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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11. 2022

웅이와 빨간 자전거


 “웅아 춥다. 그만 집에 가야지~” 

 “......”

 

 눈발 섞인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웅이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립니다. 검정 강아지 ‘뚜기’가 왼발을 절뚝이며 자전거를 따라 달립니다. 교무실 창문을 열고 내가 소리쳐 보지만 안 들리는 모양입니다. 웅이라는 이름은 며칠 전 웅이 형들의 입학 수속을 하러 학교에 온 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어쩌면 3월에 우리 반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웅이 이름이 빨리 외워진 것 같습니다.         

 

 일곱 살 웅이네 식구가 남쪽 도시에서 엄마의 고향인 시골로 이사를 왔습니다. 엄마와 3학년, 5학년, 6학년 형과 왼쪽 다리를 다쳐서 절뚝이며 걷는 검정 강아지 뚜기까지 합쳐 여섯 식구입니다. 학교 담 옆 낡고 허름한 기와집이 웅이네 집입니다. 웅이 어머니는 사계절을 일할 수 있는 야채 시설 하우스에 취직을 했습니다. 웅이네보다 두 달 늦게 도착한 남쪽 바람이 학교 울타리에 개나리꽃을 피울 때 드디어 웅이가 1학년이 되었습니다.


 “김아영, 서정아, 김웅.”

 내가 출석을 부릅니다. 11초 만에 출석 확인이 끝납니다. 전원 출석입니다. 남학생은 웅이 혼자라서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웅이는 여학생들과도 사이좋게 놉니다. 웅이는 자전거를 맘대로 탈 수 있는 운동장,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어서 참 좋다고 했습니다. 


 학교가 텅 비는 오후와 토요일, 교회를 다녀온 일요일 오후에 학교는 형제들 차지입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며 해질녘까지 학교에서 놉니다. 웅이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 ‘뚜기’가 그림자처럼 웅이를 따라다닙니다.      

 “지용아 오늘도 동생들 점심밥 잘 챙겨라.”

 토요일 아침 어머니는 제일 맏이인 지용한테 부탁을 하고 일을 나갑니다.  

 “형, 오늘 라면 먹으면 안 돼?”

 “안 돼. 엄마가 밥 먹으라고 했잖아.”

 “반찬이 맛있는 게 없잖아. 그냥 라면 먹자.”

 동생들 셋이서 떼를 쓰니 형의 마음이 약해집니다. 어머니가 없을 때는 라면을 먹는 일이 많습니다. 어머니는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입히지도 못해서 늘 속상하고 미안합니다.


 여름이 가까워질 무렵 학부모님과 동반하여 가까운 산에 등산을 가는 체험학습이 있습니다. 웅이는 살짝 걱정이 되고 슬퍼집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괜찮아. 나에게는 형이 셋이나 있으니까.”

기분이 다시 좋아집니다. 

 “김밥, 과자, 사탕, 콜라, 바나나.......”

먹을 것을 생각하니 날아갈것처럼 기분이 좋아집니다. 웅이의 기분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그네와 비슷합니다.       


 운동장가에 늘어선 벚나무마다 빨간 단풍이 곱습니다. 가을 현장체험학습은 멀리 고성 공룡엑스포로 갑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다급하고 비탄에 젖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제 돈이 없어졌어요.”

 웅이 얼굴에 이미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웅이의 소풍 가방 안 주머니와 웅이의 재킷과 바지 호주머니를 살펴보고 뒤집어서 털기까지 해보았지만 돈은 없습니다. 

 “선생님, 아침에 웅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우리들한테 돈을 흔들며 자랑했어요.”

 옆에 서 있던 우리 반 아영이와 정아가 제보합니다. 웅이가 잠깐 아침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눈을 한 번 살짝 감았다 뜨더니 결국 돈 찾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양새입니다.       

 웅이가 형들을 차례로 찾아가 손을 벌립니다. 

 “형 나 돈 잃어버렸어. 돈 좀 빌려주면 안되?”

 “나보고 어쩌라고.”

 첫째, 둘째, 셋째 형에게서 대략 이런 식으로 단호하게 거절당합니다. 

 “얘들아 나 돈 좀 꿔줄래?”

 아영이와 정아를 바라보며 애원하듯 부탁을 합니다. 아영이와 정아의 대답도 형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웅아 선생님이 너 쓸 돈을 줄게.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선생님한테 돈 받았다는 것은 비밀이야.”

 “그거야 어렵지 않죠.”

 친구들이 안 보는 곳에서 나눈 나와 웅이의 대화입니다. 내가 준 만 원을 들고 친구들에게 뛰어가는 웅이의 발걸음이 새처럼 가볍습니다.      


 첫째 형 지용이가 졸업하는 날입니다. 엄마도 형에게 줄 꽃다발을 사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웅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아들 졸업식을 위해 학교에 왔습니다. 목사님은 웅이에게도 장미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웅이는 조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목사님 막내아들이 들고 있는 막대 사탕 섞인 꽃다발에 자꾸 눈이 갑니다. 웅이의 꽃다발에는 막대사탕이 없습니다. 내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집으로 돌아간 웅이의 책상 위에 장미꽃다발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것은 자전거와 강아지와 사탕인데 어른들은 그 마음을 몰라줍니다.      



하얀 눈이 날리는 조그만 운동장에서 웅이가 빨간 자전거를 탑니다. 검정 강아지 뚜기가 왼발을 절뚝이며 따라갑니다. 

 “뚜기야 힘내.” 

 웅이가 연신 뚜기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뚜기만 있으면 돼.’ 

 웅이의 속마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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