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 이야기
본가에 내려가면 덩치 큰 삽살개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 집 막내 보리다.
언제든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지만 집보다는 산책을 좋아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부모님의 복장에서 산책의 느낌이 느껴지면 벌써부터 신이 나 마당을 뛰어다닌다. 산책 갈 준비를 하는 건지 자기의 준비물을 챙기며 몸을 푸는 모양새다.
뒤이어 '산책'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한글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귀신같이 알아듣고 대문 앞으로 달려가 앉아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평소에는 잘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도 산책시켜주고 싶은지 항상 입에 장난감을 앙 문채 단호하게 앉아있다.
신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면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정신이 없다. 본가가 자연 한가운데 위치한 덕분에 보리에게 산책은 엄청나게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라도 났는지 도시의 강아지들이 자동차를 타고 와 산책을 하기도 한다.
경쟁자가 많을 때는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온 흙밭을 뒹굴고 풀을 뜯어먹으며 산책을 즐긴다. 그러고도 충분히 놀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 별안간 가느다란 목줄을 사이에 두고 약한 줄다리기 시합이 벌어지고 우리는 승리해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랬던 보리가 2022년 설날 즈음엔 산책을 나가 볼일만 보면 더 걸으려 하지 않고 집으로 쌩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산책이 지겨워진 걸까 아니면 힘에 부치는 걸까? 다행히 1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산책을 즐기고 있지만 그때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지 아팠던 건지 말을 하지 못하는 막내의 상태를 우리는 알 길이 없다.
2014년에 태어나 어느덧 벌써 견생 10년 차가 되었다. 가끔 본가에 방문할 때마다 흘러간 시간만큼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우리 집 막내이면서 동시에 가장 늙었다. 노견이 되어버린 귀여웠던 막내가 평소와 좀 다른 듯이 보이거나 컨디션이 이상해 보이면 괜히 걱정되고 마음이 쓰인다.
더위가 심한 여름에 보리가 힘이 없어 보이면 엄마는 닭을 삶아 보리에게 주곤 한다. 보양식을 챙겨 먹고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지 크게 아팠던 적이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왔다. 어릴 적 같이 장난치던 꼬마 강아지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만, 집에 내려가 대문을 들어설 때 반겨주는 모습을 보면 보리가 늙어가는 시간만큼 우리가 끈끈한 가족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래에 나의 아들 딸이 보리와 노는 모습도 상상하곤 하는데, 앞으로도 건강하게 우리 옆에 있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