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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08. 2022

컵라면과 과자 그리고 자두


 토요일 아침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컵라면 열아홉 개를 산다. 컵라면 파티가 있는 날이다. 토요일이면 가끔씩 과자 파티나 컵라면 파티를 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집중을 잘한다. 속으로는 저마다 라면 먹을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기에 시간은 더디게 흐를 것이다. 반면에 라면 먹을 때는 시간이 빠르게 지날 것이다.

       

 컵라면의 종류는 다양하다. 육개장, 김치사발면,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사리곰탕, 새우탕, 오징어짬뽕 등등. 아이들이 라면을 고를 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어떤 라면을 먹을지 저마다 순간적으로 판단을 한 다음 원하는 라면을 잡는다. 한정된 라면보다 수요가 많으면 가위 바위 보로 정한다. 내가 미리 찜했던 사리곰탕은 동이 났다. 달랑 남은 한 개는 너구리다. 너구리는 면이 오동통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가위 바위보를 할 걸 그랬나?'

 살짝 후회가 된다.

    

 라면을 다 고르고 난 다음은 컵라면을 싸고 있는 얇포름한 비닐을 벗기는 일이다. 컵의 밑바닥을 손가락으로 쿡 찔러 살살 벗기면 된다. 홍준이는 이 방법을 쓰지 않고 나무젓가락으로 컵의 밑바닥을 박력 있게 찌르는 바람에 컵라면 바닥이 뚫렸다. 컵 바닥의 비닐은 거의 진공 상태처럼 되어 있어서 나무젓가락을 꽂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닐을 관통하는 쫀득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홍준이는 아마도 이것을 기대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야,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

 “아이고 조심 좀 하지.”

 “······.”

 친구들이 저마다 홍준이한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한다. 홍준이의 숨소리가 살짝 거칠어진다. 나는 순간 내 라면을 양보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모른 체하고 나는 내 라면의 비닐을 더욱 조심스럽게 벗겼다.        


 다음은 물 붓기 순서. 열아홉 개의 컵에 물을 붓는 작업은 전적으로 내가 맡는다. 뜨거운 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컵라면 밑바닥을 뚫지 않도록 하는 일보다 몇 배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물을 부을 때도 집중해야 한다. 컵의 안쪽에 있는 선만큼 물을 부어야 하는데 선을 넘거나 선보다 적게 부으면 누군가는 싱거운 라면이나 짠 라면을 먹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자, 줄을 서시오.”

 아이들이 내 앞에 줄을 선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선에 맞춰 물을 붓는다. 여덟 번째로 홍준이가 앞에 컵을 내밀었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느라 잠시 홍준이를 잊고 있었다. 

 “와우!”

 내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야! 홍준이 진짜 대단하다!”

 여기저기서 친구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방법으로 컵라면을 먹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일 테니까. 홍준이의 얼굴에 섬광처럼 미소가 스쳤다.       


 홍준이는 컵라면의 밑바닥을 가위로 뜯어 내어 위아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와! 이렇게도 먹을 수 있는 거구나!”

 순간 내 라면이랑 바꾸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맛이 특별할 것 같았다.       


 라면이 익는 시간 3분. 둥글게 앉아 끝말잇기 게임을 하며 기다림의 지루함을 단축시켜보려 한다. 내가 먼저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시작해야 할 때는 감자로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다. 자전거 거미 미숫가루 루돌프. 다음은 영준이 차례다. 낱말의 궁색함을 느낀 영준이가 말한다. '푸른 바다' 이쯤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프를 푸로 했다고 여기저기서 난리다. 대부분 이런 이유로 끝말잇기는 종말을 맞는다.      


 라면을 먹는다. 교실에 고요가 찾아온다. 후후~~후루룩 쩝쩝 소리 만이 들린다. 거의 다 먹어갈 즈음 갑자기 군대의 구령 소리처럼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짧고 커다란 소리가 쩌렁 울린다. 홍준이의 다부진 체격이 크고 힘이 있는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과자 먹고 싶은 사람 무릎 꿇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무릎을 꿇었다. 홍준이가 사물함에서 과자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와서 소리친 것이다. 과자 파티는 예정에 없던 일인데 읍에서 마트를 하는 홍준이가 과자를 한 보따리 챙겨 왔다.      


 그 어떤 아이도 홍준이의 무릎 꿇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홍준이가 가져온 과자는 동이 났고 아이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눈치 채지 않게 홍준이를 불렀다. 

 “홍준아 친구들 주려고 과자를 챙겨 와서 고마워. 그런데 아까 네가 친구들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해?”

 “친구들이 내 과자를 공짜로 먹으니까 그렇게 한 건데요”

 “그렇구나.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 어떤 친구가 집에서 토마토를 가져와서 너에게 먹고 싶으면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네 기분이 어떨까?”

 “저는 토마토 안 좋아해요.”

 ‘오 마이 갓.’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에 교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홍준이 어머니 전화였다. 

 “선생님 주말이라 실례될까 봐 전화를 못 드리고 이제야 전화드려요.”

 “홍준이 어머니 무슨 일 있나요?”

 ‘무릎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말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홍준이한테 들었다고 했다. 홍준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친구들에게 사과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셨다.      


 다음 날 교실에 들어와 보니 친구들 책상마다 한 개씩 놓여 있는 빨갛고 큼지막한 자두가 보인다. 친구들과 홍준이 얼굴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내 책상 위에는 두 개다. 톡, 톡 상큼한 자두 즙이 여기저기 터지는 맛있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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