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다시 찾아옵니다.
책을 읽는데 거뭇한 점들이 페이지 한 면에 솟았다. 안경을 닦았는데도 점들은 가라앉지 않았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서서 엄지와 검지로 눈을 크게 벌리고 먼지 같은 이물이 눈에 꼈나 살폈다. 세월이 스며든 눈동자를 위아래옆으로 돌려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자 불안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일렁였다. 다음 날 회사 근처에 있는 전문 안과 병원을 찾았다. 안과 전문의 선생님에게 남일 이야기하듯 증상을 말했더니 전문의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듯 종합 검안을 하자고 하셨다. 그대로 검안사에게 불려 갔지만 검사의 설명과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서 내심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나 말고도 수 백 명의 환자들에게 수 백번 읊어댔을 기계적인 설명에 '왜요?'라고 묻는 것은 공장같이 돌아가는 병원의 직원에게 딴죽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그래서 눈을 크게 뜨라면 뜨고, 치켜뜨라면 치켜뜨고, 감으라면 감고, 돌리라면 돌렸다. 검안을 끝내니 눈이 커질 대로 커진 것 같았다. 전문의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보더니 망막에 열공(구멍)이 몇 개 생겼단다. 그래서 레이저로 구멍 주변을 결계를 치듯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로 두면 망막 박리가 생겨서 실명할 수도 있다면서 초기에 잘 찾아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약간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초기에 발견하는 것보다 애초에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좋은 데 말이다.
레이저 시술실 출입구의 옆 벽면에 '레이저광응고술'을 광고하는 모델이 밝은 시술실에 놓인 치료기 앞에 앉은 채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하지만 광고가 현실과의 괴리를 늘 품고 있듯, 실상 시술실은 암실 같이 어두 었다. 컴컴한 시술에서 한쪽 눈은 질끈 감은 채로 전문의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반대편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돌려가며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레이저가 열공된 망막 주변에 장벽을 칠 때마다 눈 속에는 번쩍번쩍 불벼락이 쳤다. (불벼락 치는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에 망막의 구멍 주변에 레이저빔을 쏜다고 들었을 때는 마치 MRI 같은 거대한 기계에 몸이 구속된 채 시술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눈에 직접 레이저빔을 쏜다는 것은 내가 자칫 몸을 조금만 움찔해도 잘못 맞을 수 있겠다는 상상이 일었다. 무시무시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망막 레이저 치료기는 흔히 이공계 연구실에서 볼 수 있는 고급 광학 현미경 정도의 크기였다. 다소 맥 빠지는 크기의 이 치료기는 최신 의공학 기술로 점철된 눈부신 상징처럼 보였다. SF 영화처럼 레이저빔을 맞아서 신체의 일부가 잘리거나 구멍이 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기술로 무장한 레이저 치료기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얇은 두께의 각막에 딱 필요한 만큼의 레이저량을 노출해 망막 구멍에 장벽을 친다. 하지만 그렇게 숙고하여 마음을 진정시켜도 두려움은 늘 직관적이다. 가슴이 떨리는 것은 나도 어찌할 바가 없다. 이럴 때는 눈을 질끈 감고 빨리 치우는 게 낫다.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있어 빨리 회사에 돌아가야 하므로.
아침에 눈을 떠보니 세상이 젤리 속에 갇혀 있었다. 젤리 속 세상은 작은 알갱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알갱이들은 내 눈이 가는 곳마다 스톱모션처럼 한 방향으로 쫓아왔다. 시야의 가장자리에는 파리 같은 것도 몇몇 보였다. 누운 채로 천창을 바라보며 한참을 유영하는 불청객들과 씨름하다가 지긋이 오른쪽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가 아는 익숙한 세상이 돌아왔다. 다시 오른쪽 눈을 뜨니 그제야 젤리 속에 갇힌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이런 일이 요즘 들어 자주 내게 찾아온다. 찾아와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늙어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럴 때면 마음이 잠시 의기소침하고 조금은 웅크려지는 것 같다. 요 몇 년 간 나이가 들수록 몸의 기능이 하나둘씩 예전만큼 못하다는 것을 조금씩 절감한다. 손의 아귀가 예전 같지 않고, 손목이 저리고 시큼하며, 목은 일자가 되었으며, 허리는 염증과 오랜 친구이다. 아마도 젊었을 때는 닥치는 대로 몸을 쓰며 일하고 취업해서는 종일 모니터 앞에 고개를 쭉 내밀고 일한 탓이리라. 그래서일까? 청명한 가을날 저녁에 건너편 아파트 단지 뒷산으로 떨어지는 해몰이를 보며 달리고 싶어도 아파서 그러지 못하면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어도 화면에 오버랩된 채로 나의 정신을 빼먹는 비문증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을 때도 그렇다. 눈의 근육도 약해져 복시가 찾아와서 속상했는데 이제는 망막이 얇아지고 색소가 떨어져 나가 수정체로 갇힌 비문이 나를 덮쳤다. 인생의 큰 쉼표 없이 힘주어 그어가던 굵은 실선 같은 나였는데 굵기는 점점 얇아지고 옅어지면서 가끔 이런 예기치 못한 점선을 뚝뚝 남기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러한 풍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흙탕물이 가득 담긴 비커에 물을 계속 들이부으면 흙탕물이 어느새 맑아지는 것처럼 포기하지 말고 희망과 시간을 연료 삼아 열심히 살다 보면 다시 늘 행복이 찾아왔었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망박이 박리가 되어 실명이 되기 전에 시술해서 다행인 것 같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 것을 몸에 아로새긴 훈장 같기도 했다.
덕분에 이제는 미룰 수 없는 아내의 운전연수를 다시 시작했다. 언젠가 나 대신 운전을 많이 해줄 아내를 위해 실수를 해도 다독이고 잘하면 칭찬해 주었다. 내친김에 후면 주차 공식도 알려주었다. 세상에 이런 게 다 있었는지 몰랐다는 토끼 눈의 아내에게 미리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대만에서 대조군 없이 한 연구 논문에서 파인애플이나 키위를 많이 먹으면 비문증이 좋아졌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말도 없이 키위를 두 묶음이나 사다 줬다. 키위를 잘 먹지도 않던 나인데 요즘 계속 키위를 입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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