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casam Aug 04. 2022

교실 속의 작은 보건실

 

 “선생님, 보건실에 선생님이 없어요.”

 “아 맞다 오늘 보건선생님 출장 가셨지.”


 명호와 대환이가 보건실에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왔다. 3교시 끝날 때쯤 대환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이마에 열이 좀 있다. 집에서부터 조금 아프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대환이 어머니는 대환이를 그냥 학교에 보낸 것이다. 하루라도 결석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어머니들은 웬만하면 꾸역꾸역 학교에 보낸다. 

     

 환자가 보건실에 갈 때에는 혼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쉬는 시간이면 보통 서너 명은 같이 가 준다. 보건실에 갈 때의 규칙이랄까 아니면 약자에 대한 의리같은 것이다. 아픈 이유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아이들은 더 많이 따라간다. 어린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피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적은 양의 피나 머리를 다쳤을 때처럼 많은 양의 피는 아이들의 관심과 호들갑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피의 양이 아니라 피의 색깔이다. 

 “그래? 그럼 어쩐담.”

 대환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아픔을 참고 있다. 

 “엄마한테 연락해서 오시라고 할까?”

 “아니요 그냥 참아볼게요. 엄마는 일하러 가고 집에 아무도 없어요.”

 보건실에 얼른 가서 어린이용 진통제 한 알을 가져다 대환이에게 먹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칠판 오른쪽 게시판 밑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두꺼운 무릎 담요 두 장을 폈다. 그리고는 털목도리를 둘둘 말아 베개를 만든 다음 환자를 눕힌다. 내 외투를 덮어주었더니 아이들도 나를 따라 자기들 스웨터나 점퍼를 덮어주었다. 대환이 배 위에 옷으로 만든 산이 하나 생겼다. 임시로 만든 ‘교실 보건실’이다. 

 “대환아 우리들 공부할 동안 한 숨 푹 자라.”

 내 말에 대환이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인다. 10분 쯤 지나고 친구들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대환이가 가늘게 코를 골았다. 그리고 몸을 한 번 뒤척이고는 이내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다. 깊은 잠에 빠진 대환이를 차마 깨우지 못하고 그냥 급식실로 갔다. 후식으로 쿠키가 나왔길래 나와 대환이 몫으로 나온 쿠키 두 개를 냅킨에 싸가지고 교실에 왔다. 대환이가 앉아있길래 이마를 짚어보았더니 앞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있었다. 

 “대환아 머리 지금도 아파? 이거 먹을래?”  

 대환이가 머리를 좌우로 한 번 흔든다.      

 “선생님 대환이는 이거 먹어도 맛을 모를 거예요.”

 옆에 있던 훈이가 한 마디 한다. 

 “대환이는 쿠키 엄청 좋아하잖아.”

 “안 아플 때 먹으면 맛있는데 아플 때 먹으면 정말 맛없어요.”

 “그렇긴 하지.”

 “이상하게 우리 엄마는 내가 아프기만 하면 갑자기 맛있는 거 많이 해 줘요.” 

 “맞아, 선생님 어릴 때 우리 엄마도 그랬어.”

 나와 훈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환이가 자기도 공감한다는 듯 피식 웃는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 괜찮아졌는지 대환이가 일어나 쿠키 두 개를 맛있게 먹었다. 대환이의 머리는 말끔하게 나은 것 같다. 대환이는 쿠키를 먹고도 한동안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좀 더 오래 누리고 싶은 것이다.      

 

 우리 반 ‘교실 보건실’은 인기가 아주 많다. 환자가 끊이질 않는다. 보건실 환경도 좀 향상시키기로 했다. 두껍고 푹신한 돗자리와 부드럽고 두툼한 담요를 준비한다. 아침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에 누워 볼 수 없다.

      

 진희가 아픈 손가락을 내민다. 본인이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상처 같지 않은 아주 조그만 상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교실 보건실’을 한 번 힐끗 쳐다본다. 일명 나이롱 환자다. 진희를 살짝 골탕 먹이고 싶어진다. 머리를 일부러 천천히 가로젓는다. 

 “환자분, 미안하지만 이 정도의 상처로는 입원할 수 없습니다.”  

 진희가 입술을 샐쭉거리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훈이가 '교실 보건실'에 눈독을 들인다. 자기 이마를 짚어보라고 한다. 열은 거의 없다.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다고 한다. 이따금 왼쪽 손바닥으로 배를 살살 문지르기도 하고 허리도 구부정하게  보이려고 애 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힘이 없어 눈도 크게 못 뜨겠다는 듯이 실눈을 뜨고 있다. 

 “환자분, 미안하지만 이 정도의 병으로는 입원할 수 없습니다.”   

 기훈이도 나이롱환자다. 조금 전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앞 복도에서 기훈이와 태진이가 신나게 딱지치기하는 것을 내가 보았다. 


 특히 수학 시간이 되면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픈 아이들이 많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꾀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진짜인지 꾀병인지 어느 정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진짜 아픈 환자들은 학교 보건실로 보낸다. '교실 보건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은 거의 꾀병 환자라고 봐야 한다. 이럴 때는 알약 한 개를 처방한다. 내가 준 약은 꽤 효과가 있다. 책상 서랍 안에 있는 약이 떨어질 때 쯤 나는 약국에 간다.

      

 "약사님, 배 아플 때 먹는 약, 아니 어린이용 비타민 주세요."


이전 02화 시골 짜장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