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항암 후, 걷는 것이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우리의 기대가 무색하게 엄마는 전혀 차도가 없었다.
워커를 이용하지 않으면 전혀 걸을 수 없으시고, 기운이 없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날에는 머리가 흔들리고 몸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도저히 제어가 안되 잠시동안은 흔들림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도 미식거리는 증상으로 인해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고,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리는 등 부작용과 싸우셔야 했다.
"이러다 앉은뱅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 아직 1차 항암밖에 안했잖아. 아직 완전히 암이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끝까지 다 받아보자."
걷는 것이 잘 안되니 낙상 사고가 제일 걱정이었다. 이 상황에서 골절마저 된다면 엄마는 정말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가족들이 24시간 엄마를 따라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낙상 사고를 대비해 손잡이를 설치하고, 화장실 매트를 깔고, 환자침대로 바꾸기를 권했으나 엄마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절대!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
우리는 만약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얘기하며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빠는 그냥 무조건 바꿔버리겠다고 엄포를 놔버려도 엄마는 강경했다.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니 내가 다 할 수 있고, 절대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고.
내가 여기에 다시 익숙해지면 된다고, 최대한 조심하겠다고.
하지만 어디 사고가 조심하겠다고 조심할 수 있는 것인가.
만에 하나 정말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 불보듯 뻔했다.
아무도.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엄마는 단지 그냥 갖다 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허락했다.
변기손잡이, 워커, 휠체어, 전동칫솔, 목욕의자.
설치했다가 병이 다 나으면 아빠가 깔끔하게 원상복구 시켜주겠다고 해도 엄마의 집에 못 자국 하나 생기는 것에 극도로 치를 떨었다.
엄마의 희생과 노력으로 일구어온 엄마의 성 안에 아무도, 아무것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우리는 졌다.
정말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놓고 엄마가 부디 넘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그리고 엄마는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맞는 약은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소파 베개에 잠시 누워있다가 일어나도 베개 커버에 머리카락이 가득했다.
"머리 많이 빠졌니?"
"아니야, 그렇게 많이 안 빠졌어."
나는 암환자가 나오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을 마주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엄마가 머리가 더 빠지기 전에, 아직은 병색이 더 짙어지기 전에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사진관에 모시고 가는 것조차 힘드실까봐 출장 메이크업이랑 사진촬영을 예약했다.
"엄마, 우리 시간 더 흐르기 전에 가족사진 한 장 찍자. 집으로 와서 찍는거니까 엄마는 그냥 있기만 하면 돼."
"응, 알았어. 그런데 아빠한테 같이 영정사진도 찍자고 했어."
"무슨.... 영정사진을.... 찍어."
"만약 그 순간이 오면, 너희들이 너무 당황해. 미리 준비해놓는거야. 아빠도 알겠다고 하더라."
나는 그저.
엄마 머리카락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때, 지금 순간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엄마의 입에서 '영정사진'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무너졌다.
아... 엄마는 아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구나.
우리는 아직 '삶'쪽으로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오지 못했구나.
그러나 결국. 엄마는 영정사진도, 가족사진도 찍지 못했다.
엄마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집에서 찍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다음에.... 다음에.... 엄마가 좀 컨디션이 회복되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