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울고 난 다음.

by 김미지


나는 개를 싫어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개를 싫어한다기보다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이 털로 뒤덮힌. 한마디로 나와 다른 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는데, 나와 다른 종에 대한 낯설음은 곧 두려움이었고 적대감이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부모도, 부모의 부모도 개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내 세상은 아주 작고 우연한 기회에 바뀌었다.

나는 어쩌다보니 까맣고 하얀 털이 섞인 작은 개를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개는 아직 어렸고, 활력이 넘쳤고 인간을 좋아했다.

늘 까만 눈동자가 반짝 반짝 빛나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개였다.

그저 귀엽기 떄문에,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를 봐주기 때문에, 잘 먹기 때문에, 아무때고 똥과 오줌을 싸대기 때문에, 코를 골기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여러 이유로 나는 개를 자꾸 보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그 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개를 사랑하고 나니 세상의 모든 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개 뿐만이 아니었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를, 온 몸이 털로 뒤덮힌 존재를,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도심의 더러운 비둘기도 싫지 않았다. 비둘기가 불쌍했다.

이제야 연민을 느낄 줄 아는 내가 좋았다. 이제야 비로소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사실 난 늘 냉소적인 편에 속했는데, 나라는 인간이 진짜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편이 여러모로 살아가기 쉽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까맣고 하얗고 얼룩덜룩한 작은 개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인간적인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개와 함께 7년을 살았다. 3살이던 개는 10살이 되었고, 다른 개보다 조금 빨리 아프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리와 주둥이가 짧던 그 종의 특성이었을까, 알러지 때문에 먹였던 약이 문제였을까, 더 좋은 사료를 미리 먹이지 못해서였을까,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복기와 후회 속에서 시간이 흘렀고 결국 개는 죽었다. 떠났다. 멀고 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나를 두고. 그렇게 사랑하게 만들어놓고. 의지하게 만들어놓고. 친구가 되어놓고. 가족이 되어놓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이렇게나 진심으로 사랑해 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죽을만큼 힘들어 보았다. 많이 울고 많이 슬펐다. 매일 매일 울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슬퍼했다.

그래도 숨은 쉬어지고, 밥도 넘어가고, 출근도 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살아있었다. 개가 없는 삶이 흘러갔다.

마치 다 운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자주 웃었고 많이 먹었고 잠도 잘 잤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보였다.


그런데, 다 울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걸 뒤로한 채 넋 놓고 울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복하기엔 늘 마음이 아팠다.

나는 개가 보고싶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왜 개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은지. 왜 나쁘고 더럽고 시끄러운 인간들보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빠르게 떠나는 것인지.

다 울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와 나의 개가 함께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 울었기 때문에, 이제 울면 안될 것 같은 밤이 매일 찾아오는데 나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얼만큼, 어떻게 슬퍼해도 되는 것인지.

나는 개를 사랑했다. 개도 나를 사랑했다.

개가 보고싶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을 다시 만지고 싶다. 그 쌀알같은 치아가 다시 보고싶다. 그 코골이가 다시 듣고싶다.

자꾸 눈물이 난다.

개가 보고싶다.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 않다.


다 울고 난 다음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