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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8

고라니

  미어캣 사건 이후로 나는 이곳에서 탈출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업무도 싫고 사람은 더욱 싫다. 조금만 참자. 내가 나갈 준비를 다 갖출 때까지만 기다리자. 그렇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미련은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흘려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나는 자신 있었다. 아니,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 생각과는 크게 달랐다. 일단 회사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최소한 이곳보다는 조건이 좋은 곳에 지원하고 싶었고 그러자니 여러 단계의 채용시험을 위해서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짬을 내어 뭔가를 하는 것과 이직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달랐고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탈출 계획은 세웠지만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나는 사내 게시판에서 눈에 띄는 공문 하나를 보게 됐다. B사와의 인사교류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 회사와 B사에서 1명씩 선발하여 각각의 회사에 파견을 보내 근무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를테면 교환근무인 셈이었다. 파견기간은 1년이었다.

  이거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비록 1년 후에는 다시 복귀해야 하지만 그동안만이라도 이곳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1년의 시간을 벌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혹시나 그 시간 동안 내가 이직에 성공하게 된다면 다시 이곳으로 복귀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사무실에서 나와 곧장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계단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그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공문에 기재되어 있던 인사담당자의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청하기 전에 자격요건을 먼저 확인해야 했고 내가 그 요건에 해당이 된다면 바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전화를 받은 인사담당자는 마침 나와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배였다. 그 사람이 대학 선배라는 것은 이곳에 입사하고 나서 알았다. 그렇지만 오로지 그것뿐, 이름과 얼굴만 빼면 그 선배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 때문이었는지 인사담당자는 내 문의전화에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아, 이번 인사교류 건 말이구나. 맞아, 그 공문은 내가 올린 거야. 그런데 이런 시기에 너 같은 인재가 외부로 빠져나간다는 게 회사 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야. 최근에 여러 건으로 인원 이동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게 회사 입장에서 볼 때는 다 큰 손실이 되니까. 그런데 네가 물어본 그 인사교류는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사실 선발인원이 내정돼 있는 상태야. 내보낼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절차 없이 그냥 진행하면 반발도 있을 거고 보기에도 안 좋으니까 그렇게 공문을 냈던 거야. 공문은 정말 그냥 형식적으로 한 건데 진짜로 신청 전화가 올 줄은 몰랐어. 이거 어쩌지? 내가 다 미안해지네.”     


  그날 밤늦은 시각, 나는 소울강가에 서 있었다. 아침마다 창밖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강물이 지금은 어둠 속에서 침울하게 일렁이고 있다. 그 세찬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니 내 속은 멀미로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나는 좌절했다. 여기는 도대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여기서 내가 무얼 더 바란단 말인가. 이곳에 계속 있는 것은 내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허리를 접으며 크게 소리쳤다.

  “나- 때문이-야-앗! 전부 다- 내- 탓이-얏!”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존재 자체가 이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알고 있다. 인사교류 내정자가 그 자리를 따기 위해 얼마나 로비를 했을지 그리고 그 로비는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당사자가 진력을 다했을 것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노력하면 세상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를 믿고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한 노력은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이런 동화를 읽었다. 댐에 뚫린 구멍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한 소년이 밤새 자신의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아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함께한다는 것은 소년이 혼자 밤을 새우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치지 않도록 옆에서 응원하고 격려해 주고 서로 교대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의 미덕을 강조하고 교육하는 현실에서는 그런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학연, 혈연, 지연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회사에 입사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렇게 큰 조직이라면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 낸 성과가 공정한 기준에 의해 제대로 평가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썩었다. 남을 헐뜯고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선다. 애초부터 인간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나는 강가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바뀌는 것은 더욱 아니다. 아니, 나는 나를 바꿀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다. 지금은 그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어둠 속에 일렁이는 강물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일렁거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어찌 보면 그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시간만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간격으로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그 시간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가는 대로 흘려보낼 뿐이다. 나는 이 시간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보통 업무 이외에 여가 시간이 생기면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심지어는 주식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몇 개의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했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 도전하고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든 해 놓으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배운 내용들을 하나둘씩 업무에 접목시켜 보았다.

  사실 이제까지 팀원들은 모두가 동일한 포맷으로 동일한 형식의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의 업무 방식에 대해서 아무도 의구심을 갖지 않았고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보고서 양식이나 내용 전개 방식이 현재의 패러다임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내 눈에는 고대 유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시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뭔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다만 그저 하고 싶었다. 순전히 자기만족이다. 거기서라도 나는 내 존재의 가치를 찾고 싶었다. 좀 더 눈에 확 들어오도록 표지와 양식을 다양하게 바꿔 보았다. 컬러를 바꾸고 이미지를 넣고 인포그래픽을 사용했다. 이러한 일들은 내게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조금씩 내 성과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생겨난 듯했다. 물론 스컹크와 두꺼비를 비롯해서 그 유사한 부류들은 여전히 내 험담을 하면서 다녔고 그게 나에 대한 평가처럼 퍼져 있어서 나는 제대로 된 대우는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 스스로 보호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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