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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10

시츄

  같은 팀으로 일하기 전부터 시츄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외모는 예쁜데 이해력이 부족하고 실수가 많아서 주변 사람들을 고생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람은 치를 떨면서 분노했고 어떤 사람은 실수하기는 해도 성격이 좋고 착하다면서 두둔하기도 했다. 사실 업무로 같이 엮이지만 않으면 그런 소문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소문은 믿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로 그러한 소문의 위험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떠도는 소문이란 십중팔구는 부정적인 내용이니 말이다.

  내 옆자리에 앉은 시츄는 밝고 활달한 성격이었다.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도 어려움 없이 싹싹하게 다가선다. 흠이 있다면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식사를 마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꼭 중요한 화제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번 듣고 흘려도 좋을 가십거리 정도였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내심을 가지는 데 한계를 느꼈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있는 것이 한심했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시츄가 활발한 성격이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또다시 업무가 집중되어 야근이 잦아지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날은 당시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의 컨셉을 상신했는데 아직 컨펌이 나지 않아서 팀원 전체가 퇴근하지 못하고 대기하던 중이었다. 나는 새로운 보고서 포맷을 짜느라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사무실 한쪽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또 시츄다. 여전히 시시껄렁한 주제에 대한 얘기들이다.

  “팀장님~, 오늘은 너무 피곤하네요. 저 내일 아침에 외부 업체에 다녀와야 하는데 오늘 늦게 끝나면 무지 힘들 거 같아요. 결재가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고 지겹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시츄가 자벌레에게 찰싹 붙어서 몸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시작이군. 다들 힘들지만 참고 있는 건데 저렇게 철이 없어서야, 원.

  그런데 그다음 순간 자벌레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그럼 지금 퇴근해.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로?

  “와~, 역시 우리 팀장님. 감사합니다~.”

  시츄는 예의 그 발랄한 음성과 표정을 하고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구두 소리를 죽이면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제정신인가? 아무리 팀장이 퇴근하랬다고 해도 그렇지 사수한테 말도 없이 퇴근하다니.

  나는 모니터 뒤로 살짝 고개를 빼 들고 앞자리를 건너다보았다. 시츄의 사수인 캥거루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얼굴 근육은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캥거루에게 자벌레와 시츄의 대화가 안 들렸을 리 없다. 캥거루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자신이 자벌레에게 그리고 시츄에게 무시당한 굴욕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 복도로 나갔다. 이미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후라서 복도는 조용했다. 나는 한쪽 벽에 붙어 서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벨소리가 울리고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시츄 씨, 나 고라니예요.”

  “아,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시츄 씨 지금 퇴근한 거 맞아요?”

  “네, 팀장님이 먼저 퇴근하라고 하셔서요.”

  “혹시 사수님한테 인사는 했어요?”

  “어, 그게, 아니요. 다들 야근하는데 저 혼자만 먼저 가는 게 미안해서 말 안 하고 조용히 나왔어요.”

  “시츄 씨, 그렇지 않아요. 가는 건 가는 건데 가더라도 인사는 해야지. 사수님하고 한 조로 일을 하는 거잖아요. 지금 시츄 씨가 먼저 퇴근하고서 혹시 이후에 뭔가 일이 생길 경우 사수님이 혼자서 그 일을 처리하게 될 텐데 시츄 씨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하고 가야지요. 그리고 인사는 기본적인 도리잖아요.”

  말없이 듣고 있던 시츄가 재빠르게 불쑥 말을 내뱉었다.

  “지금 어디서 통화하시는 거예요?”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이건 뭐 하자는 거지?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나는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사무실 밖이에요. 그런데 내가 어디서 전화하는지를 신경 쓸 게 아니라 시츄 씨 상황을 신경 쓰세요.”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스컹크 같은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에게 상식에 맞는 기준을 가지고 대했다. 그런데 시츄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무실에 돌아오니 캥거루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캥거루의 대답 내용으로 보아하니 시츄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나는 여전히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딱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사무실로 시츄가 전화를 했다. 자벌레와 통화를 했는데 감기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온다는 것이었다. 아프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10시가 넘어도 시츄는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캥거루도 화를 숨기지 않았다. 캥거루가 시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츄 씨, 지금 어디야? 아직 진료를 못 받았다고? 병원이 어디야?”

  큰소리로 통화를 마친 캥거루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수화기를 쾅 내려놓았다.

  “아니, 아직도 집 근처 병원이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그제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시츄의 집은 회사에서 2시간 걸리는 곳이었다. 보통 집이 그렇게 멀 경우에 출근 전에 병원을 간다면 회사 근처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고 바로 출근할 수 있도록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시츄는 집 근처 병원이 진료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가서 사무실에 통보를 한 것이다. 환절기라서 환자들이 많았을 것이고 시간은 더 오래 걸릴 터였다. 캥거루는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결국 그날 오전에 예정돼 있던 캥거루 조의 브리핑은 캥거루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시츄는 12시가 넘어서 출근했다. 팀원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캥거루는 아직도 얼굴이 상기된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시츄를 보고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캥거루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츄는 여전히 활달하다. 심지어는 예의 그 밝은 목소리로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어머, 선배님, 식사하러 가시는 거예요?”

  “늦게 왔네요.”

  그 뻔뻔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시츄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대답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시츄가 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앞질러서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에 있던 몇몇 직원들이 놀라 시츄를 따라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뭐라고 나무란 것도 아닌데 저게 뭐 하자는 거지? 이는 곧 삽시간에 회사 전체로 퍼졌다. 사수도 가만있는데 내가 나서서 시츄를 혼내서 시츄가 울면서 뛰쳐나갔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나는 화가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말이라도 제대로 할 걸 그랬다. 내가 어린애한테까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시츄와는 꽤 오랫동안 같은 팀으로 있었다. 시츄의 불성실한 생활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시츄는 사무실에서 낮잠을 잤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핸드폰 알람을 해 놓고 엎드려 자다가 알람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서 깨는 식이었다. 캥거루는 그런 시츄를 이미 포기했는지 알람이 울려도 시츄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아니, 시츄가 싫었다. 저렇게 불성실하게 생활하는데도 시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살고 있다. 심지어 스컹크조차도 시츄를 건드리지 않는다. 나는 시츄와 떨어지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시츄가 함께 간부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자료를 챙기고 세팅하고 그리고 회의가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옆에서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나는 시츄의 업무 태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했다. 드디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옆에서 알람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앗, 이 소리는? 많이 듣던 알람 소리였다. 옆을 보았다. 시츄가 당황해하며 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아뿔싸! 시츄가 매일 낮잠 잘 때 설정해 놨던 핸드폰 알람이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이었다. 회의를 주재하는 간부가 화가 났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무서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회의가 끝났다. 나는 시츄와 함께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비상계단에서 시츄와 마주 섰다.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큰 실수였기 때문이다. 시츄는 평소와 달리 시무룩해 있었다. 오늘 자신이 어떤 사고를 쳤는지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단어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 또박또박 말할 생각이었다.

  “오늘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알지요?”

  “네, 죄송합니다.”

  의외의 반응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시츄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있는 것처럼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정신이 바짝 들도록 나무랄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앞으로 신경 쓰세요.”

  나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시츄도 바로 따라 들어왔다. 나는 서류 꾸러미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앉았다. 그때 시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츄는 예의 그 밝고 환한 표정으로 리셋되어 있었다.     


  연말이 되어 프로젝트는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다. 올해 안에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자료를 분석하랴 정리하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계속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화면 한쪽 구석에 작은 창이 떴다. 사내 메신저다. 누구지? 누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확인하고 나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고라니: 기복이 심함. 완전 정신병자임”

  이게 무슨 내용이지? 왜 이런 내용을 내게 보낸 거지?

  보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시츄였다. 아마도 받는 사람을 잘못 클릭했나 보다. 그건 그렇다 쳐도 내용이 이게 뭐지? 이건 나에 대한 얘기인가? 이게 진심인가?

  나는 한동안 화면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그간 시츄가 해 왔던 행동거지를 떠올렸다. 그래, 이러고도 남을 인간이야.

  나는 일단 확인을 하기로 했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해 주겠어.

  나는 시츄가 보낸 메시지 화면을 그대로 캡처해서 메신저로 보냈다. 잠시 뒤에 시츄의 답장이 왔다.

  “선배님, 이거 선배님 얘기 아니에요. 저희끼리 별명으로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다른 사람 얘기예요. 믿어 주세요.”

  아, 이렇게 뻔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 인성에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결국 나는 당나귀에게 연락을 했다. 메신저에서 수신인을 지정하는 목록에서 내 이름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시츄와 평소 왕래가 있던 사람이 당나귀라는 것을 알게 됐고 혹시나 싶어서 당나귀에게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당나귀는 나와도 가끔씩 연락을 하고 지내는 후배였다. 우리는 비상계단에서 마주 서서 이야기했다. 의아해하는 당나귀의 표정에 나는 긴장했다.

  “당나귀 씨, 내가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시츄 씨가 보낸 거야. 아마도 시츄 씨가 당나귀 씨한테 보낸다는 걸 실수로 내게 보낸 것 같은데 이 내용이 무슨 얘기야? 둘이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어?”

  내가 핸드폰을 열어서 캡처해 둔 메시지 내용을 보여 주자 당나귀는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진 후 허리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어떻게 이게 선배님한테 갔지요? 시츄 선배랑 요즘 너무 바빠서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답장이 안 오길래 바빠서 답을 안 보냈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나귀 씨, 나 지금 당나귀 씨랑 장난하자고 부른 거 아냐. 이런 식으로 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아, 선배님,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저 아시잖아요. 저도 왜 시츄 선배가 저한테 이런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이 메시지 전에는 정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당나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당나귀가 눈물을 훔치고 나서 말했다.

  “저 이거 시츄 선배한테 물어봐도 될까요? 저까지 선배님한테 오해받고 싶지 않아요. 이번 일은 확실히 해 두고 싶어요.”

  “난 상관없어. 당나귀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로부터 10분도 안 돼서 시츄가 내게 메신저를 보냈다. 밖에서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당나귀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시츄는 자신의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나는 시츄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 볼 이유도 없었다. 이번 일로 분명 나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이 돌겠지. 시츄가 저지른 일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내가 시츄를 괴롭힌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난 시츄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오해를 받아서 내게 피해가 돌아온다고 해도 시츄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주변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시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했던 대로 소문은 빨리 돌았다. 자벌레가 이사로 승진한 뒤에 그 팀장 자리로 옮겨 온 다람쥐도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다람쥐는 따로 나를 불러내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다람쥐에게 캡처해 두었던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다람쥐는 자기 일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화를 냈다.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이런 버릇은 확실히 고쳐 놔야 돼. 고라니 씨는 나설 필요 없어.”

  아마 다람쥐도 예전에 시츄와 뭔가 사건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게 아니라면 저렇게 나설 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람쥐는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자벌레 이사한테 한 소리 듣고 왔어. 양쪽 얘기를 다 들어 봐야지 한쪽 얘기만 일방적으로 듣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이거 뭔가 수상쩍어.”

  역시 이번에도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시 인사철이 되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시츄와 다른 팀으로 갈라졌다. 복도를 지나다가 가끔씩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시츄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난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그리고 내게도 시츄는 투명인간과 같은 존재니까.

  난 오히려 그저 내 도덕성에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도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지만 사람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애시당초 그런 사람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대하려고 했던 것이 주제넘은 오지랖이었다. 역시 사람은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옳았다. 이렇게 나는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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