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땡님 이거 어떻게 하는디 모으겠떠요.”
민혁이가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손을 든다.
“이거 지난번에는 잘했는데 또 까먹은 거야?”
우리 반에서 나 말고는 민혁이의 부정확한 발음을 백 퍼센트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아주 긴 문장이나 빠르게 말할 때에는 내가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4학년인 민혁이가 발음 때문에 자칫 하급생들이나 친구들에게 놀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발음 교정을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민혁이는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말을 하거나 듣는 중간에 양쪽 눈을 두 번 정도 깜빡거리고 머리를 한 번 좌우로 빨리 흔드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두 동작이 0.5초 정도 안에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흔든다기보다 얼굴 전체를 빠르게 턴다고 해야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민혁아 나랑 눈싸움할까? 자, 시작한다. 시~ 작.”
눈싸움하는 동안에도 민혁이의 눈 깜빡거림과 머리 털기는 여러 번 계속되었다.
민혁이 어머니는 아기 때 말과 걸음마를 늦게 시작했다고 민혁이를 ‘좀 늦는 아이’라고 불렀다. 다른 아이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민혁이를 일찌감치 학원 순례의 길에 올려놓았다. 또래 아이보다 체격이 작고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태권도 학원을 제일 먼저 다니게 했고 수학, 영어, 독서논술, 피아노까지 다섯 개의 학원을 순례하게 했다. 순례보다 방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까? 민혁이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이 많은 학원들이 민혁이의 공부 실력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민혁이는 독서 논술 학원 외에는 전혀 흥미를 못 느꼈고 특히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가장 싫다고 했다.
“민혁 어머니, 민혁이 일로 상담을 좀 하고 싶은데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 민혁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상담 주간은 아직 멀었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되어 전화를 드렸다.
발음이 부정확한 것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였고 눈 깜빡임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별로 심각하지 않은데 왜 선생님은 심각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느냐는 식이었다. 나는 집 안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민혁이를 지켜본 결과 피아노가 스트레스의 제일 큰 원인인 것 같으니 피아노 학원부터 그만두고 일단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별 반응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민혁이의 일기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다. 학원에 다니기 싫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과 친구들이 ‘너 참 안 됐다’라고 할 때 기분이 나쁘고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고 쓴 내용이었다. 언젠가 자기가 잘못했을 때 아빠한테 들었던 '나가 죽어라'는 말처럼 나가 죽고 싶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순간 민혁 어머니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서는 민혁이가 한 번도 학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선생님.”
민혁이가 아버지를 무서워한다는 것과 아버지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따라야지 안 그러면 집안이 난리가 난다고 했다. 엄마인 자기 자신도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민혁이를 엄하게 대했고 앞에서 끌고 가면 민혁이가 당연히 끌려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무슨 무슨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어머니들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을 하면 어느 정도 자기 자신에게 위로가 되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민혁이가 일주일에 한 번 대도시에 있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4주가 되었다. 앞으로의 치료 기간이 더 남았지만 발음과 눈 깜빡임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아빠가 시간을 내어 꼬박꼬박 병원에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민혁이는 학원 순례를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독서 논술 학원 한 군데만 다니게 되었고 시간 날 때마다 독서를 실컷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민혁이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었다.
“선생님 민혁이가 병원에 다니고 나서 제 병도 나은 것 같아요.”
“민혁이 어머니도 어디 아프셨어요?”
“네, 마음의 병이요. ‘욕심’이라는 병과 ‘비교’라는 병이요"
"그 병 한 번 걸리면 불치병이라던데 민혁이 어머니는 초기였나 봐요. 축하드려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당치 않은 말씀. 다 민혁이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