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3

두꺼비

  “두꺼비 씨랑 친해요? 두꺼비 씨가 고라니 씨랑 친하다고 나한테 얘기하던데”

  오소리는 재차 내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에 같은 팀에 있었어요.”

  그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두꺼비랑 전혀 친하지 않다. 아니, 너무나도 경멸하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내 스컹크가 떠올랐다. 갓 입사했을 무렵 같은 팀에서 겪었던 일들이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갔다. 스컹크 옆에는 항상 두꺼비가 있었다. 스컹크가 말로 나를 괴롭혔다면 두꺼비는 행동으로 날 괴롭혔다.

  그때 당시 공벌레는 잔뜩 위축돼 있었다. 스컹크와 두꺼비의 이름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였다. 입사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사무실에는 나와 공벌레와 두꺼비 셋만 있었다. 내가 업무 준비를 마치고 내 자리에 앉아 있는데 두꺼비가 갑자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공벌레를 불렀다.

  “공벌레 씨, 아침 먹고 왔어?”

  “아니요, 일찍 나오느라고 아무것도 못 먹고 왔어요.”

  “마침 잘됐다. 내가 김밥 사 왔는데 같이 먹자.”

  “와, 감사합니다.”

  “가만있어 봐. 내가 김밥 집어 줄게. 한 사람만 손에 기름 묻히면 되니까.”

  나는 그 둘의 상황이 너무도 부자연스러워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공벌레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두꺼비 손가락에 쥐어진 김밥을 받아먹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호호호호호”

  그리고서는 둘이서 뭐가 그리 재미나는지 웃음을 터뜨리며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두꺼비와 눈이 마주쳤다. 두꺼비는 내게 보란 듯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의 서류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속에서 모욕감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아무리 배가 고파 굶어 죽는다 해도 네가 가져온 김밥 따위는 땅에다 처박아 버릴 거야. 인간쓰레기 바로 그 자체다. 나는 입술을 꾹 앙다물었다.

  그 이후로도 두꺼비가 나를 배제시키고 따돌리는 일은 계속 있었다. 몇 번인가 TF팀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는데 내가 TF팀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서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 태도는 아주 직설적이었다.

  “높으신 분이 고라니 씨를 추천해서 TF팀에 합류하게 됐으니 잘해 봐. 혹시 알아? 눈에 들어서 점수라도 따게 될지. 호호호.”

  매번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그 모멸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두꺼비를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여자가 얼마나 인생에 중요한 게 없으면 이토록 유치한 감정에 매달려서 살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나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저러는 거잖아. 오죽 못났으면 이런 식으로 나를 경계하나. 이렇게 말이다. 그랬더니 조금은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정은 하지 않는다. 두꺼비가 언제 다시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를 일이니까.

  그런 두꺼비가 나와 친하다고 오소리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니, 어찌 된 사정인지 알 만했다.

  “고라니 씨가 업무 속도도 느리고 엉망이었는데 두꺼비 씨가 잘 이끌어 줘서 지금처럼 실력이 향상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렇지. 그러고도 남을 진상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사실 말할 가치도 못 느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나는 밤새 잠을 설쳤다. 과연 내가 제대로 대처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꺼비가 여전히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같은 팀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눈으로 보고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다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그만큼 나를 만만하게 봤다는 건데 내가 그냥 눈감고 있으면 두꺼비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내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뿐이다.

  결국 나는 진실을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오전 내내 고민하면서 작성한 장문의 메시지를 오소리에게 메신저로 보냈다.

  “부장님, 출근 잘하셨어요? 어제는 차로 데려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제 가는 길에 부장님께서 두꺼비 선배님 얘기 물어보신 것에 대해서 제가 조심스러워서 말씀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는 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개선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 망설이다가 말씀드릴까 합니다. 말로 하다가 혹시 잘못 전달될까 싶어서 글로 적습니다. 내용이 길긴 하지만 끝까지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두꺼비 선배님하고 저는 전혀 친하지 않고 개인적인 교류는 한 번도 없었어요. 가장 최근에 식사했던 건 2, 3년 전인가 같은 TF팀에서 일하고 나서 고생했다고 팀원들 전체가 같이 모였을 때였고요.

  그리고 업무에 대해서는, 저는 일이 밀려서 기한을 넘겼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업무가 느리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없고요. 그렇지만 이것이 너무 제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어서 이번 인사이동 전의 상황에 한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새로 한 조가 된 부사수와 함께 일할 때도 기한을 넘길 정도로 업무 속도가 느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두꺼비 선배님이 저를 부르셔서 잠깐 복도에서 만났어요. 그때 두꺼비 선배님이 제가 업무를 늦게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저는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했더니 그러면 파일을 늦게 전송한 적이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파일은 부사수가 보내기 때문에 제가 확인해 보겠다고 했고 충고 말씀 감사하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평소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전해 주는 걸 보니 험담하는 말들이 또 엄청나게 돌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은 했어요.

 그리고 곧장 부사수한테 확인해 봤더니 파일 전송을 깜박하고 있다가 확인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그제서야 파일을 전송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도 다른 팀원들의 보고서가 다 취합되지 않은 상태여서 부사수가 안심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저는 혹시나 싶어서 부사수에게 우리 조 업무 속도가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주변에서 왜 이렇게 빨리 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고 부사수가 느끼기에도 제 피드백 속도가 빨랐다면서 우리 조 업무가 느리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고 하더라고요.

  옛날에는 업무가 느렸었다는 그 옛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꺼비 선배님하고는 15년 전에 같은 팀 했던 이후로는 같이 일했던 적은 없고요. 그래서 두꺼비 선배님 말씀을 들은 이후에 제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는 말은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제가 주변에서 느끼는 반응하고는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두꺼비 선배님이 어떤 마음에서 저랑 친하다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는 게 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첫발이라고 생각해서 길게 적어 봤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짤막한 답장이 도착했다.

  “잘 읽었습니다. 두꺼비 씨 건은 저도 다른 루트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앞으로 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건의 프로젝트가 추진되었지만 두꺼비의 이름은 어느 팀의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꺼비가 내 얘기만 그렇게 하고 다닌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어디에서나 소문은 돌고 돈다.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스컹크와 두꺼비가 그 진원지였다. 그들은 인신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자벌레와 오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앞에서는 입이 마르도록 손바닥이 닿도록 알랑거리다가도 돌아서면 뒷담화하느라 바빴다. 그러니 어떤 경로를 통하든 그런 유의 내용을 수집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오소리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나한테 그런 질문을 했겠지.

  두꺼비는 두 번 다시 내게 연락한다거나 무슨 말을 전해 준다든가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지나가다 마주칠 때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인사하는 게 다였다.

이전 12화 소설 고라니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