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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05. 2022

석이와 찬이


 “선생님 누룽지에 설탕 타서 먹어 봤어요?” 

 “아니?”

 "냄비에 물과 누릉지를 넣고 펄펄 끓이다 설탕을 듬뿍 넣어 섞어서 먹으면 달달하니 참말로 맛있어요."


 쉬는 시간에 석이가 나한테 알려준 누룽지 맛있게 먹는 비법이다. 나는 '달달한' 이라는 용어를 2학년 아이가 쓰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뒤로도 자주 물었다. 

 “석아 오늘 아침에도 달달한 누룽지 먹고 왔니?“     


 청소 시간이다. 이번 달 찬이의 역할 분담은 교실바닥 당번이다. 2학년 찬이가 손걸레를 짠다. 짠다기보다 그냥 주물주물한다고 해야 맞다. 연신 걸레를 빨고 몸을 완전히 구부려 바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닦는다. 이 때 무릎을 대면 안 된다. 왕복하는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무릎이 새까맣게 젖어서 빨아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엄마한테 야단맞기 십상이다. 청소가 끝난 교실 바닥은 살얼음 낀 아스팔트처럼 미끌미끌거려 살살 걸어 다녀야 한다. 


 찬이가 건조대에 널기 전에 마무리하려는 의미인지 남은 힘을 다 해 걸레를 짠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교실 바닥을 한 번 휘 둘러 본다. 자신이 대견스러웠는지 콧노래까지 부른다. 야무지게 탁탁 걸레를 털고는 건조대에 걸레를 널고 네모 반듯하게 각을 잡기까지 한다. 하지만 건조대에 걸린 걸레는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다.       


 "찬아 걸레가 너무 더럽다. 비누를 묻혀서 좀 더 깨끗하게 빨면 안 될까?"

 찬이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선생님, 걸레는 더러워야 걸레 아닌가요?"

 찬이가 히히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원래 작은 찬이의 눈이 더 가늘어진다. 할 말을 잃는다.

 ‘맞다. 걸레는 원래 더럽지. 걸레가 행주처럼 깨끗하고 행주가 걸레처럼 더러우면 이상하지.’

      

 시골 마을에 사는 석이와 찬이는 단짝이다. 나이도 같고 학년도 같다(학년이야 시골 학교니까 한 반 밖에 없으니 당연히 같은 학년). 아이들이 별로 없는 동네라서 사람들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마을 회관에서 놀다 보니 할머니들 말투를 많이 따라해 영천댁 할머니라든지 평산어르신 등의 말투를 쓴다.

      

 얼굴이 까만 편인 석이는 달리기를 아주 잘 하고 말을 재미있게 한다. 가늘고 작은 눈과 하얀 얼굴에 미소가 예쁜 찬이는 늘 히히 웃으며 다닌다. 석이는 엄마 없이 아빠와 할머니랑 산다. 석이와 찬이는 친환경 무공해 아이들이다. 다른 친구들처럼 메이커 있는 옷을 입지 못해도 내 눈에는 명품으로 보인다.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도 달리기만 잘한다. 석이와 찬이가 그렇게 밝고 명랑한 것은 다 부모님 덕분이다. 이 친구들의 부모님은 부자도 아니고 높은 학벌을 지닌 분들도 아니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그저 믿고 사랑으로 품어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을 믿고 존경해 준다.

      

석이와 찬이의 동동거리는 발소리와 정겨운 웃음소리는 마을 한켠 골목길에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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