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밖에서 난로가 있는 교실에 들어서면 우리 반 특유의 냄새가 났다. 불냄새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들한테 나는 담배 냄새 같기도 한 그런 냄새다. 나는 수시로 ‘용의 검사’라는 명분 하에 손과 머리, 옷차림 등을 살펴보았다. 일주일 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와 손등이 터서 늘 반질반질하게 연고를 바르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연탄을 때는 집도 몇 집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 집에서는 나무를 이용해서 난방을 한다. 솥에 물을 데워서 머리를 감아야 하는 데다 추운 겨울 아침에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그것이 어린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매일 머리 감는 사람 손들어 보자”
민지가 손을 든다.
“민지 머리가 찰랑거리는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은근히 민지를 추켜 세운다.
“아침마다 안 감으면 엄마한테 혼나거든요.”
묻지도 않았는데 민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 마디 한다.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 감는 아이가 두서너 명 있었고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는다고 손을 들었다. 순영이는 손을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순영아 내일은 머리 꼭 감고 와. 민지 머리 봤지?
가방을 메고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가는 순영이 등 뒤에다 내가 한마디 한다.
“네.”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처럼 대답을 한다. 순영이는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머리를 감은 흔적이 없다.
순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종달새와 보리밭’ 동화가 떠올랐다. 보리밭에 사는 종달새 가족 이야기다. 현명한 어미 새가 게으른 농부의 말에 따라 이사 갈 시기를 정한다는 이야기다.
“보리가 알맞게 익었구나. 이웃들을 불러다가 빨리 베어야겠다.”
"보리가 너무 익어버렸구나. 이웃만 믿고 있다가는 안 되겠다. 내일 삼촌한테 거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이것 봐라! 이웃이나 일가친척들만 바라보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구나. 오늘 밤에라도 일꾼을 몇 사람 사서 우리 집안사람끼리 베어야겠다. “
"그래,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구나.”
‘나는 지금까지 게으른 농부였구나. 그래, 내가 직접 순영이 머리를 감겨야겠다.’
이튿날 아침 다른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놀러 나간 사이 순영이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 올려보았다.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엉킨 것은 머리를 감지 않아서라기보다 부스럼의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 때문이었다. 머리를 감기기 위해서는 일단 순영이와 할머니의 동의가 필요했다. 순영이와는 이야기가 잘 되었다. 할머니의 동의도 필요하다고 했더니 순영이는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온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집에 갔던 순영이가 헐떡거리며 뛰어왔다. 할머니가 머리를 감는 것을 허락했다고 했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음 행동에 돌입했다.
학교 교문 옆에 있는 잡화점에 들러 빨랫비누 한 개를 샀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빨래 비누가 세숫비누보다 화학성분이 덜하고 왠지 소독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 어머니가 내 머리에 부스럼 났을 때 써먹은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때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적용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오후 순영이의 머리를 감기기 위해 내 집으로 갔다. 부엌 연탄불 위에 늘 올려져 있던 솥 의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기기로 했다. 머리를 감기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비누를 아무리 칠해도 순영이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달라붙은 채 굳어 있어 풀어지지 않았다. 난관에 봉착한 순간 나는 빠른 결정을 내렸다.
“순영아 우리 중대한 결심을 해야겠다.”
“무슨 결심이요?”
“순영아 머리카락을 좀 잘라야겠다.”
“알겠어요.”
순영이는 이미 자신의 머리 상태를 나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나를 전적으로 믿고 있었던 듯 쉽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가려워서 엄청 고통스러웠을 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뭉쳐져 있던 머리카락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조금만 자르려고 시작했는데 자르다 보니 머리 뿌리 부분까지 자르게 되었다. 약을 바르려면 장애물인 머리카락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점점 짧아지다가 결국은 민둥머리가 되었다. 그다음 빨래 비누로 살살 머리를 감기기 시작하자 진물이 씻겨 나가며 딱지가 솔솔 떨어져 나왔다. 수건이 상처에 닿을 듯 말 듯 조심스럽게 닦아 머리를 말렸다. 중간중간 후 후 불어가며 물기를 말린 순영이 머리가 뽀송뽀송해졌다. 준비해 놓은 상처치료제인 하얀색 연고를 골고루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옷장에서 붉은색과 핑크색 톤의 스카프와 보라와 푸른색 톤의 스카프를 꺼냈다.
“와, 예뻐요..”
“두 개 중에 하나 고르기.”
순영이가 두 개를 들고 한참을 비교하다가 붉은색과 핑크톤의 스카프를 손에 들었다.
“자 우리 같이 멋지게 써 볼까?”
거울 속에 푸른색 스카프와 핑크색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있는 두 사람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외국의 여인들과 비슷해 보였다.
저녁 어스름이 되자 겨울바람이 매서워졌다. 사택에서 순영이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우리는 지름길인 들판길로 가기로 했다. 바람에 스카프 자락이 연처럼 팽팽하게 당겨지며 사락사락, 휙휙 소리가 났다. 한쪽 어깨에 순영이의 가방을 메고 한 손으로는 순영이의 손을 잡고 인디언 전사처럼 씩씩하게 들판 길을 달리다시피 걸어갔다.
불을 켜지 않아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순영이가 할머니를 부르자 안방에 불이 켜지며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한다. 순영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공사판 일을 찾아 옮겨 다니다 보니 집에 들르는 일은 일 년에 몇 번 안 된다고 했다. 할머니는 허리를 다쳐 며칠째 누워 계셨고 겨우 순영이 밥을 챙기는 정도였다. 초라한 집안 살림살이와 순영이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자 순영이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민지와 비교까지 해가며 머리 감으라고 추궁을 했던 나의 냉정함과 무관심과 오만함에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일이 있은 후 하루에 한 번 순영이를 내 방으로 데려가 머리에 약을 발라주었다. 부스럼은 생각보다 빨리 호전되었다. 진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상처에 꾸덕꾸덕 새 살이 차오르는 것을 보며 순영이 집에서 느꼈던 나의 부끄러움도 차츰 치유가 되었다.
다행히 친구들은 순영이가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다니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누구나 몸에 무엇인가를 걸치거나 덮어쓰고 다녀야 하는 추운 겨울이었으니까. 나도 순영이의 머리 부스럼이 다 나을 때까지 목에 푸른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순영이와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이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초 오후 , 조금 누그러진 햇살 아래 4학년에 올라간 순영이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다. 순영이 머리에 있던 핑크색 스카프가 이제는 순영이 목에 둘러져 있다. 자라기 시작한 순영이의 머리카락이 제법 까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