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호와 승우는 쌍둥이다. 갸름하고 얼굴이 하얀 승호가 형이고 얼굴이 둥글고 까무잡잡한 승우가 동생이다. 형제는 늦은 봄에 경기도에서 전학을 왔다. 시골 작은 학교라 2학년은 한 반 뿐이었고 둘은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승호와 승우는 고모 집에서 생활을 한다. 엄마는 안 계시고 건축 일을 하시는 아빠는 장소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고모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2학년 영진이와 1학년 영민이다.
고모네 집은 이 때부터 대혼란기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고만 고만한 아이들 넷을 돌보느라 고모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일정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때 그 때 일감이 생기면 일을 하는 처지라서 힘겨운 생활은 불보듯 뻔했다. 고모와 상담이 잦아졌다. 고모는 남자 애들이 넷이라 너무나 힘들다고 하소연을 자주 하셨다.
첫째인 승호는 무덤덤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다.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달리기를 잘한다. 둘째 승우는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하고 성격이 내성적이고 차분하다. 형의 말을 잘 안 들을 때도 많아 형제끼리 싸움도 자주 일어난다. 승호와 승우는 고종 사촌인 영진이와 영민이하고도 싸움이 잦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출근해보니 라면 박스 하나가 교실 뒤쪽 구석에 놓여 있었고 안에는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풀밭에 놓아 주었다. 난리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 운동장에서 놀다가 첫째 시간 종이 울리자 교실에 들어온 승우가 상자 안에 아기 참새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새가 곧 죽을 것 같았고 새는 자연에서 자라야 된다고 생각해서 풀어주었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승호는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다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둘째 수업 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 저기 찾아보았으나 간 곳이 없다.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네 선생님 제가 승우를 찾아 잘 달래서 점심 먹고 학교로 데려갈게요.”
4교시 마치고 다른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승호는 남아서 고모와 승우를 기다렸다. 고모가 승우랑 학교에 오셨다. 넷이 앉아 이야기를 하려고 둘러 앉았다. 갑자기 일이 생겨 교무실에 잠시 다녀오는 동안 교실안에서 난리가 났다.
"너 이놈으 새끼 왜 이렇게 고모 말을 안들어. 왜 이렇게 속을 썪이는 거야! 응?"
고모가 교실 구석에 있던 파리채의 손잡이를 들고 승호를 쫓아다녔다. 등허리를 한 대 맞은 승호는 쫓기는 짐승처럼 이리 저리 피해 다니고 있었다. 승호는 오늘 사건의 발단이 된 아기 참새와 별로 관계가 없었다. 고모는 아마도 승호의 지난 잘못을 끄집어 내어 혼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말리자 좀 진정이 되었다 싶은 고모가 차분하게 승호와 승우를 앞에 앉혔다. 두 사람에게 손바닥을 내밀라고 했다.
“고모,님 제발 저를 봐서라도 이제 그만 진정하세요. 새를 날려 보낸 제 잘못입니다. 아이들 잘못이 아니에요.”
“아니예요 선생님, 얘들은 좀 혼나야 합니다. 상관하지 마세요.”
“승호 손 내밀어. 열 대 맞을 거야.”
고모는 승호의 가늘고 여린 고사리같은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승호는 눈을 꼭 감고 인상을 쓰며 참아 내고 있었다. 척, 척, 척 손바닥 맞는 찰진 소리가 교실에 가득 찼다.
승호가 갑자기 소리쳤다.
“고모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흐으으으······.
승호의 거친 숨소리에 내 마음은 죄책감과 슬픔과 자괴감으로 무너져 내렸다. 고모가 매질을 멈췄다.
“다음 승우”
고모가 승우의 작고 통통한 손바닥에 매질을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승우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열 대를 다 맞았다.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승호와는 많이 달랐다. 형제인데도 이렇게 달랐다. 승우는 나름 자존심을 세워보려고 했던 것일까.
고모는 열 대를 다 채우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나쁜 놈의 자식. 무슨 고집이 그리 센지”
고모의 눈에 얼핏 눈물이 보였다.
승호처럼 초반에 잘못했다고 했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았으련만 승우의 고집에 고모도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나의 미숙한 대처로 인하여 두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 승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잘못했다고 한 것일까? 승우는 자신이 왜 매를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던 사건이었다.
운동장 가에 오래된 느티나무 잎에 초록이 짙어지는 유월이다. 마지막 주에 학부모 공개수업 행사가 있다. 학부모를 초청하여 전 학년 수업을 공개하는 것이다. 3교시와 4교시에 공개수업이 진행된다.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러 오셨다. 승호 고모도 직장에 외출을 내고 오셨다. 이런 날은 아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 복도의 발걸음 소리도 다른 때보다 경쾌하다. 승호와 승우도 매우 즐거워했다. 공개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긴장했던 선생님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 동안 준비했던 대로 수업이 성공적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오후 퇴근 무렵 승우가 운동장에서 놀다가 가방을 찾으러 왔다. 집이 학교 근처라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까지 승우의 가방은 교실에 있었다.
“어서와”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대답 대신 한숨을 푹 쉰다.
“왜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왜 그래? 선생님한테 말해봐”
“······.”
“승우 무슨 일 있지? 선생님한테 말해 줄 수 없어?”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승우가 한숨을 길게 쉰 다음 말을 꺼냈다.
“있잖아요. 오늘 수업 때 다른 엄마들 많이 왔잖아요.”
“그래 승우 고모도 오셨잖아.”
“그런데 친구들이 우리 엄마는 안 왔다며 엄마 없다고 자꾸 놀렸어요. 그래서 형은 그 애들과 싸움도 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승우가 많이 속상했겠네.”
“내일 선생님이 그 애들 많이 혼내줄게.“
승우가 한 참 후에 엄마 얘기를 꺼냈다. 엄마와 지냈던 행복했던 때의 이야기들을.
“승우야 언제 엄마가 제일 보고싶어?”
“저녁 때 해가 막 질려고 할 때요. 또 새벽에 오줌 누러 일어났을 때요.”
새까맣고 커다란 승호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고모한테 손바닥을 맞을 때에도 고집을 부려 열 대를 다 맞았던 승우였다. 자신의 약점을 잘도 숨기며 강한 척을 했던 승우였다. 다른 친구들과 싸움이 붙어도 쉽사리 눈물을 보이지 않던 승우였다. 그런 승우도 ‘엄마’라는 말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풀밭에 힘없이 누워 있던 가여운 아기참새를 승우가 라면 박스에 담아 온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바보 같았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 자신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