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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casam Aug 28. 2022

상처 입은 새


 길고 긴 여름날의 무더운 저녁 바람 속에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이슬에 축축해진 강변 잔디밭을 어슬렁거린다. 후줄근하게 젖은 갈색 털은 앙상한 뼈가 도드라진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혀는 축 늘어졌고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못한 듯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꼬리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살랑살랑 흔든다.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며 목을 축일 물 한 모금을 찾아 헤매도 강아지를 위한 오아시스는 어디에도 없다. 진녹색의 잔디밭 옆 산책로에는 경쾌하게 팔을 흔들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복에 겨운 웃음소리가 풀풀 날려 강물 위로 흩어진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오늘 내가 본 한 마리의 강아지도 집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싯다르타가 동서남북 문을 나가 생로병사의 광경을 보고 괴로워했듯이 거리를 걷다 보면 안쓰러운 광경들을 많이 목격되어 마음이 무겁고 서글퍼지는 일이 많다.      


 3월 중순 1학년 은하가 전학을 왔다. 조그만 입을 앞으로 삐죽 내밀고 양 미간을 찡그린 채 별다른 표정이 없는 은하를 아이들이 박수로 환영해주었다. 열렬히 환영해주는 친구들 앞에서도 은하는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은하는 도시에서 시골 교회 목사님 부부에게 입양되었는데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은하가 전에 두 번의 입양과 파양을 거쳐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은하는 건강하고 이해력도 빠른 아이지만 분노 조절이 잘 안 되고 폭력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은하는 자신의 비위를 거스른 상대에 대하여 화를 못 참는다. 자기 성질을 못 이겨 펄쩍펄쩍 뛰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한참을 큰 소리로 운다. 당연히 수업은 진행이 안 된다. 또한 자기 책상 옆을 지나가는 아이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싸움을 하다가 상대가 강하다고 판단되었을 때는 얼굴이나 몸에 손톱자국을 낸다. 자신이 아무리 잘못했다 생각되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친구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훔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야생의 망아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그런 은하를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학급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적인 분쟁이 자주 일어났다. 은하가 속한 집단과 은하가 속하지 않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두 집단은 매일 헤쳐 모였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었다. 분쟁은 공부 시간과 쉬는 시간 등 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말도 안 되게 유치한 말싸움에다가 서로 삐져서 같이 놀지 않기,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은 편끼리 먹는 등 은하가 오고 나서 우리 반의 평화가 깨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은하가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학급에는 다시 예전처럼 평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은하는 맛있는 과자를 가지고 와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예쁜 악세사리들을 선물하기도 했다. 12색의 크레파스를 쓰는 친구들 앞에 48색의 크레파스를 펼쳐 보이며 같이 써도 된다고 하고 신기한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게 해주는 등의 파격적인 선심을 썼다. 친구들이 자신을 미워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은하의 주변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고 어쩌면 친구들의 친절함이 은하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다정함을 끌어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은하는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었다. 은하가 좋아서인지 은하의 크레파스가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학급 친구들의 절반은 늘 은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날이 갈수록 은하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밤새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온 힘으로 버티어 몸살감기를 이겨내듯이 지금까지 겪은 아픔을 훌훌 털어버리고자 하는 은하의 무의식적인 노력인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는 은하의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바뀌지 않고 작은 새처럼 명랑하고 행복한 삶을 펼쳐갔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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