없습니다.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고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웃기만  뿐입니다. 어쩌다 둘이나 셋이서 같이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길중이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공부 시간에 자리에 앉아  밖을 쳐다 때가 많습니다.


 사월의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평소보다 소란스럽습니다.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 소풍날입니다. 아이들은 책가방 대신 알록달록한 나들이 가방을 메고 왔습니다. 저마다 가방이 빵빵합니다. 길중이는 나들이 가방 대신 책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준비해 준 음식이 들어갈 만한 큰 나들이 가방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소풍 갔을 때는 특히 점심시간을 기다리기 힘이 듭니다.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요?

 “선생님 점심시간 아직 멀었어요?”

 “선생님 김밥   빼먹으면  돼요?"

 점심을 언제 먹느냐는 민원이 빗발칩니다. 가방 안의 물건들을 풀어헤치고 싶어 저마다 안달입니다. 그러나 ‘단체 생활 뭐 어쩌고 저쩌고’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이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던 놀이를 계속하지만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는 무엇을 하든 재미없을 겁니다.


 드디어 반가운 손님처럼  점심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뿌시럭뿌시럭 자랑하듯 음식을 펼쳐 놓습니다.  김밥의 기본(단무지, 시금치, 당근)에 간장에 조린 우엉 뿌리와 어묵, 계란과 오이, 맛살과 햄까지 추가해서 싼 김밥은 화려하죠. 반면에 길중이의 김밥은 기본에 충실한 단순하고 소박한 김밥입니다. 플라스틱 도시락 통에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단순하고 소박한 김밥입니다. 길중이는 나와 마주 앉아 김밥을 먹습니다. 길동이 김밥 하나를 먹어본 결과 김밥 집에서 사 온 화려한 나의 김밥보다 확실히 더 맛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두두두두 우산을 때리는 아침입니다. 길중이 어머니의 한쪽 어깨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축 처진 어깨가 더 무거워 보입니다. 비 내리는 아침 길중이와 어머니의 이별 장소는 현관 앞입니다.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갈아 신는 길중이를 뚫어지게 바라본 후 어머니는 서둘러 발길을 옮깁니다. 오후가 되자 빗줄기가 더 거세집니다. 하교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길중이 어머니 옆에 택시 한 대가 서 있습니다. 오늘은 택시를 타기로 한 모양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아이들은 가을 운동회 준비로 바쁩니다. 

 “오늘 아침에 길중이 본 사람?”

 아이들은 아침부터 힘이 빠졌는지 고개만 좌우로 듭니다. 집에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길중이 어머니가 다니는 식당을 통하여 겨우 소식을 알아냈습니다. 길중이 어머니가 오늘 아침에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퇴근길에 병원에 문병을 습니다.      


 6인실에 침대 위에서 길중이와 어머니는 곤하게 잠들어 었습니다. 잠을 깨울까 봐 되돌아 나오려니까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장염 증상이 있었는데 미련하게 참다가 오늘 아침에야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것과 아이가 아침은  먹은  같고 점심때 환자 앞으로 나온 흰 죽을 둘이 나누어 먹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이가 나름대로 어머니 잔심부름을 잘 하더라는 것과 오후에 퇴원 예정이라는 것까지 소상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오는 내내 헬쓱해진 모자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이튿날 아침  사람의 이별 장면이 보였습니다. 길중이 어머니는 교문 기둥에 기댄  길중이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길중이 별명을 ‘보호자 정했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보호자라고 불렀습니다. '보호자!' 하고 내가 부르면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길중이는 씩 곤 했습니다.


 어느덧 길중이가 졸업을 습니다. 여섯 해 동안을 걸어서 학교에 데려오고 데려가던 길중이 어머니도 함께 졸업을 했습니다. 그 후에도 길중이 어머니는 중학교 교문 앞에서 기다림을 이어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내가  학교에 1년을  근무하는 동안 가끔 교문을 바라보며 길중이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길중이 어머니의 애달픈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쓸쓸하고도 위대한 모정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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