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아 춥다. 그만 집에 가야지~”
“......”
눈발 섞인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운동장에서 웅이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립니다. 검정 강아지 ‘뚜기’가 왼발을 절뚝이며 자전거를 따라 달립니다. 교무실 창문을 열고 여자 선생님이 큰 소리로 불러도 안 들리는 모양입니다. 웅이라는 이름은 며칠 전 웅이 형들의 입학 수속을 하러 학교에 온 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일곱 살 웅이네 식구가 남쪽 도시에서 아빠의 고향인 시골로 이사를 왔습니다. 엄마와 3학년, 5학년, 6학년 형과 왼쪽 다리를 다쳐서 절뚝이며 걷는 검정 강아지 뚜기까지 합쳐 여섯 식구입니다. 2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았던 학교 담 옆 낡고 허름한 파란 기와집이 웅이네 집입니다. 웅이 어머니는 봄에는 딸기 농장, 여름과 겨울에는 야채 시설 하우스에서 일을 할 예정입니다. 가을에는 힘이 들지만 수입이 가장 좋은 사과 농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웅이 어머니의 고향은 1년 내내 따뜻한 베트남 남쪽 지방입니다. 지금은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강하고 억척스런 엄마다 되었습니다.
웅이네보다 두 달 늦게 도착한 남쪽 바람이 학교 울타리에 개나리꽃을 피울 때 드디어 웅이가 1학년이 되었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더 이상 꼬맹이라도 부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깨가 으쓱해 집니다. 웅이네 반은
남학생 두 명, 여학생 세 명, 합쳐서 다섯명입니다. 선생님은 키가 자그마하고 인자하게 생긴 남자선생님입니다. 1학년이라서 학교에서 키가 제일 작은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정했나 봅니다.
“김아영, 김웅, 서정아, 신지아, 최선규.”
선생님이 출석을 부릅니다. 30초도 안 되어 확인이 끝납니다. 전원 출석입니다.
반에서 재미 삼아 반장 선거를 했습니다. 여학생 세 명이 웅이를 뽑아주는 바람에 웅이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잘생긴 편도 아닌데 여학생들이 뽑아준 것은 새로 온 친구라서 호기심에 뽑아준 것 같습니다. 웅이는 생각지도 못한 반장이 되어 어리둥절하지만 기분은 최고입니다. 오후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는 속도가 어제보다 빨라졌습니다. 웅이가 기분 좋은 것은 또 있습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탈 수 있는 그네와 미끄럼틀 등 놀이기구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집 바로 옆에 말입니다.
학교가 텅 비는 오후와 토요일.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간 귀 학교는 웅이네 형제들 차지가 됩니다. 일요일에도 일하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며 사형제는 해질녘까지 학교에서 놉니다. 웅이는 주로 자전거를 타고 강아지‘뚜기’가 호위무사처럼 웅이를 따릅니다.
“광아, 오늘도 동생들 점심 잘 챙겨라.” 토요일 아침 어머니는 제일 맏이인 광이형한테 동생들 부탁을 하고 일을 나갑니다. “형 오늘 라면 먹으면 안 돼?” “안 돼. 엄마가 밥 먹으라고 했잖아.” “맛있는 반찬이 없잖아. 그냥 라면 먹자. 엄마한테 밥 먹었다고 하면 되잖아.” “피자나 햄버거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야물야물한 떡볶이가 먹고 싶다.” 동생들 셋이서 떼를 쓰니 형의 마음이 약해집니다. 라면에 계란을 넉넉히 풀어 후룩후룩 먹는 맛도 제법 쏠쏠합니다. 실제로 어머니가 없을 때는 라면을 먹는 일이 많습니다. 엄마는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도 못해서 늘 속상하고 미안합니다.
산들바람이 운동장가에 늘어선 벚나무 가지를 흔들어 꽃잎들이 나비처럼 날리는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멀리 고성 공룡 엑스포 공원로 봄 현장 체험학습을 가는 날입니다. 웅이네 사형제가 제일 먼저 학교에 와서 친구들이 타고 올 학교 버스를 기다립니다. 교문 앞에도 관광버스 한 대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웅이는 가끔 노란색 버스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그 생각을 날려버립니다. 친구들이 없는 동안 운동장과 놀이기구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재잘거림에 버스가 마구 흔들릴 지경입니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학생들이 줄줄이 차에서 내립니다. 그때 비탄에 젖은 웅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선생님 제 돈이 없어졌어요.” 얼굴에 이미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증거를 찾으려는 형사처럼 웅이의 가방을 뒤집니다. 가방 안의 주머니를 두 번씩이나 탈탈 털고 흔들고 샅샅이 뒤집니다. 다음은 웅이의 점퍼와 바지 호주머니를 다 뒤져 보았지만 돈은 없습니다. “선생님, 아침에 웅이가 학교에 오자마자 우리들한테 돈을 흔들며 자랑했어요. 그 때 없어진 거 아닐까요?” 옆에 서 있던 같은 반 아영이와 정아가 알려줍니다. 웅이가 잠깐 아침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듯 두 눈을 살짝 감았다 천천히 뜨더니 결국 돈 찾는 것을 포기하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푹 숙입니다.
웅이가 첫째 형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합니다. “형 나 돈 잃어버렸어. 돈 조금만 주면 안 돼?” “어쩌다 잃어버렸어? 조심했어야지. 나도 여유가 없어 미안.” 첫째 형은 돈 대신 진심 어린 위로만 건넵니다.
“형 나 돈 잃어버렸어. 돈 좀 줘.” “아이고 어쩌다가. 아침에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어쩌냐, 나도 거의 다 쓰고 얼마 안 남았어.” 둘째 형의 위로에도 진심은 잔뜩 담겨 있었지만 돈은 주지 않습니다.
“형 나 돈 잃어버렸어. 돈 조금만 주면 안 돼?” “야 임마,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셋째 형은 돈은 커녕 한 마디 위로의 말조차 해주지 않습니다.
웅이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습니다. 웅이는 눈물을 닦으며 새로운 결심을 한 듯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친구들에게 다가갑니다. 세 명의 형들로부터 쓰디쓴 거절의 아픔을 딛고 웅이는 마지막으로 친구들에게 부탁해볼 생각입니다.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단체로 있을 때 부탁해보려고 합니다. 웅이가 용기를 내어 최대한 큰 소리로 말합니다. “얘들아 나에게 돈 좀 꿔 줄 사람?” 아영이와 정아, 지아와 선규는 서로 약속한 것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돈을 못 꾸어주겠다는 뜻을 웅이도 확실히 압니다.
그야말로 돈 앞에서는 형제도 친구도 다 필요 없는 냉정한 세상임을 웅이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웅이를 부르고 눈이 마주치자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웅이가 선생님 앞으로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웅아 선생님이 너 쓸 돈 줄게.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지킬 수 있지?” “네.” “선생님한테 돈 받았다는 것은 비밀이야.” “그거야 어렵지 않죠.” 선생님이 만원짜리 한 장을 웅이의 호주머니에 아무도 모르게 살짝 넣어 줍니다. 돈을 꺼내 보고 씩 웃으며 친구들에게 뛰어가는 웅이의 발걸음이 작은 새처럼 가볍습니다.
오월의 산들바람이 운동장 가에 있는 느티나무의 연녹색 이파리들을 흔듭니다. 운동장 위로 잿빛 비둘기들이 낮게 날아 옆 산 소나무 위에 가볍게 내려앉습니다. 아침부터 운동장이 시끌벅적합니다. 오늘은 학부모 동행 등산 체험학습이 있는 날입니다. 책가방 대신 소풍 가방을 멘 아이들은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맛있는 간식들 생각에 신바람이 났습니다. 저쪽 운동장 가에 학부모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웅아 너희 엄마는 안 오시니?” 선규가 웅이의 표정을 살피며 묻습니다. 웅이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머리를 앞뒤로 천천히 흔듭니다. 3월 초 학교 설명회, 4월 운동회 때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도 엄마는 김치공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형들 학교 행사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 4월 운동회 때도 엄마 대신 담임선생님과 짝이 되어 달렸습니다. 어느 날 웅이의 일기장을 선생님이 읽었습니다. 비뚤비뚤한 글씨로 딸랑 한 줄을 써 놓은 일기입니다. “우리 엄마도 학교에 와쓰면 참 조캐따.” 선생님은 그 뒤로 웅이의 어린 마음이 다치지 않을까 신경을 더 많이 써줍니다.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불 때마다 운동장 가의 느티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갈색 이파리들이 부랑아들처럼 떼를 지어 운동장 위를 휩쓸고 다닙니다. 노란 학교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몸을 움츠리고 낙엽 위를 걸어 교실로 들어갑니다. 선생님 책상 위에 커다란 검정 비닐 봉지가 놓여 있습니다. 열어보니 빨강 사과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가 사과밭에서 일하고 얻어온 사과예요. 친구들과 선생님 먹으라고 주셨어요.” “그래? 너무 고맙다. 웅이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시고 얻어온 사과라 더 맛있겠는걸. 웅아, 어머니한테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해 드려라.” 웅이가 친구들에게도 사과를 한 개씩 나누어 줍니다. 아이들이 환호하며 좋아하며 사과를 한 입씩 베어 먹습니다. 빨간 사과즙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는 향기로운 아침입니다.
“선생님, 왔어요. 진짜로 왔어요.” 11월마다 열리는 학예발표회가 날입니다. 오늘 아침 웅이의 표정이 보통 때보다 더 밝고 목소리는 명랑합니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가벼운 몸동작을 하며 복도 쪽을 쳐다보며 소리칩니다. “웅아 누가 왔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 “누구긴 누구예요. 우리 엄마가 학교에 왔다니까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교실 뒷문 쪽에 웅이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보입니다. 왼쪽 발에 깁스를 하고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웅이 어머니가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를 하며 겸연쩍게 웃습니다. 사과밭에서 일을 하다가 사다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다고 합니다.
6학년과 병설 유치원이 졸업을 하는 날입니다. 첫째 형 광이가 졸업하는 날이라 엄마도 형에게 줄 꽃다발을 사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엄마는 졸업식만큼은 절대로 빠지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웅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아들 졸업식을 위해 학교에 왔습니다. 목사님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웅이에게도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유치원을 졸업하는 목사님 막내아들이 손에 들고 있는 막대 사탕 섞인 꽃다발에 자꾸 눈이 갑니다. 웅이의 꽃다발 속에는 막대사탕이 없습니다. 퇴근 길에 웅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갔을 때 웅이 책상에는 목사님이 준 꽃다발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사탕이 섞여 있지 않다는 이유로 웅이에게 버림받은 꽃다발입니다. 웅이가 좋아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자전거와 강아지와 사탕인데 목사님은 왜 그걸 몰랐을까 웅이는 참 궁금합니다.
겨울이 깊어가고 눈이 내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겨울 방학이라 아이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읍내에 있는 학원을 가기도 하지만 웅이네 형제들은 읍내까지 태워다 줄 사람도, 차도 없고 사형제 학원비를 낼 정도로 엄마의 사정은 여유롭지 못합니다.
웅이네 집안이 아침부터 소란스럽습니다. 전날 저녁에 대전에 사는 고모가 웅이네 집에 왔습니다. 오늘은 웅이가 두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웅이 아빠의 제삿날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조기를 굽고 전을 부칩니다. 고모는 고기 산적과 잡채와 나물을 만듭니다. 마당과 골목, 학교 운동장까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퍼져나갑니다. 웅이는 벌써부터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치 잔칫날 같습니다.
하얀 눈이 날리는 운동장에서 웅이가 콩벌레처럼 쭈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아빠 얼굴을 그려봅니다. 생각이 잘 안 나는지 반쯤 그리다 나뭇가지를 휙 던져버리고는 빨강 털모자를 쓰고 빨간 자전거를 탑니다. 검정 강아지 뚜기가 왼발을 절뚝이면서도 사명감에 불타는 보디가드처럼 온 힘을 다 해 자전거를 쫓아갑니다. “뚜기야 힘내.” 웅이가 연신 뒤돌아보며 뚜기를 향해 소리칩니다. ‘나는 뚜기만 있으면 돼. 내 친구 뚜기야 힘내.’
뚜기도 웅이의 마음을 아는 듯 절뚝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바람처럼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