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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1

자벌레

  시츄와의 사건 이후로 다람쥐는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였다. 자신의 뜻대로 뭔가 일이 진행되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자벌레와의 관계 때문이었을까. 다람쥐는 가끔 자벌레와 시츄와의 소문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했다. 자벌레와 시츄가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벌써 회사 전체에 소문이 쫙 퍼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벌레는 장성한 자식이 둘이나 있는 처지이니 말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였으며 시츄는 미혼이라고는 해도 직장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입에 오르내리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저질 스캔들은 물론 깜짝 놀랄 만한 가십거리였지만 나는 다람쥐의 행동에 더욱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다람쥐가 자벌레 라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람쥐가 팀장으로 승진하기 이전에는 그 누구도 다람쥐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다람쥐는 능력이 특출하지도 않았고 아주 평범했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다람쥐는 스컹크나 두꺼비처럼 그룹을 지어 몰려다니지 않았다는 정도일까. 그런 다람쥐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자벌레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다람쥐가 알게 된 정보를 자벌레에게 직보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자벌레에게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다람쥐가 내게서 받은 요약기획보고서에서 다룬 내용을  자벌레에게 직보하기 위해서 내게 그 내용을 확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런 노력의 대가였을까. 다람쥐는 어렵지 않게 승진하게 되었다. 아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나도 그렇게 승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말이다.

  그런 다람쥐가 자벌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소문을 얘기하는 것이 내 눈에는 이상해 보였다. 이런 사람이 자벌레에게 이러저러한 정보를 가져다줬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나는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때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아, 아직 자유게시판에 있어.”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마도 회사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익명 게시판을 얘기하는 듯했다. 나는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인터넷 창을 새로 열고 자유게시판 사이트로 들어갔다. 자유게시판 목록에서 가장 최근에 게시된 글은 ‘진상조사 요함’이라는 제목이었고 조회수와 댓글이 어마어마했다. 이걸 말하는 건가?

  클릭하자마자 몇 줄짜리 짧은 문장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모 부서장과 그 부서의 부하직원이 불륜관계에 있으며 그 부하직원의 인사고과를 올려 주기 위해 모 부서장이 평가점수를 조작하는 등 회사가 약속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으므로 감사부서의 감찰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만 봐서는 사실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아래에 끝없이 달린 댓글이었다. 그 댓글들은 이 글의 주인공들이 자벌레와 시츄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이었다.

  이렇게 수면 위로 떠올라 스캔들이 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냥 떠도는 소문들이 으레 그렇듯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는 이내 바람이 빠진 듯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해지는 그렇고 그런 일들이다. 그래서 자벌레가 부서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기자회견을 하듯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일이나 시츄가 합당한 사유도 없이 병가를 신청한 일이나 부서에서 시츄의 병가를 승인해 준 일도 내게는 모두 다 남의 일일 뿐이었다. 다만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자벌레는 익명 게시판의 특성을 부각시키면서 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근거 없는 소문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그 글을 올린 사람으로 판다를 지목했다. 판다로서는 억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판다가 그런 글을 썼을 것 같지는 않았다. 판다가 자벌레를 한심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그렇게 뒤에서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앞에서 대놓고 한다면 모를까.

  자벌레는 교묘하게 상황을 바꿔 놓았다. 판다를 지목하기는 했지만 판다에게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판다는 주변에서 고립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자벌레가 판다에게 직접 말했다면 오히려 판다가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테지만 자벌레의 우회공격으로 인해 판다는 애매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결국 판다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에 고발하는 방법을 택했다. 경찰에 고발하면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가 되고 그러면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 IP를 추적해서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다람쥐가 갑자기 판다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지낸 동료를 끌어내리기 위해 사건을 키우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판다를 비난했던 것이다. 다람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판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판다는 고발을 취소했고 다람쥐는 그다음 해에 한 직급 위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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