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당시 일본 외무상이었던 ‘기시다 총리’와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여 해외 ‘소녀상’ 건립을 지원하지 않으며 ‘불가역적 표현’도 한국이 먼저 제안했다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었다. 그로부터 8년 후 다시 정권을 잡은 보수 정당과 윤석열 정부는 이번에도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다시는 일본 강제 징용문제를 재점화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일본에 내세우면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일본의 보수 언론과 전문가들은 기시다 총리에게 절대 한국에 사과와 배상을 언급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으며, 외무상은 강제 동원은 없었고 이미 다 끝난 문제라고 했으며,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 합의 이행 요청과 독도 영유권 요청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런 회담이 있기 전에 김영환 충북 도지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가 되겠다고 말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결정은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대승적인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1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한국 근대 역사가 두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실로 놀랍다.
2.
미중 관계가 (최소한 경제적으로) 상호협력적인 관계일 때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는 대미수출과 대중수출로부터 필요한 과실을 따고 있었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 우크라이나와 대만의 지정학적 위기, 미국 내 중국 스파이, 중국의 선거개입, 중국 정찰풍선, 중국의 에너지 위안화 결제 시도 등으로 인해 미국은 정치/경제/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호주, 영국, 인도, 일본, 유럽 등의 민주주의 진영과 함께 정치/경제/외교 블록을 형성하고 있으며, 중국은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독재주의 진영과 함께 같은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은 미중 양쪽의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특히 미국은 공급망 재편과 그에 따른 보조금 혜택에서 한국을 시험하고 있다. 한국의 여러 대표 기업들이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에 맞추어 미국 내 자동차와 반도체 투자를 약속했지만 정작 보조금 지원 혜택 대상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현재 한국 경제는 작년 3월부터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고 1월 경상수지 적자는 45.2억 달러로 역대 사상 최대 적자이다.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로 인한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하는 한편,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 비용까지 늘어난 탓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미국 공급망 재편에 한국 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밀어붙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일관계가 개선되어야 민주주의 블록 형성에 유리하게 되어 중국과의 패권 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한국 정부가 일본에게 모든 카드(지소미아 정상화, 징용문제 3자 배상안, 징용문제 재점화 불가론, 수출규제 해소 등)를 내놓고 국민의견과 반대되는 정치 결정을 밀어붙이면서 그 어느 것도 만족할 수 없는 성과를 가져온다면 비판받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3.
사실 한일 관계 바깥에 있는 세계의 사람들은 일본이 한국에게 줄곧 사과를 해왔는데 한국은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읽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소련에 의한 우크라이나 대기근, 독일의 폴란드 침공 및 유태인 학살, 일본의 난징 대학살, 영국-아일랜드 전쟁, 미국 개척시대의 인디언 추방과 학살 등의 근대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런 생각은 편협한 사고에 불과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와 강제징용도 앞서 언급한 사건들과 유사한 근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로 국경을 맞닿은 채 오랜 앙숙이었던 독일과 폴란드가 1,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 간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화해를 하게 된 것은 ‘빌리 브람트’ 전 독일 총리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브란트 총리가 1970년에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있는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폭우로 가릴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 어린 참회의 무릎(Brandt Kniefall)을 꿇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많은 폴란드 인들은 감동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가해국을 대표하는 총리의 파격적이면서 진심 어린 사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도 고노 담화를 통해 사과를 했으나 곧 번복되었고 가해의 역사가 없기에 사과도 없다는 주장을 일관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 전후 세대에 치욕을 대물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오른쪽 정당과 소속 정치인 또는 관련자들은 이번 정부의 결정에 대해 갈등과 반목을 없애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며, 한국은 배상과 사죄에 악쓰는 나라이며, 사과를 한번 더 받는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나라는 등의 공식적인 언급을 했다. 한미 동맹과 같이 피를 함께 흘린 강력한 동맹에 견주어 볼 때 한일 동맹도 그런 수준에 부합하려면 양 민족 간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매한 정치적 수사와 모호한 피해의식 프레임으로 그럴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4.
최근에 일본 엔화가 상대적으로 싸지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여행을 많이 가고 있다. 수년 전 노재팬을 외치고 일본여행을 가면 매국노 취급을 하던 때와 사뭇 다르다. 하긴 제주도 여행 비용 보다 일본 여행 비용이 가격경쟁력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여유가 된다면 일본 교토에 가서 사슴에게 먹이를 주고 싶다. 그리고 최근 수년 동안 K팝이 전 세계 트렌드의 일부가 되면서 한국 문화를 좋아해 주는 일본의 젊은이들도 상당히 늘어났다. 일본의 신오쿠보는 요즘 말로 서울시 일본구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화가 많이 되었다. 또한 한국과 일본 개인 간의 교류도 활발한데 일본 내에 유튜브에 활동하는 국제커플 중에 한일 커플을 자주 본다. 이러한 활발한 교류는 양국 간의 발생한 진정한 근대역사를 올바르게 알고 이해하는 데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이런 과정은 민간에서 먼저 진정한 사과와 용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 입장에서 쉽지 않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을 하면서 한국 입장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반면 일본 입장에서 식민지배는 합법이었고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은 하였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의 정치는 역사 수정주의와 안보위기론이 섞이면서 일본은 우경화되어갔다. 결국 일본 중고등 검정 교과서에 이어 초등 교과서까지 일본의 식민지배가 온당하고 징병제란 문구를 삭제하고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유 하고 있다고 실렸다. 이는 전후 일본 구세대와 보수 우파 등이 미래세대에 패배의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일본이 플라자 합의 및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잃어버린 20년(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엄청남 정부 부채 등으로 일본 경제가 한국에 뒤쳐지자 위기의식을 느껴 점점 우경화 되는 듯 하다.
결국, 이번에 일본은 생각지 못한 통 큰 선물을 받으면서 골치 아픈 문제를 일소에 해결하고 추가적인 억지 주장과 정책을 추진할 탄력을 받은 셈이 되었고 한국은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보상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극단적 주장에 이렇다 할 대응을 못한 셈이 되어버렸다. 실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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