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용돈 얼마 가져왔어?”
“5만원.”
“나는 7만원.”
서울로 3박 4일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관광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용돈을 얼마 가져왔는가에 대한 질의 응답이 경쾌하게 오고 간다.
"15만원."
용진이가 훅 들어온다.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깔끔하다.
"와~~~~."
아이들이 동시에 용진이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서울에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현욱이가 서울에 대하여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랑도 용진이의 15만원 앞에서는 관심을 끌기에 역부족이다.
용진이가 큰 돈을 가지고 온 것은 용진이의 노력 덕분이다. 오늘의 체험학습을 위하여 어머니 할머니, 삼촌한테 받은 용돈을 먹을 거 안 먹고, 쓸 거 안 쓰고 악착같이 모은 것이다. 용진이는 이 돈을 오늘부터 3박 4일 동안 폼나게 써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용진이가 청와대, 경복궁, 광화문, 남산, 용산전자랜드 등의 체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자신이 지닌 용돈과 무관하지 않다. 가는 곳마다 특색 있는 물건들이나 먹을 것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관광버스 안에서는 음식을 못 먹게 하니까 올라갈 때는 돈 쓸 일이 없다. 오직 돈이 들어 있는 지갑 관리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체험학습에서 돈을 잃어버린 기억이 있는 용진이는 특별히 지갑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드디어 저녁 무렵 롯데월드에 도착했다. 용진이는 ‘롯데월드야 내가 왔다.’는 듯이 호기를 부리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약간의 간식과 장난감을 사느라 돈을 좀 쓴다. 놀이 기구를 탈 때 용진이는 특별히 가방 관리를 나에게 부탁한다. 가방 안에 큰 돈이 있음을 의식한 모양이다. ‘돈 관리를 좀 하는 놈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나는 의자에 앉아서 용진이와 아이들의 가방을 철통같이 지키며 앉아 있다. 내가 있는 곳이 베이스캠프다.
“얘들아, 돈 아껴 써야 돼. 오늘이 첫 날인데 한꺼번에 많이 쓰면 나중에 곤란해.”
내가 연신 아이들에게 충고를 하지만 하나 둘 켜지는 서울의 화려한 불빛 속에 나의 충고가 먹힐 리 만무하다.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타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베이스캠프에 맡겨놓고 간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돈을 쓰게 된 곳은 남산 공원이다. 오락 게임과 인형 뽑기 기계가 아이들의 돈을 마구 삼킨다. 간식을 사 먹고 장난감을 사고 아이들은 돈 쓰는 재미에 빠져 있다. 남산과 서울을 홍보하는 기념품 가게에는 아이들의 눈을 끄는 물건들로 넘쳐 난다.
“와! 저 곰 열쇠고리 정말 예쁘다.”
4학년 소영이의 말에 용진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천 원을 꺼내어 계산을 한다. 소영이가 펄쩍 뛰면서 ‘오빠야 고마워’를 외친다. ‘통 큰 오빠’ 용진이의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5학년 상현이가 울상이 되어 의자에 앉아 있다. 용진이가 묻는다.
“상현아 왜 그래?”
“현금이 없어. 엄마가 이것만 줬어. 어떡해.”
상현이의 손바닥에 농협 체크카드 한 장이 올려져 있다. 남들 다 하는 게임이나 인형 뽑기를 저 혼자만 못하게 생긴 상현이의 눈에 얼핏 눈물이 고인다.
“얼마면 돼?”
“일단 이만 원만 있으면 좋겠는데.”
용진이가 지갑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어 상현이 손에 쥐어 주며 어깨를 한 번 툭 친다. 꾸어준다는 것인지 그냥 준다는 것인지 명쾌하지 않은 거래가 성사된다.
화단 옆 긴 의자에 4학년 여학생 네 명이 앉아 있다. 그 앞에 선 용진이가 1인극 하듯 의미있는 동작을 취하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웃는다. 다섯 명의 손에는 똑같은 회오리 감자가 들려 있다. 통 큰 오빠야 용진이가 한 턱 내고 으시대고 있는 광경이다. 내가 보아도 오늘 용진이가 멋져 보인다.
서울에서의 3박 4일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니 얼마 안 되어 아이들은 단잠에 빠졌다. 관광버스도 피곤한 듯 느릿느릿 달려와 하행선 인삼랜드 휴게소로 들어간다. 이제 남은 용돈을 마지막으로 쓸 시간이다. 아빠나 엄마가 멀리 관광 갔다 오면서 가족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사오듯이 아이들도 무엇인가 사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선 3일 동안 쓰고 남은 용돈이 얼마인지 세어보아야 한다. 작고 까만 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리며 동전까지 알뜰하게 세어 남은 금액을 확인한 아이들은 돈과 사고 싶은 물건의 값을 비교하며 열심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다.
아이들이 제일 많이 사는 것은 먹을거리다. 호두과자 매점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
“형, 엄마 이거 좋아하는데 오천원짜리 살까 만원짜리 살까?”
선중이가 선호형 에게 묻는다.
“만원짜리가 좋겠다.”
선호가 즉시 대답을 한다. 동생이 호두과자를 산다고 하니 선호는 형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면한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는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떠서 장난감 가게 앞에 가서 장난감 흥정을 한다. 선중이는 손잡이가 있는 만원짜리 호두과자 한 박스를 사서 관광버스에 실어 놓고 다시 나온다.
한쪽 구석을 지나다가 선중이와 선호의 은밀한 대화를 듣게 되었다.
“선중아 나 오천 원만 꿔줘라. 너 금방 호두과자 사고 남은 돈 있잖아”
“안 돼. 내가 형한테 좀 아껴 쓰라고 했잖아. 아이고 참.”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인가보다.
아이들이 분주히 매점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통 큰형아 용진이는 호두과자 매점 앞 나무 의자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손에도 탁자 위에도 휴게소에서 산 물건이 없다.
“형, 여기서 뭐 해, 아직 아무 것도 안 샀어?”
“오빠, 조금 있으면 버스 출발하는데 뭐 안 살거야?”
저마다 지나가며 한 마디씩 한다. 3일 동안 돈을 펑 펑 쓰던 용진이가 아무것도 안 사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하나 둘 관광버스에 오른다. 용진이가 마지막으로 차에 오른다. 삼천원짜리 호두과자가 손에 들려 있다. 기름기가 베어 날 정도로 얇은 종이 봉투에 담긴 호두과자를 들고 집에 돌아가면서 용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허무하게 자신의 손을 떠나 버린 15만원을 생각하며 한숨짓지는 않을까 생각하니 귀여우면서도 절로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