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먹을 사람이 넷, 짬뽕 먹을 사람 둘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볶음밥 먹으면 안 돼요?”
“선생님 잡채밥 먹어도 돼요?”
“이것 저것 시키면 주인이 별로 안 좋아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오늘은 그냥 짬뽕 짜장 중에 고르기다.”
“아~~~~~~~~”
“네가 돈 낼래?”
“......”
중국음식점 ‘홍성루’에 짬뽕 한 개와 짜장 두 개를 추가하여 총 아홉 그릇의 음식을 주문했다. 4,5,6 학년으로 이루어진 사물놀이 동아리 아이들이 토요일 오전에 학교에 나와서 연습을 했다. 내가 점심을 사기로 한 날이다. 일찍 시키면 그래도 좀 일찍 배달을 해 줄까 하고 오전 열 시 쯤에 주문해 놓았다. 경험에 의하면 일찍 시켰다고 해서 생각보다 일찍 배달 온 적은 한 번도 없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도시보다 느리게 흐른다.
45년의 주방장 경력을 자랑하는 홍성루는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대부분의 음식점은 정기휴일이 있지만 홍성루는 그렇지 않다. 주방장을 겸한 주인아저씨가 쉬고 싶은 날이 바로 휴일인 것이다. ‘음식 맛이 얼마나 좋길래 저렇게 배짱으로 장사를 하는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사람 심리가 ‘정말로 이 집의 음식이 다른 집과는 많이 다른가 보다’ 라고 스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문을 열었으니까 저녁까지 문을 연다는 보장도 없다. 점심 장사만 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통에 멀리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은 ‘가는 날이 장날’을 경험하게 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주인아저씨가 낚시광인데 낚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지 문을 닫아버리고 낚시를 즐기러 간다는 것이다. 이 집의 음식을 먹으려면 일단 실시간으로 전화를 해보고 가야된다.
반드시 전화 주문 순서대로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 또한 주인장 마음이다. 전화 주문 물량이 많으면 우선 식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부터 음식을 내어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아예 음식 생각을 잊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음식이 오면 더욱 반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기다리다 지쳐서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 집에 시키면 안 되겠어’ 라고 마음 먹고 다른 집에 시켰을 경우 정말로 맛없는 짜장을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배가 고플대로 고플 때 쯤 한가한 교정 사이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왔구나 왔어!”
겉으로는 안 그런척하며 이제나 저제나 오토바이 소리만을 기다려온 아이들이 환호한다. 배달하는 젊은 아저씨가 배달통 안에서 단무지와 양파 그리고 춘장이 담긴 흰색 플라스틱 그릇을 툭툭 던지듯이 바닥에 내려 놓는다. 배달이 늦어도 한참 늦었는데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조차 홍성루 음식에 믿음을 준다. 짜장면 위에 얹힌 초록색 오이채가 싱그러운 향을 날림과 동시에 젓가락이 짜장면을 휘젓기 시작한다. 랩을 뜯자 짬뽕 그릇에서 불맛 향이 훅 올라온다. 저절로 침 한 방울이 꼴딱 넘어간다. 짜장 짬뽕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다들 정신없이 먹어치운다.
“이놈아 천천히 먹어. 네가 강아지냐?”
어릴 때 해가 저물 때까지 놀다가 들어와 할머니가 차려 주신 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이다. 집에서 키우던 누렁개 '메리'가 먹이를 먹을 때의 몰임감은 100퍼센트다.
“선생님 그릇은 왜 씻어요? 우리가 돈 냈잖아요. 집에서는 그냥 신문지에 싸서 문 앞에 내놓는데.”
씽크대 앞에서 짜장면 그릇을 씻는 나에게 영웅이가 묻는다.
“돈을 내는 것은 짜장면에 대한 고마움이고 그릇을 씻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에 대한 감사의 인사야.”
“그럼 이 쪽지는 왜 써요?”
그릇을 돌돌 말아 싼 신문지 위에 붙인 ‘감사합니다’ 라고 쓴 쪽지를 보며 또 묻는다.
“이것은 음식을 배달해주신 분에 대한 감사 인사야.”
“선생님 좀 쉬다가 우리 또 열심히 연습해요. 이것은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인사예요.”
영웅이가 뺑뺑하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씩씩하게 소리친다.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잠시 멈췄다 점점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