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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2

오소리

  “두꺼비 씨랑 친해요?”

  운전석에 앉은 오소리가 뜬금없이 물었다.


  오소리는 내부에서 취합된 연구결과보고서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부장이다. 올해 초 오소리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나를 찾았다. 상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까지 나는 오소리와 말 한번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직원들은 백이면 백 오소리를 기피했다. 성과를 중시하는데다가 성격이 불 같아서 직원들이 같이 일하는 걸 싫어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서서 말하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오소리와 눈길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그 부서 내에서는 오소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오소리와 마주 한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이 사람이 왜 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나와는 접점이 전혀 없는데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또 내 험담을 하고 다녔나? 그렇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지?

  오소리는 커피 잔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고라니 씨 불렀는지 모르지요? 우리 초면이지만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까 본론만 얘기할게요. 읽어 봤어요, 고라니 씨가 작성한 요약기획보고서.”

  내가 새로운 포맷으로 작성한 보고서 이야기다. 외국 현황을 정리한 보고서였는데 그 보고서를 본 주변 사람들이 참고하고 싶다고 해서 파일을 공유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오소리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형식도 아주 참신하고 보기 좋던데 나랑 같이 일해 보지 않겠어요? 인사이동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고라니 씨는 신경 쓸 것 없어요. 지금까지처럼 일에만 신경 쓰면 돼요.”

  생각도 못한 전개였다. 오소리의 제안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내가 만든 요약기획보고서가 우연히 오소리 손에 들어갔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요약기획보고서를 오소리가 좋게 평가해서 내게 보직 변경을 제안한 것이다.

  나는 오소리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그리고 믿지도 않았다. 사람이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절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서 욕구 하나가 꿈틀거렸다. 내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자료를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면서도 내게 인사 한마디 하는 사람 없었다. 심지어 스컹크조차도 내 요약기획보고서를 활용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 지금 오소리가 내 능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게 끌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던 두 손을 꼭 모아 쥐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난 뒤에 오소리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제대로 일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소리는 팀장을 건너뛰고 그 윗선을 통해 이번 인사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나에 대해서 험담하는 말들이 돌고 돌아서 내 귀에도 들어왔다. 내가 일부러 오소리를 찾아가서 인사이동을 요청했다는 둥 오소리 눈에 들기 위해서 요약기획보고서를 만들었다는 둥 언제나 있어 왔던 시기와 질투다.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든 항상 그런 유의 말들은 들어 왔으니까.

  정기간행물의 발간을 전담하는 팀이 신속히 꾸려졌다. 나 말고도 몇 명이 더 이동해서 합류했다. 바로 정기간행물을 리뉴얼하는 업무가 떨어졌다. 나는 내 환경이 새롭게 바뀌고 업무도 새롭게 바뀐 것이 기뻤다. 그동안의 노력을 한 번에 보상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열심히 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일은 생각보다 수월치는 않았다.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다. 게다가 오소리는 성격이 급했다. 오소리가 요구하는 일에는 신속하게 결과물을 보여 주어야 했다. 모두들 힘들어했지만 나는 업무로 인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나 스스로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내게 압박을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일다운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업무가 즐거웠고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그렇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은 있었다. 이번에 두꺼비도 같은 팀으로 배정되었고 그래서 함께 일을 해야 했다. 두꺼비는 대놓고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나를 향해 툭툭 내뱉는 말에는 항상 가시가 돋쳐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 팀으로 픽업되어 온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나는 항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두꺼비의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다행인 것은 내가 느끼기에도 오소리는 내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두꺼비는 팀원들이 함께 있을 때는 내게도 꽤나 다정한 척 말을 걸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의아한 얼굴로 두꺼비를 보게 되었다. 지금은 저렇게 나오지만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은 하되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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