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각은 다양하게 뻗칠 수 있다. 못해봤던 사고들, 느껴보지 못한 감각, 천상의 세계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감의 원천은 무한하다. 한번쯤 공상의 나래를 펼쳐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이 생각이란 녀석이 얼마나 깊게 사람을 매혹 시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슬픔과 불안에 이르게 만드는지 말이다. 한번 시작된 생각은 끝을 모르고 뭉게뭉게 피어올라, 결국 거대한 구름을 만들어낸다. 사고의 편린들이 담긴 구름을 말이다.
생각은 의식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무의식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가령 내가 a라는 것을 생각하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그것을 떠올리면 의식적인 사고에 가깝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a가 떠오르면 그것은 무의식적인 사고에 가깝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의 머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그 품에 살아가는 어린 아이와도 같다. 때로는 의식의 손을 잡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의식의 손을 잡으며 생각의 끝을 이어간다.
의식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방향과 길을 제시해주고, 무의식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추진력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로울 때, 생각은 건전해지고 체에 거른 설탕물처럼 부유물이 사라진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관점을 출발점 삼아, 만약 사람 간의 생각이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매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종종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즉, 개인의 생각에서 빚어진 다양한 형상들을 타인의 생각을 통해 ’100%‘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봤다는 뜻이다.
불현 듯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면, '그 사람이 우리를 그 시점에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즉, ‘나’를 시작점으로 타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타인’의 사고에서도 우리의 생각이 빚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칼 융은 이를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듯한 상황이 서로 연관이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을 뜻한다. 타인이 나를 생각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는 상황이지만, 멀리서 그 의식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발신기와 수신기를 떠올려보면 될 텐데, 우리 모두는 ‘생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있고,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연결이 된다면 어떻게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얽힘의 효과’처럼 한 입자가 다른 입자와 결부될 때 그 둘은 독립적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친구를 생각하던 날, 때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그런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어왔고, 현재도 유사과학이라 칭하는 사람 또는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연구하여 상황을 들여다보려는 사람, 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듯 보인다. 필자의 입장은 후자에 가깝다.
생각이라는 것을 토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이 증진된다면, 우리의 세상은 한층 넓어지고 폭넓은 이해의 틀이 마련되리라 생각한다. 먼 훗날 뇌에 심는 기계 같은 장치들이 만들어져, 타인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동기화시킬 날이 영화에서 구현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에 수반하는 윤리적인 문제라던지, 사생활 침해처럼 다양한 관점도 두루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타인이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생각을 전제로 연결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재밌고 신기한 일이다.
현대의 ‘mbti’검사도 인간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시도의 하나였다. mbti 검사의 유행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의 단점과 장점을 파악하며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이 사람은 나랑 안맞아’, ’저 사람은 좀 이상해‘처럼 대충 넘겨짚고 생략하던 사항들이 심리검사로 인해 구체적인 분석 요인들로 승격이 된 것이다. mbti 검사가 다양성을 넓혔던 것처럼, 생각과 생각이 매개되어 사람들 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서로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오해와 불필요한 논쟁‘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까 싶다. 그 공상이 언젠가 현실의 가능성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필자는 사유의 스케치를 한 줄 더 그어 나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